성주군 성산관은 동헌일까 객사일까? 읍성(邑城)



성주군에 있는 성산관은 성주목의 객사의 익헌이 아닌가 하는 부분에 관한 발제글을 작성하였습니다. 


이렇게 하게 된 것은 무엇보다 성산관(星山館) 때문입니다. 고을에 있는 객사의 당호는 예전 지명을 가져오는 것이 대부분인데 성주의 옛이름이 성산이라 성산관을 사용하였으면 객사라고 생각을 하였던 것입니다. 또 나주의 금성관와 비슷하게 익헌 하나만 남아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성산관이 틀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두산백과사전에 자세한 사진들이 있어서 일단 링크 시켜보도록 하겠습니다. 두산백과사전 성산관 링크
그런데 성산관에 관련된 사진들을 살펴보기 시작하다보니 객사의 익랑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무엇보다 우측에 있는 방에 아궁이가 있으며 쪽마루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객사가 아니고 동헌이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통 객사의 경우 저 부분에 쪽마루가 없어야 하는데 성산관에는 있더군요. 원래 없었다가 이전하면서 쪽마루를 달았는지 아니면 원래부터 있었는지 알 수가 없네요. 하단부에 있는 초석을 봐서는 조선시대부터 있어온 초석은 아니고 해방 후(대략 8~90년대) 지은 것으로 보여집니다.

아궁이가 있는 곳도 예전의 방식은 아닌 것 같습니다. 또 대청 앞에 난간이 쭉 쳐져 있습니다. 저런식의 난간은 처음보네요. 보통 난간이 없는 상태인데 저긴 관광객이 들어가지 말라고 해서 그런지 난간을 쭉 쳐져 있습니다. 객사의 익랑도 아니라면 관광안내판에 적혀 있는 동헌이야 할 것입니다. 대청 앞에 난간이 없는 상태에서 섬돌이 있어야 하는데 섬돌도 보이지가 않습니다. 또 동헌 건물치고는 작다는 느낌을 줍니다. 뭐 작은 것은 이해할 수 있는데 이상하다는 느낌은 어쩔수가 없네요.

복원한 밀양읍성의 동헌의 섬돌과 계단입니다. 성산관이 동헌이라면 이런 부분이 있어야 하는데 말이죠.
복원한 밀양읍성 동헌 대청 앞에 난간이 없는데 성산관에는 난간이 있는 것은 이상하다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전남 고흥에 있는 흥양읍성 동헌의 섬돌과 계단리고 난간은 보이지 않습니다.
  
전남 순천에 있는 낙안읍성의 동헌에도 난간은 보이지 않습니다.
경남 창원시에 있는 진해현 동헌에도 난간은 보이지 않습니다.
예전 재판받는 모습으로 동헌의 모습이 잘 나타나있습니다. 저렇게 계단과 섬돌이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성산관에는 보이지가 않습니다.
위에서도 이야기하였던 것처럼 쪽마루가 보입니다. 동헌에 쪽마루가 있었는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만 많은 곳에서는 잘 보이지 않더군요.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닌 것으로 봐서 있었다고 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다만 동헌은 위 사진과 같이 민원을 보는 곳인데 쪽마루가 옆에 있었을까? 하는 생각은 듭니다. 쪽마루가 있는 곳보다 없는 곳이 더 많더군요.

성산목 동헌의 당호는 청민당(聽民堂)이라고 합니다. 만약 동헌 건물이었다면 당호를 청민당(聽民堂)으로 해야 맞을 것인데 왜? 성산관을 사용하였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또 예전부터 있어왔던 동헌이라면 마땅히 있어야할 부분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성산관은 객사건물의 익랑도 아니고 동헌도 아닌 이상한 건물로 탄생한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동헌이라면 마땅히 있어야할 섬돌과 계단은 보이지 않고 난간은 없어야 하는데 있고, 객사라면 쪽마루는 없어야 하는데 있고 솔직히 뭐가 뭔지 헷갈릴 정도입니다.

성산관이 동헌이다라고 단정하기 어렵고 객사의 익랑이라고 단정하기 힘든 느낌입니다.



덧글

  • 부산촌놈 2014/12/18 02:55 #

    일제강점기 사진과 비교해보니 기둥 수부터 일단 차이가 져서 객사의 좌, 우 익헌이나 중대청은 아닌 것 같네요.

    그렇다고 동헌으로 보자니 목사가 다스렸던 고을 동헌 치고는 너무 작은 게 아닌가 싶은 느낌이 들고...

    어쩌면 객사 영역이나 동헌 영역에 있었던 부속 건물을 두고 성산관이라 부르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동래 다대포진의 객사로 알려진 다대포 객사 회원관도 그것이 객사 건물인지 다대포 첨사영의 건물인지에 대해 논란이 한때 인 적이 있었는데 비슷한 사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김항곤 성주 군수가 재임하면서 성주읍성, 성주사고 등의 조선시대 유적을 복원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얘기했는데 그 계획이 실없는 메아리가 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저 건물의 정체가 명확히 밝혀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 팬저 2014/12/18 11:23 #

    처음에는 성산관이라고 해서 객사인줄 알았는데 가만히 보니 객사는 아닌것 같고 그렇다고 동헌도 아니고 예전 관아 건물이 동헌이라고 하였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동헌이라고 하면 당호는 물론 복원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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