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도의 안주읍성 사진들 읍성(邑城)



오래전에 북한의 읍성시리즈 중 안주읍성에 관하여 발제글을 올린 적이 있었습니다. 평안도의 평은 평양을 이야기하고 안이 바로 안주를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한양에서 의주로 가는 의주대로 상의 요충지이기도 하다보니 안주를 점령하기 위한 전투가 있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정묘호란때인데 정묘호란 최초의 전투가 이곳 안주읍성에서 벌어졌습니다. 1627년 1월20일 심양을 떠난 후금군 3만여 명이 8일 만에 안주읍성에 도착하여 조선군 3000명과 전투가 벌어졌지만 병력의 열세를 이기지 못하고 안주읍성은 점령당하고 맙니다. 

안주읍성 발제글 보기

1872년 지방지에서 본 안주읍성 지도입니다. 본성,중성,외성이 있는 곳으로 아주 철옹성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방지에서 본 안주읍성에 관해서는 위에 링크된 안주읍성 발제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일단 보시기에도 아주 큰 읍성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 안주읍성의 남문인 청남루의 모습으로 2층으로 된 누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가 시작될때 찍어서 그런지 많은 부분들이 무너져 내린 것이 보이지만 그래도 형태나 위용을 알 수 있는 사진입니다. 
▼ 북문인 현무문입니다. 삼남도에 있는 읍성의 북문은 보통 공북문,공신문,공진문 등 북쪽(임금)을 향한 마음을 현판에 적어놓는 것에 비해 안주읍성의 북문은 우리들이 잘 아는 동 청룡, 서 백호, 북 현무, 남 주작의 북쪽을 나타내는 현무문입니다. 아무래도 위치적으로 한양보다 북측에 있어서 그런지 공북문이나 공신문,공진문이 아닌 현무문을 사용했던 것 같습니다. 북문의 경우도 2층 누각임을 알 수 있습니다. 2층 누각이라는 것은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즉 북문을 통해 남문으로 중국의 사신들이 왕래를 했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 동문인 의동문으로 누각은 1층이며 규모면을 보면 위에서 나온 남문과 북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단순하고 작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직 동측체성의 모습이 보입니다. 
▼ 안주 객사의 외삼문으로 보여지는데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뒷편에 객사의 모습이 확연하게 보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맞다면 안흥관으로 적혀있는 부분은 외삼문일 수 있습니다. 만약 아니라면 객사에 있는 누각일 수 있습니다. 
▼ 안주읍성의 대표적인 누각인 백상루의 모습입니다. 백상루는 T자형으로 된 누각으로 규모면에서도 아주 큽니다. T자형으로 된 누각의 경우 조선시대 몇 개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백상루보다 규모는 작지만 T자형으로 된 누각이 있었는데 순천부읍성 남문 누각인 연자루입니다. 연자루의 경우 남문의 누각이어서 백상루와 규모나 성격이 맞지 않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만 T자형의 누각임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T자형으로 된 누각의 경우 산청에 있었던 환아정이 비슷한 형태입니다.  
백상루와 서측체성을 잘 보여주는 사진으로 백상루가 높은곳에 자리잡고 있으며 평시에는 여흥을 즐기는 장소로 전시에는 지휘하는 곳으로 사용하였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백상루에서 사진찍었던 방향으로 내려오면 길이 형성된 것이 보이는데 저곳이 서문이 있는 곳입니다. 

조선 선조 때 성리학자 기대승이 지은 백상루에 관한 한시를 지었다고 합니다.

城北危樓鬼效功 翶翔雲際壓晴空 香山縹氣飛朱栱 渤海祥光隱畫櫳
朗月照襟開玉界 仙風吹夢落瓊宮 悠悠往事憑誰問 一曲漁歌細雨中.
(성북위루귀효공 고상운제압청공 향산표기비주공 발해상광은화롱
낭월조금개옥계 선풍취몽낙경궁 유유왕사빙수문 일곡어가세우중)
안주성 너머 우뚝한 누각 귀신의 솜씨로, 날아가는 구름 끝에 솟아 푸른 하늘 압도하네.
묘향산의 신령스런 기운 대접받침에 들고, 발해의 서광은 단청한 난간에 감도는구나.
밝은 달은 가슴을 헤쳐 신선 세계를 열어주고, 맑은 바람에 선풍도골이 된 듯 구슬 궁전이네.
먼 옛날의 일 누구에게 물을꼬, 뱃노래 한 가락 가랑비 속에 들려오는구나.

▼ 현재 북한에 남아있는 백상루의 모습입니다. 체성과 여장이 복원이 되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안주평야와 청천강 그리고 100가지 경치를 볼 수 있다는 뜻이 바로 백상루(百祥樓)라고 합니다.
▼ 백상루의 누각이 저정도라면 밀양 영남루나 진주 촉석루 규모와 비슷하거나 조금 클 것 같다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정면 7칸, 동쪽 측면 6칸, 서쪽 측면 4칸이며 고려시대부터 만든 누각이라고 합니다.
▼ 현재 남아있는 백상루는 6.25때 파괴된 것을 북한이 복원한 것으로 예전 자리에서 서측으로 400미터 이전하였다고 합니다. 백상루는 현재 북한 국보 31호라고 하네요.
▼ 공중에서 본 백상루의 모습
▼ 아래 사진에도 나오겠지만 현재 북한 안주 칠성공원으로 조선시대 칠성지를 공원으로 만든 것입니다.
▼ 일제강점기 당시 안주시내의 모습으로 백상루와 객사의 모습이 보이고 좌측에는 칠성지 연못이 보입니다. 사진이 크지만 남문의 모습은 잘 찾아야 보입니다. 일단 이미지가 아주 큽니다. 클릭하여 크게해서 보시기 바랍니다.
이미지출처 : 고지도/ 서울대학교 규장각
                  흑백사진/ 일제강점기 자료관
                  칼라사진/ 북한문화재자료관, 인터넷 검색



덧글

  • 잭 더 리퍼 2015/02/05 09:16 #


    한번 가보고 싶네요
  • 팬저 2015/02/05 11:10 #

    예... 저도 한번 가보고 싶네요. 통일이 되기전까지 힘들것 같아서 그게 언제가 될지 모르겠네요.
  • 별일 없는 2015/02/05 18:39 #

    백상루에 올라가보고 싶네요. 그런데 얼마나 관리가 안됐으면 성이 다 박살이 나있지;;;
  • 팬저 2015/02/05 23:31 #

    일제강점기 이전에 지원을 받지 못하니 관리상태가 엉망이고 해방후에는 관리가 체계적으로 되지 않아서 엉망입니다.
  • 부산촌놈 2015/02/05 23:26 #

    다포양식이라도 저렇게 공포를 많이 얹은 성문루는 처음 보네요... 정말 규모가 대단합니다. 남아 있었다면 가히 보물급의 문화재가 되었을 것 같습니다.
  • 팬저 2015/02/05 23:32 #

    고려시대부터 이어온 읍성이고 청나라의 사신들이 오고 가는 곳이라 화려하게 꾸며 놓은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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