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량진과 사량진성 그리고 사량왜변 진성(鎭城)



조선시대 경상우수영 관할이었던 사량진, 1872년 지방지에서 본 사량도의 모습으로 사량도는 상도와 하도로 나누어진 섬으로 구성되어져 있으며 상도와 하도 사이를 가르고 지나가는 바닷길이 가늘고 긴 뱀처럼 구불구불한 형세를 이룬것이라 하여 사량이라고 불리어서 사량도라고 한다고 합니다. 우리들이 잘 아는 노량,견내량,명량에 들어가는 량(梁)이 바로 좁고 물살이 빠른 육지와 섬,섬과 섬사이의 해협을 뜻하는 것입니다. 1872년 지방지를 보면 사량진은 사량진성이 없는 상태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상도와 달리 하도에는 군사시설은 없는데 봉수대는 보입니다. 조선초기의 사량도 지명은 박도였다고 하며 상박도와 하박도로 불리었다가 사량진이 설치되면서 사량도로 불리었다고 합니다. 고지도 출처: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 확대해 본 1872년 지방지로 동헌이 좌측 상단에 객사가 중앙 상단에 자리하고 있으며 우측에 선소가 보이는데 그곳에는 거북선 1척, 병선 1척, 사후선 2척이 보입니다. 포수청,군관청,선소 등이 보입니다.
▼ 사량진의 위치를 보면 경상우수영중에서 좌측에 위치하고 있으며 거제와 남해와 같이 큰 섬이 아닌 작은 섬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웅천과 거제가 최전방이었다면 고성은 2 전선이라고 봐야 할까요? 또 부산에서 전라도를 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당시에는 고성땅으로 소을비포진,남촌진,당포진,삼천진과 함께 고성에 있었던 수군진이었는데 현재는 통영시 소속으로 되어져 있습니다. 사량진 북측이 소을비포진이 있고 서측에 적량진 동측에 당포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지도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다음 지도에서 바로 본 사량도의 모습으로 크게 두개의 섬이 나누어져 있습니다.
▼ 상도가 사량진이 있었던 곳이고 사량진성도 있었던 곳입니다. 또 1544년 왜구들이 사량진을 침략하여 발생한 사량진왜변이 일어 난 곳도 상도입니다.
▼ 현재 사량도의 모습과는 조금 다른 사량도입니다. 현재는 사량대교가 공사중이라 아래 사진에 나오는 모습과 조금 다릅니다만 상도에 있는 모습은 거의 같습니다. 사진출처 : 통영시 
▼ 현재 사량대교가 건설되고 있는 모습으로 올 2015년 안으로는 다 완공이 될 것 같습니다.
▼ 사량면사무소 앞에 자리한 사량진 만호 선정비로 총 5개가 함께하고 있는데 최근까지 2개만 있었으며 보관은 사량진중학교에 보관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우물에서 3개의 선정비가 발견이 되어서 이곳 사량면사무소로 옮겼다고 합니다.
▼ 안내판에는 사량만호 선정비를 안내하는 안내판입니다. 최근에 설치한 안내판인데 태양과 바람에 의해 오래된 것 처럼 변해버렸네요.
▼ 우물에서 발견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선정비의 귀가 떨어져 나가버였네요.
▼ 사량면사무소 풍경
▼ 일단 가장 먼저 최영장군 사당을 향해 걸어 가 보았습니다. 저 멀리 사량대교의 모습이 보이며 사량여객선 터미널도 보이네요.
▼ 100여미터 걸어서 올라오면 만나는 것이 사량교회입니다. 이 사량교회터가 예전 사량진의 동헌중 내아가 아니었을까 추정해봅니다.
▼ 사량교회를 지나면 마주치는 것이 오래된 고목으로 현재 250여년 이상 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 팽나무 노거수에서 바로 본 하도의 모습으로 봉수대가 있었던 곳도 보이네요. 이렇게 동헌에서 바라보면 바로 보이는 봉수대
▼ 팽나무 노거수 앞에 또 다른 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도 100여년은 더 되어 보입니다.
▼ 최영사당
▼ 고려 말 왜구의 침입이 빈번했을 때, 이곳에 진을 치고 왜구를 무찔렀던 최영장군을 제향하기 위해 세운 사당으로 고려공신 최영장군 영위라 적혀 있는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매년 음력 정월과 섣달에 주민들이 사당제를 모시고 있다고 합니다.
▼ 현재 남해안에는 최영 사당이 제법 있습니다. 부산진성이 있었던 부산 자성대에도 최영장군 사당이 있고, 경상좌수영이 있었던 부산 수영동에도 있습니다. 남해 미조진이 있었던 곳에도 있고, 제주도 추자도에도 있습니다. 부산진성,경상좌수영,남해 미조진에 있는 최영 장군 사당은 보았네요.
▼ 최영 사당 입구로 현재 공사를 하려고 해서 그런지 문짝이 하나 떨어져 나갔습니다. 
▼ 팽나무가 있는 곳에서 바라본 곳으로 보시다시피 제법 큰 땅이 있는데 이곳이 동헌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바로 뒤가 팽나무와 큰 나무가 있고 우측에 사량교회가 있는 것으로 봐서 동헌과 내아터였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 이 골목이 바로 수군 선소로 향해가는 곳이라 우측에 보이는 공터가 더욱 더 동헌터였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 250년된 팽나무의 모습이 아무래도 동헌 터를 더 증명할 것 같습니다.
▼ 팽나무 노거수와 사량교회가 보입니다. 유일하게 산을 가로 지르는 도로가 있는 곳이며 보시는 바와 같이 제법 큰 공간이라 차량들이 주차를 많이 해 놓았습니다.

▼ 다시 객사가 있는 방향으로 걸어가다가 본 민박집으로 동헌터 보다 위에 자리하고 있는데 석축의 방식은 일본식 석축방식으로 축대를 쌓아 놓았습니다.
▼ 조금 더 걸어와서 본 가정집으로 이 가정집이 객사터로 추정하는 곳입니다. 일단 공간이 큰 이유도 있고 무엇보다 이 가정집을 기준으로 길이 T자형으로 되어져 있습니다.
▼ T자 보다는 Y자 형태로 길이 놓여져 있으며 우측에 우물이 보입니다.
▼ 객사터로 추정하는 곳에서 바라본 골목길로 저 앞에 보이는 전봇대정도에 일주문이 있지 않았을까 추정해봅니다.
▼ 객사터로 추정되는 곳 바로 옆에 있는 우물로 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우물이고 성곽에서도 가장 먼저 확보해야할 곳이 우물입니다. 이 우물이 사량진때 부터 있었던 우물로 이곳에서 우물안에서 사량진 만호 선정비가 3개나 나왔습니다. 누가 넣어 놓았을까요?
▼ 사량진 우물에 관련된 안내문
▼ 현재 산위에서 내려오는 물을 위해 만든 물길인데 예전 사량진성으로 흘러가던 수로길이 아닐까 싶어서 사진을 찍어 보았습니다.
▼ 최근에 복원한 마중물 펌프와 대통물통
▼ 고전적인 우물
▼ 우물가 옆에 제법 높이가 있는 담장이 있으며 돌로 축성하여 놓았습니다. 여름철이라 녹지가 가득차 있습니다만 한눈에 알아 차릴 수 있을 정도입니다만 예전 사량진성의 체성은 아닌 것 같아 보였습니다.
▼ 밭을 하기 위해 쌓아올린 축대와 같아 보였습니다.
▼ 조금 더 걸어가자 예전 사량진성의 성돌이 아닐까 하는 모습이 보이더군요. 상단은 근대에 쌓아 올린 것이고 하단의 경우 큰 돌로 인해 여기가 사량진성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들더군요.
▼ 위 가정집에서 조금 내려오자 마주한 천주교 사량공소입니다. 위에서 본 성돌과 나란히 연결된 부분을 보아야 확실하게 사량진성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아서 사량공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 그러자 하단부의 경우 확실하게 큰 돌들이 자리잡고 있어서 사량진성의 체성부분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더군요. 
▼ 물론 위의 경우 보는 바와 같이 근대에 쌓아올린 담장이 있지만 말이죠.
▼ 하지만 아래에는 30여미터 연결된 체성의 하단부가 보이더군요.
▼ 보이시나요? 상당히 큰 돌과 하단부 아래에 보이는 기단부의 모습을 말이죠.
▼ 같이 간 분이 모델이 되어서 크기를 알 수 있게 서 있어 주었습니다.
▼ 세로로 축성한 돌도 보이고 다듬은 도도 보이더군요.
▼ 끝 부분에는 돌이 조금 작기는 하지만 그래도 50cm 이상된 돌이었습니다.
▼ 자세히 보면 성돌을 다듬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하단부도 마찬가지로 돌을 가공한 흔적이 보였습니다.
▼ 이 부분이 그래도 사량진성을 알려주는 체성의 일부입니다.
▼ 더 이상 체성의 흔적을 찾을 수 없어서 사량공소를 나왔습니다. 사량공소 앞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보시는 것처럼 신축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남아있는 남측 사량진성 체성과 불과 20여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는 곳입니다. 이곳에 건축허가를 내주었는데 과연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상태에서 공사가 진행이 되었을까요? 팬저가 볼때에는 그렇지 않았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자리가 남측 체성이 지나갔는지 동측체성이 지나갔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저런식으로 공사가 허가가 나버려 더 이상 사량진성의 흔적은 사라져 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 위 사진 아래에도 보시는 바와 같이 공사중에 있습니다. ㅠㅠ  
▼ 사량파출소로 사량파출소 뒤편으로 전부 공사중에 있습니다. 사량파출소의 경우 수군진의 관공서로 보여집니다.
▼ 사량파출소 앞은 도로 공사중으로 흙들이 쌓여져 있는데 이런곳에서도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는지 궁금합니다.
▼ 상도와 하도를 연결하는 사량대교 진입도로로 아직 포장이 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 조금 더 걸어와서 본 모습으로 예전에는 민가가 보이는 곳까지 바닷물이 들어왔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 1872년 지방지를 보면 선소 뒷편에 보이던 숲들을 그려 놓았는데 여기에서도 보이는 것 같네요. 민가까지 바닷물이 들어왔을 것입니다.
▼ 현재 고기잡이 배들이 정박하는 포구입니다. 예전 조선시대에는 이곳이 수군의 전선들이 정박하던 곳이지요. 
▼ 현재 사량수협 창고로 사용하는 곳으로 이곳이 조선시대 선소가 있었던 곳입니다.
현재는 가리비를 
▼ 선소에서 바라본 하도의 봉수대
▼ 다시 길을 걸어서 천주교 사량공소 옆으로 왔습니다. 혹시나 싶어서 살펴보았는데 체성으로 보이는 부분은 잘 보이지 않더군요.
▼ 골목 골목을 누벼보아도 체성은 보이지 않고 아래 사진과 같이 작은 돌로 만든 축대가 보이더군요.
▼ 다시 동헌터로 추정되는 곳으로 올라와서 동측 체성을 찾기위해 동측 방향으로 길을 걸었습니다.
▼ 객사지 뒷편의 모습으로 저렇게 숲이 많이 우거진 상태라 체성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 약수터로 가는길로 올라가 보았는데 동측 체성은 도저치 찾기가 힘이 들더군요. 아무래도 겨울을 접어들어야 체성을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 동측 체성을 찾다가 찾지 못하고 내려오다가 찍은 사진으로 선소였던 사량축협 창고와 바닷가가 보입니다. 
▼ 혹시나 싶어서 북측체성이지 않을까 싶어서 나무가 있는 방향으로 길을 나서 보았습니다.
▼ 보시는 바와 같이 아주 작은 돌들이 쌓여져 있는데 이것만 보고는 북측체성이라고 단정하기에는 힘이들더군요.
▼ 더 이상 더운 날씨에 체성을 찾는 것은 힘이 들겠다고 생각하고 사량면사무소로 내려왔습니다. 최영사당을 지나 사량면사무소로 오다가 본 노거수
▼ 사량초등학교로 100년의 역사가 되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그렇지는 않고 1934년 원량 공립 보통학교 사량분교 인가를 받았더군요.
▼ 사량초등학교 체육관으로 삭비관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 사량진에서 나와 사량일주도로를 타고 내지마을로 나왔습니다. 이곳이 육지와 가장 가까운 곳이며 보이는 육지가 고성 땅인데 가장 높은 곳이 바로 좌이산으로 저곳에 봉수대가 있었으며 그 아래편에 소을비포진성이 있습니다.
1544년(중종 39)에 왜선 20여 척이 사량진성으로 쳐들어왔으며 그곳 사량진성에서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왜적들이 돌입하여 사량진성을 포위되었지만 만호를 중심으로 수성을 하였으며 왜구의 병사 1명이 죽고 화살에 맞아 상한 자는 10여며 이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이후 조선에서는 그들의 내왕을 금지시켰습니다. 이후 을묘왜변이 일어나게 되었고 조선은 현재의 맹선으로는 왜구의 선박을 잡을 수 없다는 판단 아래 새로운 배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바로 임진왜란에 있어서 빼 놓을 수 없는 판옥선이며 조선수군의 진을 좀 더 대마도와 가까운 가덕도에 만들게 됩니다.



덧글

  • Nocchi 2015/08/07 14:52 #

    만호(萬戶)는 말 그대로 만호를 관장하는 엄청난 의미의 관직인 데
    조선의 종4품 만호는 엄청나게 다운그레이드 된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섬이 지금은 인구가 많이 줄었지만 옛날에는 먹을 것이 풍부해서 인구가 많았다고 하죠
    제가 근무했던 여수 연도 같은 섬도 지금은 3백명이지만 옛날엔 2천명이었다고 하니
    사량도 같은 큰 섬 이라면 50년 이나 그 이전에는 "만호진" 이라는 말을 붙일 만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팬저 2015/08/07 21:19 #

    인구까지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고지도에 나오는 그림을 보아도 현재의 사량진 인구 만큼은 되었을 것으로 보이고 한 집, 한 집 따진다면 현재보다 인구가 많았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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