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지를 뒤로하고 동문지로 올라갑니다.

▼ 당포진성을 그려 놓은 것 같네요. 저건 복원되어 있는 것입니다.










▼ 현재 있는 곳이 동헌이나 포수청과 같은 관공서가 있었던 곳은 아닐까 추정해봅니다.

▼ 조금 더 올라가자 이정표가 나오는데 삼덕삼거리와 당포성지가 나오는데 이 이정표가 헷갈리게 만듭니다. 당포성지의 경우 현재 복원한 당포진성의 체성을 가르키는 것입니다. 삼덕삼거리라고 적혀져 있는 곳으로 올라가야 동문지가 나옵니다. 삼덕삼거리라고 적어 놓을 것이 아니고 동문지라고 적어 놓아야 하는데 저런 식으로 적어 놓았네요.






▼ 이제 가장 급경사인 길을 걸어서 올라가야 합니다.


▼ 여기에도 당포성지와 삼덕삼거리를 가르키는 이정표가 있습니다. 15미터만 걸어가면 동문지가 나오는데도 이렇게 표시되어져 있습니다.



▼ 삼덕사 맞은편의 가정집은 빈집으로 남아있습니다.



▼ 동문지였음을 짐작할 수 있는 여러가지가 나옵니다.

▼ 보시는바와 같이 커다란 돌이 보입니다.
▼ 보시면 돌은은 90도에 가까운 직선이 아니고 70도 정도 되어 보이게 기울어져 있습니다. 처음부터 기울어져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근대에 기울이게 하였는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문제는 이런식의 기울기는 처음 봅니다. 진짜로 기울어진 것이 맞는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렇게 경사가 기울어져 있다고 하여 조선의 수군진이 아니었던 것은 아닙니다. 임진왜란 이후 축성의 방법에도 조금의 변화가 나타났는데 그중 하나가 경사를 기울이게 한 축성방법이 있었습니다. 전부다 그렇게 한 것은 아니고 일부에서 그렇게 하였습니다.



▼ 동문지에서 바라 본 모습으로 사진과 같이 또 다른 마을이 형성되어져 있습니다. 1편에서도 이야기하였지만 조선시대 당시 당포진성의 서문은 바다로 나아가는 출입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통제영이나 삼천진으로 가기 위해서는 이곳 동문으로 나아가야 했습니다. 전투를 하기 위해서는 서문으로 출입을하고 동문으로는 백성들이나 아전, 수군들이 지나갔던 곳으로 이 동문이 주 출입문이었을 것입니다. 이런식으로 되는 부분은 위 사진에서 나온 부산진성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산진성의 경우도 남문으로 나가서 선박에 올라가는식이고 주출입문은 서문으로 한 것처럼 당포진성도 동문이 주 출입문이지 않았을까 추정해봅니다.



▼ 옹성 채성안에는 잔돌로 채워져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옹성 안의 모습을 보려고 찍었던 사진입니다.







▼ 이제 다시 복원한 당포성지로 향해갑니다.


다음편에는 최근에 복원한 당포진성(당포성지) 남측체성을 보도록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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