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포진성(당포성지)_03 진성(鎭城)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당포진성의 성문인 동문지과 서문지를 보았습니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찾아가는 남측체성으로 발걸음을 옮겨보도록 하겠습니다. 당포진성안은 사진과 같이 포곡식으로 되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3번째 만나는 우물 당포진성안은 우물이 3대이다 보니 어느정도 물에 관하여는 여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 아직 체성은 나오지 않았는데 축대형식이 보이기에 사진을 찍었습니다.
▼ 우물 앞 삼거리에 있는 이정표로 당포성지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길을 따라서 조금만 걸어가면 당포진성 남측 체성을 만납니다.
▼ 이곳은 한산대첩길이라 그런지 땅이 미끄럽지 않도록 짚으로 된 것을 놓아두었더군요. 
▼ 이제 복원한 남측체성이 보입니다.
▼ 치성이 보이는데 서있는 분들과 높이를 비교하면 될 것 같습니다.
▼ 치성 옆에도 축대와 같은 것이 보이더군요.
▼ 강아지가 반기는건지 화를 내는건지 모르겠더군요.
▼ 체성을 잘 보면 하단부와 상부는 돌의 색상이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하단부 체성을 보면 전형적인 조선초기 연안에 축성한 방식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단부는 아주 큰 돌로 축성하고 상단부로 올라가면서 작은 돌로 축성하는 방식입니다. 복원을 하면서 예산이 없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체성의 높이가 크지 않게 복원을 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보통 진성의 높이는 4~6미터 정도인데 당포진성은 3미터정도 되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어딘가 부족해보이는 느낌을 주었습니다.
▼ 남측에서 서측으로 이어지는 부분인데 밭농사를 하고 있었는데 하단부에 체성이 보입니다.
▼ 당포항이 보이네요.
▼ 복원한 부분을 잘 보면 돌의 크기가 일정한 크기로 복원한 느낌을 줍니다. 뭐랄까 기계적으로 복원을 한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 높은 곳으로 올라가면서 돌들이 작아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돌이 위, 아래 같은 크기의 느낌을 줍니다.
▼ 똑 같은 위치의 1번 치성인데 위 사진에 나오는 것과 아래 사진을 비교하면 확실하게 돌의 크기도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이정도로 보면 아래부분은 예전부터 있었다는 느낌을 줍니다.
▼ 관광객을 위한 편의상 계단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뭐 실제로는 이렇게 만들어 놓지 않죠.
▼ 위로 가지 않고 체성 부분을 보려고 합니다.
▼ 확실하게 상단과 하단의 돌의 크기도 차이가 나고 색상의 차이도 납니다. 이를 미루어 볼때 당포진성도 하단부만 남았던 부분을 상단부를 복원하는 식이었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 하단부를 보면 돌의 크기도 크기이지만 자연스러운 돌을 하단부에 메꾸어 놓았습니다.
▼ 쭉 이어진 남측체성입니다. 보시면서 어떻게 느꼈는지 모르겠습니다. 체성이 너무 기계적인 느낌을 주지 않나요?
▼ 왜냐하면 상단부에 납작한 돌을 거의다 올려 놓았기 떄문입니다.
▼ 하단부는 너무 자연스러운 느낌에 비해 상단부는 너무나 인공적인 느낌을 주는 것이 당포진성의 체성 같습니다. 뭐 이런식의 방법이 여기 당포진성만 그런 것은 아니고 전국적으로 복원이라는 카드를 내미는 곳은 다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 하단부의 돌을 보면 1미터 X 1미터도 될 정도로 아주 큰 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 하단부 위에 겨우 2단 정도 복원한 형식으로 놓여져 있습니다. 
▼ 이곳은 3~4단 정도 남아있다고 해야하나 복원했다고 이야기해야하나요?
▼ 이제 2번 치성이 보입니다. 
▼ 백과사전에서 찾아 본 당포성지에 관한 글을 보면 "1374년(공민왕 23)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하여 최영(崔瑩)이 수많은 병사와 주민을 동원하여 쌓은 성이다. ~ 중략 ~  현재 남아 있는 석축의 길이는 752m이며 높이 2∼7m, 너비 4∼5m, 면적 14,967㎡이다. 당포성은 평평한 자연할석(自然割石)을 일렬로 배열하여 기단석(基壇石)을 삼고 1자쯤 들여서 역시 자연할석으로 바깥벽을 수직으로 쌓아올리면서, 안쪽으로는 바깥보다 작은 돌과 석심(石心)을 박은 흙을 다져 밋밋하게 쌓아 올린 내탁공법(內托工法)으로 축성되었다. 고려말 조선초의 산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석축진성(石築鎭城)의 전형으로, 삼덕리 야산의 봉우리와 구릉의 경사면을 이용하여 남향으로 쌓은 포곡형(包谷形)이다." 라고 적혀 있습니다. 1편에 당포진성을 소개하면서 포곡식 성이라는 부분은 이야기하였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석축이 2~7m라고 하는데 2m는 이해가 가는데 7m는 이해가 가지 않으며 보지를 못했습니다. 팬저가 가보지 못하였던 북측체성이 7m가 되는 부분이 있는지 모르겠네요. 팬저 생각에는 백과사전을 작성하면서 잘못 기록한 것 같습니다. 한민족 백과사전을 보면 "지금 남아 있는 석축의 길이는 752m, 최고 높이 2.7m, 너비 4.5m이다. 남쪽 일부의 석축이 붕괴되어 있는 것을 제외하고 동서북쪽의 문루지는 잘 남아 있으며...."라고 적혀져 있습니다. 한민족백과사전에는 높이가 2.7m로 한 것으로 봐서 기록을 하다가 점을 안 찍었던 것이 문제가 된 것 같습니다.
▼ 치성2는 위에서 보던 방식과는 조금 다르게 축성되어져 있습니다. 
▼ 하단부에 큰 돌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옆으로 길게 형성된 돌이 보이며 돌도 10단 이상 되어 보입니다.
▼ 바로 옆을 돌아서 본 치성2로 위에서 본 느낌의 체성은 아니고 중간돌 크기로 체성을 축성해 놓았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엉망진창으로 복원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 치성 2에서 치성3으로 가면서 본 체성입니다. 거의 같은 크기의 돌로 축성을 해놓다 보니 당포진성의 축성년도가 언제일까? 하는 마음이 들더군요. 위에서 이야기하였지만 1374년(공민왕 23)에 당포진성을 축성하였습니다. 이떄에는 석성이 아니고 토성이었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그러다 조선초기에 석성을 쌓는 방식으로 보여지는데....
▼ 즉 복원한 체성은 고려말기의 토성도 아니고 조선초기의 연해읍성의 방식도 아니고 그렇다고 조선 중기로 넘어가면서 축성한 방식도 아니고 그냥 21세기 복원한 방식으로 남아서 우리들에게 이곳이 조선초기의 방식이다고 뻥치고 있는 곳입니다.
▼ 복원을 하면서 이게 맞는 방식의 복원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고 그냥 현장의 느낌대로 복원한것 같습니다.
▼ 위 사진을 크룹한 것으로 보시면 일정한 정방향 크기로 복원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문제는 조선시대 숙종,순조때 축성한 도성을 보면 일정한 크기에 면도 고르게 형성이 되어져 있고 면도칼 하나 들어가지 못하게 되어 있는데 당포진성을 복원한 것을 보면 면도칼도 잘 들어갈 것 같고 면도 고르게 형성이 되어 있지 않습니다.
▼ 3번 치성이 있는 곳에서 바라본 남해바다입니다.
▼ 다시 4번 치성이 있는 곳으로 가는데 보시는 것과 같이 풀이 제법 많이 있는 상태입니다.
▼ 체성과도 제법 거리도 먼 상태라 일단 되돌아 갑니다.
▼ 되돌아 오면서 찍은 사진으로 보시는 것과 같이 일단 걸어다닐 정도이긴 합니다.
▼ 1번 치성이 있는 곳 옆 체성의 하단부로 위에서 본 인공적으로 사각형으로 만들어진 체성과 조선초기때 축성한 방식과는 확연한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일단 돌도 크고 돌과 돌사이에 잔돌을 끼워 맞추는 방식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편에는 내탁으로 이루어진 체성의 획각로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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