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포진성(당포성지)_04 진성(鎭城)



계단을 타고 체성위로 올라가서 바라본 당포항과 장군봉의 모습
▼ 당포진성은 성벽 양쪽 모두 돌로 축성한 협축식 방법이 아니고 한 쪽은 돌, 한 쪽은 흙으로 채워 놓은 내탁식 방식이라는 것을 알 수있습니다.
▼ 올라가는 부분에는 여장과 같이 흙이 돌출되어져 있습니다. 이게 계속해서 이어지는 것은 아니고 일정하게 올라가고 나서는 더 이상 진행하지 않더군요.
▼ 치성 2에 도착하였습니다.
▼ 흙 위에 잔디가 뿌려져 있어서 올라가는데 무리는 없더군요.
▼ 치성 3에 도착을 하였습니다. 치성 3의 경우도 보시면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을 것입니다.
▼ 분명하게 잔돌끼움 방식입니다만 이상할 것입니다. 일단 활석이 너무 정교한 크기로 만들어져 있으며 모양 또한 정사각형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치성 3은 여장이 없어서 그런지 왠지 허전하네요.
▼ 치성 3에서 치성 4방향을 바라보고 찍은 사진으로 높이가 높지 않은 것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 정상이라고 해야하나 아무튼 당포진성의 남측체성과 동측체성이 만나는 지점은 분명합니다.
▼ 산 정상에는 육각정의 정자가 놓여져 있는데 주민들이 와서 쉬어갈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것 같습니다.
▼ 회각로의 폭은 제법 넓어서 트럭이 왕복으로 지나가도 될 정도였습니다.
▼ 치성 4가 보입니다. 치성 4는 정상보다 아래에 있습니다.
▼ 관광객과 주민의 편의를 위해 다리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 체성의 높이는 2미터 정도 되어 보였습니다.
▼ 동문지가 있는 방향을 바라 보았습니다. 눈 앞에 장군봉이 보이고 가장 끝이 통영입니다.
▼ 동문지 앞의 관유마을이 보입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삼덕리는 원항, 당포, 관유마을을 합쳐서 삼덕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만 당포마을에서는 이제까지 당포로 사용하였는데 삼덕리로 사용하고 있다면서 앞으로 당포항으로 부를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 동문지를 나와서 현재의 산양읍을 거쳐서 삼천진으로 가고 산양읍을 거쳐서 통영으로 갑니다. 관유마을이 동문지 앞에 있었는데 이곳이 백성들이 거주를 하였을 것이고 당포진성에는 수군진에 필요한 관공서들이 자리하였을 것입니다. 뭐 일부 민가들이 있기는 했겠죠.
▼ 장군봉은 예전 조선시대때에는 이정표의 역활을 하였을 것입니다.
▼ 정상에서 동문지로 내려가는 길이 있기는 있었는데 풀이 많아서 온 길을 다시 되돌아 왔습니다. 
▼ 현재 당포항 포구는 어선과 여객선이 오고 가는데 현재 욕지행 여객선이 오고 가고 있습니다.
▼ 내려오면서 찍은 체성으로 돌과 흙이 만나는 부분이 보입니다.
▼ 아래부분에 기단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 당포성지 안내문으로 3편에서 설명을 하였습니다. 백과사전을 보면 "최영 장군이 병사와 많은 백성을 이끌고 성을 쌓고 왜구를 물리친 곳이라 전한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왜구들에 의해 당포성이 점령당하였으나 이순신 장군에 의해 다시 탈환한 곳이다"고 적혀져 있습니다. 남해안 지역에 전해져 오는 것중 하나가 이순신 장군의 승전지와 관련된 일화가 많이 있습니다. 이순신 장군 만큼이나 고려 최영 장군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전해져 옵니다. 흔하게 보는 것이 최영 장군의 사당이지요. 현재 최영 장군의 사당이 있는 곳은 사량진,미조진, 제주도의 추자도에도 있으며 이곳 당포진에는 장군당이 있는데 이순신 장군이나 최영 장군을 기리는 사당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 그나마 괜찮게 복원이 되었다고 볼 수 있는 계단 옆 체성
▼ 이 멍멍이는 반기는 것인지 아니면 덤벼들라고 하는 것인지 모르겠네요. 일단 컹컹거리는 소리를 높게 지르는 것을 봐서는....
▼ 당포진성이 왜? 이곳에 왔을까? 에 대한 명학한 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당포진성은 오목하게 생긴 포구에 뒤는 막혀있고 앞은 섬들이 막아주어서 가까이 들어와야 아군의 선박이 정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입니다. 이로 인해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에도 안전하게 선박을 보호할 수 있어서 이곳에 수군진을 설치한 것 같습니다. 크게 보면 거제에서 고성과 남해로 이어지는 길목이기도 하고요.
▼ 당포진성에서 선소와 객사가 어디에 있을까? 하는 부분이 아주 숙제와 같은 부분입니다. 지도에 보는 것과 같이 당포진성 앞에는 바로 바다로 이어지는 부분입니다. 어떤분들은 욕지도행 여객선터미널이 선소로 추정을 합니다만 그곳은 현재 매립이 된 상태에서 건물을 올린 것입니다. 조선시대때에는 과연 저 여객선터미널이 선소였을까? 하는 부분에는 약간의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예전 기준으로 하면 거의 바닷물이 들어온 것이라면 차라이 현재 원항마을 입구가 선소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또 무엇보다 선소와 객사가 함께한 부분 때문에 더욱 더 그러한 의문이 있더군요.
▼ 당포마을에서 나와 원항마을로 왔습니다. 여기가 객사가 있었던 곳은 아닐까 싶어서 돌아다녀 보았지만 흔적은 찾기가 쉽지 않더군요. 
▼ 원항마을 입구에서 본 나무로 여러개의 나무들이 마을입구에 있으며 나무의 수명도 100년 이상은 되어 보였습니다. 이 근거로 이 나무가 있었던 앞에 있는 집 근처가 객사와 선소가 아닐까 추정을 해보고 찾아보았으나 찾기가 쉽지 않더군요. 이부분은 이제 조금 있으면 해양문화재연구원에서 경상우수영편을 만들어 낼 것인데 그곳에 적혀있을 것 같습니다.
▼ 삼덕리 마을제당 안내문으로 장군봉이 있는 곳에 있습니다. 이 안내문은 원항마을 입구에 세워진 것입니다.
▼ 원항마을 입구에 있는 벅수로 할배 벅수입니다. 반대편 길에 여자 벅수가 있습니다.
▼ 맞은편에 있는 할매 벅수. 벅수가 있다는 것은 이제 마을이 시작된다는 의미로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이 벅수는 1920경에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할배 벅수는 코가 할매 벅수는 눈이 많이 떨어져나가서 형태를 잘 알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 관유마을 입구에 세워진 할아버지. 할머니 벅수입니다.
▼ 삼덕리 원항마을에서 산양읍 방향으로 걸어서 내려오면(버스 1구간) 만나는 것이 바로 당포진성 만호 선정비입니다. 여기서는 잘 찾기가 힘이들죠.
▼ 버스정류장 맞은편 건물 옆으로 난 조그마한 길을 들어서면 선정비가 보입니다.
▼ 보시면 어 선정비가 한 개이네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 선정비는 가운데 부서질 것 같은 느낌을 줍니다.
▼ 예전 조선시대때 흔하게 보던 비석으로 디자인되어져 있습니다.
▼ 이 비석말고 뒷편에 암각으로 세겨진 또 다른 선정비가 새겨져 있습니다. 상태가 좋지 못하여 어떤 내용인지는 몰라도 "당포만호오공문주청덕선정비"라고 적혀있다고 통영문화원 김일룡 원장이 이야기합니다.
▼ 지나가다 그냥 지나치기 쉬운 곳에 선정비가 자리하고 있으며 바위에 음각으로 새겨 놓은 선정비는 팬저도 처음 봅니다.
▼ 이렇게 선정비가 들어서 있을 정도로 예전에는 당포의 길목이었음을 증명해줍니다.
당포진에는 수군 만호(종4품)가 근무 하며 만호는 전선 1척,  사후선 2척에 장교  6명, 사부  18명, 화부  19명, 포수  24명, 타공  3명, 격군 120명과 군량미 57석, 중미  3석, 미식 3석을 관장하였다고 합니다.

당포항 공사를 하면서 바닷가에서 목책이 발굴이 되었다고 합니다. 현재 창원시 진해구에 있는 제포진에서도 수군들이 선박의 입출입을 관장하는 목책이 발굴이 되었는데 이곳 당포진에서도 발굴이 되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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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빵꾼 2016/06/10 01:48 #

    잘봤습니다. 지도로 보나 경관으로 보나 남해는 물론이고 서해까지 방어할 수 있는 요충지임이 분명한데, 성의 규모나 축성기법이 그다지 견고해보이질 않네요.(물론 당대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겠지매) 지형조건 자체가 방어에 용이하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 팬저 2016/06/10 02:23 #

    지금의 기준보다는 조선시대 기준으로 보았을때 위치상 필요한 지점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성곽이야 조선시대 초기 방식이라... 적은 수의 왜구들은 방어하기에는 불편하지 않았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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