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의 신 객주 동헌 고증에 관하여 읍성(邑城)



아래에 나올 이미지는 얼마 전에 끝난 KBS 드라마 "장사의 신 객주"에서 나오는 한 장면입니다. 의주부윤이 천가객주들이 아편밀매 한 것에 관하여 재판을 여는 모습의 신으로 이부분이 고증이 맞는 것일까요? 요즘 아이들은 사극을 통해서 역사를 배우는데 이게 맞는 것일까요? 한번 보시고 이야기해주시기 바랍니다.
보시고 고증적인 부분에 문제점을 찾아 보셨는지요? 보셨다면 몇 가지 정도 보이시는지요? 가장 위에 있는 장면과 두번째로 나오는 장면은 하나의 장면으로 연결된 부분입니다. 뭐 드라마니 이해를 해달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그래도 고증에 맞게 제작하는 것이 맞겠지요.


일단 가장 먼저 이야기해야 할 것이 바로 동헌의 단청입니다. 보시면 단청이 보이지 않습니다. 단청은 건물의 영구보존을 위해, 재질의 조악성을 은페하기 위해서도 있지만 세 번째인 건물의 위엄을 나타나기 위해서입니다. 읍치에서 단청이 칠해진 건물은 객사와 동헌 등 위엄을 보여주기 위해 칠하는데 여기서는 보이지가 않습니다. 

두 번째는 재판을 받는 과정인데 동헌의 현판이 명덕관으로 적혀져 있습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일단 맞지가 않습니다. 조선시대 당시 의주 동헌의 당호는 취승당(聚勝堂)입니다.(이 부분은 정확하지가 않네요) 조선시대 동헌은 보통 근민헌과 평근당, 안민헌, 제민헌 등을 사용합니다. 백성과 가까이 지내면서 고을을 평안하게 잘 다스리겠다하여 평근당(平近堂),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겠다하여 안민헌(安民軒),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제하겠다하여 제민헌(濟民軒), '민가근불가하(民可近不可下)"곧 백성을  친근히 하되 하대하지 않는다는 근민헌이 사용했습니다. 조신시대 당시 동헌은 헌(軒)과 당(堂)으로 사용되는 당호를 많이 사용하였습니다.

조선시대 객사는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임금에 대한 망궐례를 지내는 것도 있지만 관의 업무를 보는 무관과 문관의 숙박 기능도 함께하였습니다. 드라마 속에 나오는 관(館)은 우리가 잘아는 여관의 관(館)과 같은 뜻으로 숙박 등의 제반 편의를 제공하는 것으로, 보통 ‘관(館)’으로 통칭되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역(驛) 또는 참(站)을 관이라고 불렀다고 하였습니다. 조선시대 당시 객사의 당호는 보통 000관으로 불리었습니다. 우리가 잘아는 전북 고창 객사는 모양지관, 성주객사는 성산관, 진해현 우산관, 광양 희양관 등 많은 고을에서 객사는 관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고려시대에 사용한 고을의 옛 이름을 사용하여 당호로 사용하였는데 의주의 경우 고려시대 당시 용만현(龍灣縣)이라고 하여 의주 객사의 당호는 용만관입니다. 이렇게 용만이라고 한것은 압록강을 용만이라 불렀던 데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합니다. 임진왜란 당시에 임금이 의주로 피난하게 되자 용만관은 임시로 국사를 처리하는 곳이 되었으며, 명나라 장수나 사신의 영접은 주로 여기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후 많은 중국사신과 조선의 사신들이 이곳 용만관에서 머물렀습니다. 따라서 드라마속에 나오는 명덕관은 전혀 뜻이 맞지 않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여관에서 재판을 받는 식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세 번째는 의주 수령이 재판을 보는 과정입니다. 보시면 수령은 대청마루에 올라가서 앉아있지 않고 섬돌에 앉아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청마루에 앉아서 재판을 보는 것은 재판을 보는 재판인들 보다 높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심리적인 부분도 들어가 있는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현재의 법정도 판사가 조금 높은 곳에 앉아있죠. 장사의 신 객주 다음 편에 보면 또 다른 수령이 재판을 보는 과정이 나오는데 이번에는 대청마루에 바로 앉아 있습니다. 
아래에 나오는 장면은 조선시대 당시 법정에서 재판이 벌어지고 있는 모습입니다. 위와 비교한다면 차이가 있지요. 수령이 대청마루 의자에 앉아서 재판을 진행하고 있으며 수령 앞에 서리가 엎드린 상태에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또 뒤에는 나이가 작아 보이는 청년이 보입니다. 수령의 잔 심부름을 하는 통인일 것으로 보이고 섬돌에 서있는 두 명은 비장과 급창으로 보여지며 법정에 서있는 사람들은 형리(하얀색 복장)으로 보이고 사령(색상이 있는 복장)이 서있습니다. 그리고 법정에는 재판을 기다리는데 앉아 있습니다. 자세히 보시면 법정에 서있는 사람들은 고개를 들고 있지 않습니다.  
네 번째가 바로 위 사진을 참고하면 답이 나오지요. 즉 법정에서는 고개를 숙이고 있어야 하며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해서 일어서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고 부복한 상태에서 항변을 하는 것인데 드라마에서는 천가 객주의 아들과 딸이 수령에게 일어서서 그렇지 않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게 하였다가는 큰 일이 나겠지요.

다섯 번쨰 법정에서는 칼을 들고 있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칼과 창을 들고 있지요. 지금으로 치면 군사법정도 아니고 설사 군사법정이라고 칼과 창을 들고 위협을 주지 않지요. 

여섯 번째 군관들이 칼을 들고 있는데 띠돈도 하지 않고 칼을 들고 있지요. 이건 몇 번을 이야기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일곱 번째 법정에는 형방이 죄에 관하여 알리는 역활을 하는데 형방은 보이지 않고 무장한 군사들이 보이네요.

여덟 번째 의주에서 재판보는 과정이 아니고 세 번째 사진을 보면 오방기들을 들고 있는데 이런 경우는 없지요. 

아홉 번째 세 번째 사진을 보면 양반 역활을 하는 장혁이 아닌 최돌이역을 맡은 이달영님은 무릅을 꿇고 앉아있어야 하지요.

뭐 한가지 좋아졌다면 포졸들이 당파 대신 창을 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덧글

  • 빵꾼 2016/06/10 01:40 #

    삼지창이 아닌 것만 해도 감개가 무량합니다..
  • 팬저 2016/06/10 02:21 #

    예... 일단은 거기에 만족해야하나요? ㅠㅠ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구글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