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해현은 현재의 진해와는 다른 지역이다 읍성(邑城)



1872년 지방지 진해현의 모습입니다. 진해현이라고 하는 것은 지금의 진해와 헷갈리게 하지 않기 위해 조선시대 진해 당시의 행정구역이었던 현을 부쳐서 진해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진해라는 지명이 500여년 이어오던 지명이었는데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에 의해 지명이 강제적으로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기존에 있던 지명인 진해가 사라지고 동면,북면,서면을 나누어서 불리었습니다. 동면,북면,서면에 예전의 진해 지명중 진을 앞에다 두고 부르면서 진동,진북,진서면으로 불리게 되었다가 진서면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양전면, 함안군의 비곡면, 고성군의 구만면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진서와 진양군의 양전면의 이름을 따라서 진전면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이 동,서,북면은 1872년 지방지에 잘 나와있습니다.
아무튼 조선시대까지 진해현이 있가가 일제강점기때 현재의 진해로 지명이 옮겨가다 보니 이제 진해라고 하면 모두들 현재의 진해를 진해라고 알고 있습니다. 

진해현을 다스린 고을의 원님중 유명한 분중 한 분이 바로 사상의학을 만든 동무 이제마가 진해현에서 현감을 지냈습니다. 1886년 부임을 받고 1887년 2월 진해현으로 내려와서 1889년까지 진해현에서 현감생활을 합니다. 그 사실을 가지고 이제마에 관한 소설에 진해가 만히 나오게 됩니다. 문제는 당시 이제마가 부임한 진해현이 어디인지 잘 모르다보니 소설속에 나오는 진해라는 곳은 현재의 진해지역을 소설속에 나오게 됩니다. 

그 사례를 몇 개 소개하겠습니다. 아래 사진은 진해현이 있었던 진동면의 모습으로 10여년전의 모습이라 지금과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뭐 그래도 산과 바다는 별 차이가 없으니....(사진출처 :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
“진해는 천자봉과 장복산을 주봉으로 하는 화강암류로 구성된 급한 산지가 진해만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었다. 이 사진에서 뻗은 산각이 진해만으로 뻗어내리고 만 내에는 크고 작은 반도와 곶, 섬들이 즐비했다. 동쪽에는 보배산, 굴암산이 있고, 서쪽에는 산성산, 북쪽에 천자봉, 장복산, 불모산 등이 솟아 있었다. 남쪽으로는 진해만을 끼고 있어 배산임해의 아름다운 지형을 이루고 있었다.” 이수광의 장편소설 “신의 이제마” 2편에 나오는 대목으로 진해현에 관하여 이야기하는 부분입니다.


“임진년(고종 29년, 1892) 여름이었다. 한양에서 어명이 내려왔다. 경상도 웅천(지금의 진해)의 현감을 맡으라는 전교였다. 경상도 병마절도사 자리까지 겸임하라는 내용이었다.” 노가원의 장편소설 “ 태양인 이제마” 3편에서 나오는 대목입니다.


“ 1887년, 이제마는 홀로 지금의 마산시 진동면에 해당하는 진해를 향해 길을 떠났다. 이제마의 나이 어느덧 쉰하나가 되었다.” 김주영 저자의 “이제마 민족 의학의 새 지평을 연 태양인”에서 나오는 대목입니다. 


“이제마는 평소 해역증과 열결반위라는 지병을 가지고 있었다. 해역증은 상체는 완전하나 하체가 약하여 걷는 데 불편함이 있는 병을 말하고, 열결반위는 구토증을 말한다. 자신의 지병을 치료하기 위해 한의학에 관심을 가졌고, 진해현감으로 근무할 때에는 장복산에 올라 직접 약재를 채취하고 그것을 먹음으로써 임상실험을 하였다.” 경남신문 2009년 12월 16일자 생활속의 과학 (46) 이제마와 멘델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진해 고을은 진해 만의 동쪽을 점하고 있었다. 그곳은 통영 반도, 거제도, 가덕도로 둘러싸인 임해 고을이다. 만의 서편에는 마산 항이 자리 잡고 있었다.” ~ 중략 ~ “제마는 가족들을 데리고 한양을 둘러 경상도 진해 땅으로 내려갔다. 웅천군에 소속되어 있던 진해는 당시만 하더라도 별 복 것이 없는 초라한 해변 어촌이었다.” ~ 중략 ~ “제마가 진해현을 배려다 본 그 험준한 재가 바로 장복산, 웅산, 불모산 등이 이룩한 산길로 병품처럼 마을 앞에 펼쳐져 있는 진해만을 막아주고 있었다. 동족에 보배산 굴암산이 버티고 있고, 서쪽에는 산성산이 뻗쳐 있어서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지형을 갖추고 있었다.” 라고 저자는 적고 있다가 아래편 페이지에는  “그러마 이재마가 현감으로 부임했던 진해현은 지금의 진해시가 아니다. 지금의 진해시는 러일전쟁 후에 급속도로 발전한 도시이다. 당시만 해도 지금의 진해시는 존재하지 않았다. 이제마가 현감으로 부임했던 진해 고을은 지금의 진동면을 뜻한다. 진동면에는 이제마가 태어나기도 전인 순조 32년 1832년에 진해 현감 이영모에 건립된 동헌, 관아와 부속건물이 그대로 남아있다. 이제마가 현감으로 근무한 곳이 바로 여기다. 이 건물은 이제마가 이 나라에서 자신이 거처햤던 곳으로는 유일하게 남겨 놓은 유적이다.”라고 적어 놓고 있다. 정소정 저자의 “소설 태양인 이제마” 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이제마에 관련된 소설이나 독자투고를 보면 상당부분 현재의 진해를 이제마가 부임한 진해현인줄 알고 소설에 등장합니다. 저자가 진해에 관하여 알고 있지 못하는 상태에서 소설이 작성되고 있다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장면입니다. 

동해와 독도가 일본해와 일본땅으로 기록이 되어져 있는 많은 지도를 바로 잡고자 반크에서 활동을 한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지역에 있는 잘못된 정보도 바로 잡아야 겠다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덧글

  • Nocchi 2016/09/09 06:37 #

    이제마 선생님께서 가까운 진동면에 계셨군요! 북쪽 분 인데... 재미있는 사실 알고 갑니다 이제 진동면 지나갈 때 마다 생각이 나겠네요!
  • 팬저 2016/09/09 11:36 #

    아~ 예 창원에서 역사적 인물난이 있는 것 같습니다. 유명한 인물을 통한 관광객 유치인데 이게 유명한 분이 없어서 고전중인데 이제마를 활용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