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노래속에 나오는 진해(鎭海) 내가사는 동네



바람 부는 저 들길 끝에는
삼포로 가는 길 있겠지
굽이굽이 산길 걷다보면
한발두발 한숨만 나오네
아~ 뜬구름하나 삼포로 가거든
정든 님 소식 좀 전해주렴
나도 따라 삼포로 간다고
사랑도 이젠 소용없네
삼포로 나는 가야지

저산마루 쉬어가는 길손아
내 사연 전해 듣겠고
정든 고향 떠 난지오래고
내님은 소식도 몰라요
아~ 뜬구름하나 삼포로 가거든
정든 님 소식 좀 전해주렴
나도 따라 삼포로 간다고
사랑도 이젠 소용없네
삼포로 나는 가야지
삼포로 나는 가야지

1983년에 나온 강은철 2집에 나오는 <삼포로 가는 길>입니다. 4~50대 나이라면 한 번은 들어 본 노래가 삼포로 가는 길입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삼포는 현재 창원시 진해구 명동에 있는 삼포마을을 배경으로 한 노래로 <삼포로 가는 길>은 배따라기의 이혜민이 고등학생 때 진해 삼포에서 있으면서 만든 곡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이야 명동까지 도로가 잘 놓여져 있지만 1980년대만 해도 오지 중의 오지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노랫말 가사에도 먼 길이 나오죠 “굽이굽이 산길 걷다보면 한발두발 한숨만 나오네” 이렇게 말이죠. 2008년에 삼포마을이 있는 곳에 <삼포로 가는 길> 노랫말이 세워져 있어서 지나가는 이 에게 <삼포로 가는 길>을 들려주고 있습니다. 

<삼포로 가는 길>과 비슷한 제목의 소설이 바로 황석영의 1973년에 발표한 <삼포 가는 길>입니다. 소설의 제목으로 등장할 만큼 나오는 “삼포” 이 삼포가 진해에 있는 삼포일까요?

"사람이 많이 사나요, 삼포라는 데는?"
"한 열 집 살까? 정말 아름다운 섬이오. 비옥한 땅은 남아돌아 가구, 고기두 얼마든지 잡을 수 있구 말이지."
영달이가 얼음 위로 미끄럼을 지치면서 말했다.
"야아, 그럼, 거기 가서 아주 말뚝을 박구 살아 버렸으면 좋겠네."
"조오치. 하지만 댁은 안 될걸."
"어째서요."
"타관 사람이니까."
~ 중략 ~

"어디 일들 가슈?"
"아뇨, 고향에 갑니다."
"고향이 어딘데······."
"삼포라구 아십니까?"
"어 알지, 우리 아들놈이 거기서 도자를 끄는데······."
(중략)
"바다 위로 신작로가 났는데, 나룻배는 뭐에 쓰오. 허허, 사람이 많아지니 변고지. 사람이 많아지면 하늘을 잊는 법이거든."
작정하고 벼르다가 찾아가는 고향이었으나, 정씨에게는 풍문마저 낯설었다. 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영달이가 말했다.
"잘됐군. 우리 거기서 공사판 일이나 잡읍시다."
그때에 기차가 도착했다. 정씨는 발걸음이 내키질 않았다. 그는 마음의 정처를 방금 잃어버렸던 때문이었다. 어느 결에 정씨는 영달이와 똑같은 입장이 되어 버렸다.
기차가 눈발이 날리는 어두운 들판을 향해서 달려갔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삼포는 작가 황석영이 만들어 낸 가상의 공간입니다. 노래 <삼포로 가는 길>에 나오는 삼포와는 동명이지만 다른 곳입니다. 삼포는 바닷가는 맞지만 섬은 아니지요.  원래 소설 속의 삼포는 일종의 이상향을 뜻하는 가상의 지명입니다. 황석영의 소설 <삼포 가는 길>은 나중에 영화와 드라마로 제작이 되었습니다만 진해와는 무관합니다. 어떤 자 들은 삼천포 지명에서 일부러 천을 빼고 삼포라고 하는데 소설은 어떨지는 몰라도 노래는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창원시 진해구에 등장하는 소설 속의 이야기는 또 뭐가 있을까요? 우리들이 한 번씩 들어보고 보았던 전우치가 있을 것입니다. 전우치는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소설로도 등장하여 한 번씩 들어 본 인물이죠. 권오단의 역사소설 <전우치>를 보면  
“말이 나온 김에 제가 도적이 된 이야기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묵묵히 앉아 있던 배복룡이 뜬 끔 없이 입을 열었다. 
“지금으로부터 9년 전이니 경오년(중종 5년 1510년)이군요. 그해 3월에 저를 가르치시던 스승님이 돌아가지자 연고가 없던 저는 배운 것이 무예라고 남으로 내려가 웅천성의 말단 군졸이 되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산을 달음질하며 무술을 배운 까닭에 걸음이 빨라 전령 임무를 맡았습지요”

~ 중략~

예상대로 전날 제포의 우두머리인 대조마도와 노고수장 등이 군사 오천명을 거느리고 쳐들어와 웅천성 밑에 인가를 모조리 불 지르고 성을 포위하고 있지 뭡니까? 다행이 웅천 현감 한윤이 성을 지키며 독전하다가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김석철과 대마도 치위관 이식, 김해 부사 성수재가 군사들을 끌고와 협공하여 웅천성을 지킬 수 있었지요“
1510년 삼포왜란 당시 제포진과 웅천읍성이 무너지는 과정과 수복하는 과정을 소설 속에 포함을 시켜 놓았으며 소설 속에 등장하는 병마절도사 김석철, 대마도 치위관 이식, 김해 부사 성수재는 실제 역사속의 인물입니다. 1510년 4월 4일부터 4월 19일까지 발발한 삼포왜란을 양력으로 환산하면 1510년 05월 11일 토요일부터 시작하여 1510년 05월 26일 일요일까지 전투가 벌어진 것으로 계산을 할 수 있습니다. 삼포왜란 당시 조선군의 활동을 기리는 행사를 하자고 필자는 오래전부터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소설 속에는 웅천이 많이 등장하는데 아무래도 임진왜란에 관련된 소설 속에 등장하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다 보니 잠시 스쳐가면서 등장하는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친일행위로 인해 자유로울 수 없는 이광수의 문학소설 <이순신>에서도 웅천이 등장합니다. 
“다음에 웅천 현감 허일의 소솔 동현 기관 주귀생은 말하되, 김해부내에 사는 내수사노 이수금이 칠월 이일에 웅천현에 있는 그 부모를 보러 웅천현에 와서 말하기를, 김해부 부처 바위 선창에 와 있는 적의 수군들도 전라도 군사와 접전한다는 말을 논하더라 하며....“
웅천은 잠시 잠시 등장하는 부분이 많아서 생략을 합니다. 

은승완 장편소설 <적은 아직 오지 않습니다(이순신 외전)>에서는 웅천보다 안골포가 등장합니다. 
“나여문은 안골포에서 조선 수군에 붙잡힌 왜군의 무사 출신 포로였다. 조선군의 문초를 받던 도중 할복 자결을 시도했던 그글 살려낸 이도 장군이었다. 그때부터 그는 나여문이라는 조선식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다. 칠년의 왜란 동안 조선 수군을 도왔던 그는 지금까지도 장군의 세작 노릇을 자처하고 있다. 여섯 달 전 왜국에 정탑을 다녀온 나여문이 찻잎과 다기로 쓰는 사발, 차 달이는 웅기다관을 바쳤다. 왜국에서는 일반 여염집에서도 차를 즐긴다고 나여문은 조심스레 전했다. 조선의 도공들이 그곳에 끌려가 옹기와 도자기 기술을 전수해 준다고도 했다. 왜란 때 찬탈 해간 막사발과 백자 그릇들이 제후들의 가보로 전해진다는 말에 장군은 탄식했다.” 

홍성원 장편소설 <기찻길>에서 근대의 진해가 등장합니다. 
진해에 도착한 지 어느새 두 시간이 흘렀다. 세패로 나뉜 일행들은 제 각가 영선을 찾아 넓은 시내로 흩어졌다. 정호와 소연이 한패가 되고, 창구와 금숙이가 또 한 패가 되고, 진영은 영선이 아버지와 한 vO가 되어 시내로 뿔뿔이 흩어진 것이다. 그러나 영선은 진해에서도 두 시간이 지나도록 종적이 묘연하다. 

~ 중략 ~

영선이를 보았다는 마산의 아주머니는 영선이가 분명히 다리를 쩍뚝이며 진해 쪽으로 넘어갔다고 했다. 진해로 넘어가는 길이 그 부근에서는 그 길 하나뿐이어서 영선이가 아주머니 눈을 피해 딴 곳으로 갔을 것 같지는 않다. 진해로 넘어간 것만은 틀림없는 모양인데, 영선이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진해에서도 끝내 종적이 묘연한 것이다.

오랫동안 등장하는 것은 아니고 영선이를 찾기 위한 과정 속에 등장을 합니다. 

1966년 가수 이미자씨가 불렀던 <황포돛대> 입니다. 
마지막 석양빛을 기폭에 걸고
흘러가는 저 배는 어디로 가느냐
해풍아 비바람아 불지를 마라
파도소리 구슬프면 이 마음도 구슬퍼
아 - 어디로 가는 배냐 어디로 가는 배냐 황포 돛대야

순풍에 돛을 달고 황혼 바람에
떠나가는 저 사공 고향이 어디냐
사공아 말해다오 떠나는 뱃길
갈매기야 울지마라 이 마음도 서럽다
아 - 어디로 가는 배냐 어디로 가는 배냐 황포 돛대야

이 노래는 작사 이용일, 작곡 백영호가 만든 곡으로 이용일 작사가가 고향을 생각하며 지은 노래입니다. 현 <황포돛대> 노래의 노래비가 현재 진해 웅동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진해를 배경으로 한 노래와 문학속의 이야기는 많지는 않습니다만 더욱 더 많은 작품들이 나와 진해를 기억할 수 있게 하며 국민들에게 사랑을 받는 작품으로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참고로 창원시 의창구 북면에도 삼포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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