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영 수책(水柵)은 어디에 있었을까요? 영성(營城)



1872년 지방지와 1830년 통제영성 지도를 보면 선박들이 정박한 곳 앞에 뭔가가 설치되어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1830년 통제영성지도에도 동파수와 서파수가 그려진 곳이 나옵니다.
▼ 통제영 수책으로 현재 강구항의 선박의 입출입을 통제하는 곳으로 좌우에 수책을 만들었는데 쇠사슬줄로 당겨서 선박의 입출입을 막았습니다. 이는 가장 가까운 곳에 설치함으로 선박의 입출입을 통제하기 좋은 지리적인 여건이 있어서입니다. 성문이 열고 닫히는 것과 같이 이 수책도 함께 열고 닫혔습니다.수책의 거리는 지금의 강구항 입구 좁은 곳이 약 100미터인데 예전에는 조금 더 길었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아마도 200미터 내외일 것으로 보여집니다.
▼ 200미터 정도 되다보니 통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목책으로 좌우에 박아버리고 가운데만 선박이 입출입시켰습니다. 아무래도 이렇게 해야 선박의 입출입을 관리하기 편하였을 것입니다. 지금으로 치자면 위병소와 같은 역활이라 봐야할 것입니다. 수책 좌우에 선박입출입을 통제하는 초소와 같은 것을 설치하였는데 바로 파수입니다. 동과 서에 파수를 설치하였다고 하여 동파수와 서파수로 이름을 불렀습니다.
▼ 통제영에만 수책을 막아서 선박의 입출입을 통제한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창원 진해 제포에 있는 제포진과 통영 당포에 있는 당포진에서도 목책을 이용한 선박 통제를 하였고 실제로 발굴이 되었다고 합니다. 또 신라시대 장보고가 활동한 완도에서도 목책이 발굴이 되었다고 하는 것을 봐서 목책은 시대를 떠나 광범위하게 활용을 한 것 같습니다. 
▼ 임시로 만든 서파수의 모습으로 진짜로 이렇게 하였는지는 확인이 불가능합니다.
이러한 수책부분을 통영한산대첩축제에서 재현한다고 하여 놓았습니다. 사진을 보면 현재의 방식으로 사람들이 걸어 갈 수 있게 만들어 놓았으며 좌우에 동파수와 서파수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다만 100미터가 되지 않는 곳을 건너는데 1.000원이 들며 왕복은 2,000원입니다. 뭐 건너가는데 1분도 되지 않는데 이정도라면 비싸다고 소문이 난 거가대교보다 더 비쌉니다. 거가대교는 침매터널 포함하여 8.2km에 10,000원을 받는데 이건 100미터에 1,000원이니 얼마나 비싼지 알 것입니다. 다행이라면 축제 동안에만 다닌다는 것입니다. 뭐 축제기간 소망의 다리라는 이름을 명명하긴 하였지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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