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영성이 있었던 병영성과 읍성과 거리차이 영성(營城)



진주읍성 즉 진주성을 이야기하는데 있어서 시대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명칭이 바뀌는 것 같습니다. 전체적으로는 진주읍성이 맞겠습니다만 해방후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진주성입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끝난 후 진주읍성과 그 전의 진주읍성은 격이 다른 식이라 봐야할 것입니다. 임진왜란 전과 임진왜란 당시에는 진주는 진주목이었습니다. 양란이 끝난 후도 진주는 진주목이었지만 경상우도를 관리하는 군사 도시로서의 역활을 하게되며 목사보다 계급이 높은 경상우도병사가 진주로 오게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진주읍성은 경상우도병사가 다스리는 경상우도병영성이 되고 진주는 진주목사가 다스리는 진주목이 됩니다. 

진주읍성은 조선시대에 큰 변화를 거치게 되는데 첫 번째가 그동안 고려시대 부터 있어왔던 진주읍성이며 두 번째가 임진왜란 직전 기존 진주읍성을 조선초기 진주읍성 보다 규모를 확대를 하게 됩니다. 임진왜란 이후 진주읍성은 외성과 내성으로 또 한 번 변화의 길을 가게 됩니다. 네 번째가 바로 현재의 진수읍성으로 조선시대 후기 진주읍성의 내성 규모입니다.

이미지 출처 : 경상대학교 김준형 교수의 조선시대 진주성의 규모와 모양의 변화
위 이미지를 보면 임진왜란 당시의 진주읍성은 아주 규모가 큰 읍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다 조선후기때에는 임진왜란 당시 진주읍성보다 규모가 작은 진주읍성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격으면서 조선후기 진주읍성의 외성과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의 흔적은 사라져 버렸으며 그곳에 시가지가 형성화되어져 있어서 예전 진주읍성을 추정하기가 쉽지 않은 상태입니다.

진주읍성안에는 경상우도병마절도사가 근무하고 있었으며 진주동헌에는 진주목사가 근무하는 형태로 되어져 있습니다. 평안도 병마절도영이 있었던 안주의 경우 평안병마절도사와 안주목사는 안주읍성안에 함께 있습니다. 또 함경도 북병영과 남병영이 있었던 경성과 북청의 경우 경성읍성과 북청읍성에 병마절도사와 수령이 함께 근무하였습니다. 하지만 삼남지방은 읍성과 병영성이 분리되어서 생활하였습니다.

 조선 전,후기 모두 전라병영성이 있었던 강진은 강진읍성과 전라병영성과는 직선거리로 10km나 떨어진 곳에 있어서 현감과 병마절도사가 자주 서로 마주치기가 쉽지 않은 구조입니다. 
▼ 울산에 있는 경상좌병영성을 보면 경상좌병영성과 울산읍성과는 직선거리 약 3km 정도됩니다. 이 거리라면 자주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경상좌병영성과 울산읍성이 따로 성곽을 만들어 생활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조선초기 경상우도병영성이 있었던 창원은 창원읍성과 경상우도병영성과 직선거리로 약 4km정도 됩니다. 
 위 3곳과 비교하면 조선후기 경상우도병영성이 있었던 진주의 경우 진주객사와 경상우도병마절도사와 거리는 직선거리로 1km가 되지 않으며 조선후기 경상우도병영성 외성과 동헌까지는 직선거리 500m 내외였을 것입니다. 강진,울산,창원은 병영성과 읍성이 각각 존재한 것에 비해 진주는 경상우도병영성만 있고 진주읍성은 없는 형태입니다. 이는 진주목의 행정기관과 너무 가까지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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