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수군 부산 진출시 거쳐가야하는 눌차왜성_01 왜성(倭城)



눌차왜성은 현재 부산시 강서구 눌차동에 있는 왜군들이 지은 성곽입니다. 눌차왜성은 가덕도왜성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있으며 가덕왜성 또는 눌차왜성이라고 불러도 관계가 없습니다. 예전에는 가덕도왜성이라고 많이 사용하더니 요즘은 눌차왜성이라고 많이 사용합니다. 

 "가덕도 왜성은 본성을 중심으로 여러 성곽이 능선을 따라 연접되어 있는 연곽식(連郭式)이다. 70m의 산 정상부를 삭평하여 석축으로 본환(本丸)[왜성 내에서 중심이 되는 공간]를 구축하였는데, 석축의 둘레는 86m이며 중심부에는 높이 2~3m의 석축이 잔존한다. 남쪽의 할미당을 중심으로 남북 방향으로 성벽이 축조되었고, 할미당이 있는 부분이 본환의 입구로 추정되며, 본환의 서쪽 벽은 성벽에 굴곡을 주어 치성(雉城)[성벽을 돌출시켜 성벽에 붙은 적을 측면에서 제어하는 시설]의 역할을 하고 있다. 본환의 남쪽으로는 가늘고 긴 지형이 계속되면서, 남쪽으로 갈수록 3~4단을 이루며 단의 동쪽과 남쪽 사면에는 1m 내외의 석축이 확인된다. 대지상으로 돌출되어 요곡륜(腰曲輪)[주 공간의 측면을 따라 길게 조성된 구역]을 이루고, 북쪽으로 연속된 66.5m의 산정부도 독립된 부곽으로 연결하여 축조하였으며, 서쪽으로는 수굴로 추정되는 골짜기가 있다. 또한 강서구 눌차동 항월 마을에서 서쪽으로 50m의 산정부도 왜성의 일부로 추정되나, 석축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부산역사문화대전에는 이렇게 적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임진왜란 때 일본 장수 고바야가와 타카카게[小早川隆景]가 가덕도 일대와 안골만 주변의 수로 확보와 조선군의 공격으로부터 대비하기 위하여 축조하였다."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눌차왜성이 있는 가덕도는 부산으로 가는 길목에 놓여져 있으며 가덕수로를 지나면 김해와 부산으로 연결하여 갈 수 있습니다. 특히 왜군들의 수군은 안골왜성과 웅천왜성에 포진하고 있었으며 눌차왜성은 왜군 수군을 보조하는 역활을 하는 곳입니다. 가덕도를 지나면 바로 부산의 다대포로 연결이 되고 13~14km 가는 동안 왜군들이 방어할 수 있는 곳이 없는 곳입니다. 조선수군은 현재 가덕도 등대가 있는 외양포와 새바지를 돌아서 부산으로 가기에는 너무나 큰 모험이라 웅천왜성과 안골왜성 그리고 눌차왜성이 있는 가덕수로를 따라 올라가야 하는 곳이며 그 곳에 왜군들은 눌차왜성을 축성하여 놓았습니다. 즉 받드시 조선수군이 지나가야 하는 길목에 눌차왜성을 축성하였으며 눌차왜성에서 보면 가덕수로를 따라서 지나가는 조선수군의 모습을 모두 다 알 수 있습니다. 왜군들도 조선군이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곳에 왜성을 축성함으로 길목을 차단하고 수군들의 진출을 도모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눌차왜성을 중심으로 살펴본 지도입니다. 눌차왜성에서 직선거리로 5km안에 안골왜성과 가덕진성,천성진성이 있으며, 10km 안에는 웅천에 있는 웅천읍성, 웅천왜성, 제포진성, 자마왜성이 있습니다. 반경이 15km를 넘어서면 김해죽도왜성과 거제영등포왜성이 자리하고 있으며 웅천에는 명동왜성이 있습니다. 20km를 넓히면 김해의 농소왜성, 거제 송진포왜성, 장문포왜성이 있습니다. 또 부산을 보면 박문구왜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즉 조선수군이 장목진에서 눌차왜성까지 가려면 직선거리로 20km정도 되며 눌차왜성에서 부산왜성까지 또한 20~25km까지로 거제에서 부산까지 중간지점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 김해까지도 20km로 왜군 수군입장에서는 가장 중요한 지점이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가덕도를 보면 가덕도와 눌차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눌차도에는 눌차왜성이 있으며 가덕도에는 눌차왜성의 지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눌차왜성의 천수대에서 보면 가덕수도를 지나가는 선박들을 모두 확인이 가능하며 가덕만에 있는 선박까지 모두 확인이 가능합니다. 눌차왜성의 선소가 어디인지는 확인이 불가능합니다만 현재 외놀마을이 있는 곳이 선소가 있었던 곳이 아닌가 추정해봅니다. 지도를 놓고 보았을때 가덕수로가 지나가는 곳에 선소를 놓기에는 여러모로 무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향월마을이 있는 곳은 가덕만이 있는 곳보다 수심이 깊은 곳이고 조선수군이 가덕수로를 진출시 눈에 잘 보이는 곳입니다. 하지만 외놀마을이 있는 곳은 왜군들의 선박을 숨기기 좋은 곳이고 선소에서 내려 눌차왜성까지 올라가기도 좋다는 것입니다.(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눌차왜성의 평면도로 일본인들이 그려 놓은 눌차왜성의 평면도를 다음지도에서 대비하여 본 것입니다. 지도에서 보는 것과 같이 눌차왜성이 있는 곳에서 보면 현재는 부산신항이 자리잡고 있으며 거가대교로 가는 길목으로 눌차대교가 있는 곳입니다. 부산 거제간 도로 개설을 위해 도로가 개설하게 되자 2006년 지표조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높낮이를 알기 위해 다음지도에서 지형도를 클릭하여 본 것입니다. 눌차도의 경우 동측이 높고 서측이 낮게 형성되어져 있습니다. 동측은 국수봉이 있습니다. 이곳에 왜성을 축성하지 않은 것은 당시 선박의 문제 때문일 것으로 보여집니다. 위에서도 이야기하였던 것처럼 당시 조선군과 왜군의 선박들은 외해로 진출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국수봉이 있는 곳은 가덕도의 외양포와 새바지로 거쳐와야 만나는 곳입니다. 그에 비해 눌차왜성이 있는 곳은 가덕수로로 오는 곳이라 왜군의 입장에서도 국수봉보다는 현재의 위치에 왜성을 축성하는 것이 맞는 판단이었을 것입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외놀마을에서 폐교된 눌차초등학교를 가기 위해 골목을 따라 올라가다가 본 바위입니다. 보시다시피 마을 한 가운데 돌출되어져 있습니다. 이를 보아 예전에는 이곳까지 바닷물이 들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팬저가 이곳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선소가 있었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지도에 표시한 곳입니다. 바위에서 바닷가까지는 직선거리로 대략 40m가 됩니다. 
▼ 바위가 있는 곳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바위보다 조금 높은 곳에 있는데 이 근처가 선소가 있었던 곳이 아닐까 추정해보았습니다. 
▼ 골목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폐교된 눌차초등학교가 보입니다. 그 삼거리에 눌차왜성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습니다. 
▼ 눌차왜성 안내판이 있는 곳에 부착된 갈맷길인데 눌차왜성을 가기위해서는 천가교 방향으로 10미터 정도 가면 민가 옆으로 난 길이 있습니다. 눌차초등학교 담장과 연결된 길이 있는데 그 길로 가면 됩니다. 
▼ 조금 올라가자 마자 보이는 오솔길. 이제 눌차왜성의 영역임을 암시합니다.
▼ 일단 왜성의 축성방식은 보이지 않았고 군데 군데 돌 무더기는 보이기 시작하더군요.
▼ 산을 올라가자 10분도 되지 않은 곳에 왜성의 흔적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 양 옆으로 상당히 큰 공간이 보이는데 2지환이 아닐까 추정할 수 있을 정도로 상당한 공간이 삭평하여 놓았더군요.
▼ 눌차왜성의 본환에 건설된 할미당이 있는 곳으로 나무와 계단이 놓여져 있습니다. 
▼ 할미당이 있는 곳의 계단으로 
▼ 이제 할미당이 있는 곳으로 계단을 타고 올라갑니다. 
▼ 올라가자 본 시멘트로 만들어 놓은 할미당
▼ 할미당 옆은 담장처럼 만들어 놓았는데 왜성에서 사용된 성돌이 담장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 이건 아무래도 근대를 접어들면서 마을사람들이 담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 그래도 제법 큰 돌들이 하단에 자리하고 있지요.
▼ 할미당을 나와서 바라본 모습으로 큰돌과 작은돌이 잘 섞여져 있습니다. 
본환에 관하여는 2편에서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덧글

  • 남중생 2017/01/11 03:44 #

    바보같은 질문일지도 모르겠으나, 몇 가지 여쭤봅니다.
    1. 조선군 선박이 가덕도를 끼고 바깥쪽으로 도는 것이 위험했을거라고 말씀하시는 까닭이 궁금합니다. 조선/일본군 모두 외해로 나가는 것이 위험했다고 쓰셨는데, 단순히 그 당시 선박 주조 기술의 한계인가요? 아니면 군사적/전술적인 이유가 있나요?

    2. 길 한 가운데에 큰 바위가 박혀있는게 그곳이 한 때 해저였다는 걸 증명해준다는 말씀이 잘 이해가 안됩니다.
  • 팬저 2017/01/11 11:13 #

    1. 저 또한 당시를 잘 알지 못하나 외해로 나갔다가 혼이 났다고 하는 이야기를 근거로 하는 것입니다. 당시에도 가덕도 남단을 돌아서 간다면 못갈 것은 아닐 것입니다. 남해의 남단을 돌아서 갔거나 거제의 남단을 돌아서 간 적이 많이 있기 때문에 가덕도의 남단을 돌지 못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거제수로를 따라서 가는 편한 길이 있는데 굳이 돌아서 갔겠느냐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 길 가운데 큰 바위를 이야기하는 것은 직접 현장을 가보니 그곳까지 예전에 바닷물이 들어왔을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입니다. 수군진성이 있었던 곳이나 바닷가가 있었던 도시지역을 가보면 대부분 매립을 하였습니다. 이야기한 외놀 지역의 경우도 바닷가를 매립하여 마을이 들어선 것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현재 바닷가와 직선거리로 40여미터 떨어져 있습니다. 그런 경우는 너무 많이 있어서 그렇습니다. 부산진성만 보아도 매립을 많이 하였으며 현재는 예전에 여기가 바다였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http://thumbnail.egloos.net/1024x0/http://pds10.egloos.com/pds/200905/18/07/a0105007_4a10fa45151d5.jpg
  • 남중생 2017/01/12 17:51 #

    답변 감사합니다.^^
  • 천상의기적 2017/01/12 22:08 #

    2번째 사진에 낙동강 하구에 파란색 새로 칠하신건 옛날엔 바닷물이 저렇게 들어간걸 표시한건가요?
  • 팬저 2017/01/12 23:51 #

    예... 임진왜란 당시 바닷물이 들어왔을 것으로 보고 그려 놓은 것입니다.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구글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