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용마산에 있는 마산왜성 모습 왜성(倭城)



국립중앙박물관 조선총독부박물관 문서에서 본 1937년 마산왜성의 모습입니다. 이 사진에서 중요한 단서가 몇 개 나옵니다. 저번에 올린 일제강점기 당시의 마산왜성은 남측에서 바라본 모습이었습니다만 이번에는 반대편인 북측에서 용마산을 바라본 모습입니다. 현 합포중학교가 있는 곳도 보이며 신작로의 모습도 보입니다. 저 멀리 무학산의 모습도 보입니다.
▼ 용마산은 현 마산도서관 뒷편의 산자락은 한번 꺽여져 있으며 산 정상으로 이어져 있는데 그곳부터 마산왜성이 시작이 됩니다.
 좀 더 가까이서 바라본 모습으로 마산왜성이 군데 군데 많이 무너져 내려져 있지만 북동방향에는 그래도 이시가키(石垣)가 남겨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저번에도 본 것과 같은 방향으로 서측에서 동측을 바라본 모습입니다. 마산만의 모습이 보이며 저 멀리 장복산의 모습도 보입니다.남측은 숲이 많이 우거져 있어서 이시가키(石垣)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현 용마산 정상 주차장이 있는 곳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현재의 모습과는 상당히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사진 기준으로 우측에 보이는 이시가키(石垣)는 현재도 남아있습니다. 그런데 좌측은 현재 남아있지만 현재의 이시가키(石垣)와는 완연하게 다르다는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성벽의 기울기입니다. 현재 남아있는 이시가키(石垣)와는 기울기도 다르고 축성방식도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동안 현재의 이시가키(石垣)가 예전의 이시가키(石垣)인줄 알았는데 이 사진을 보니 확실하게 알수 있군요. 이 사진 기준으로 본다면 1970년도 충혼탑을 조성하면서 축대를 쌓은 것이 현재까지 남아있는 것임을 이번에 알게 되었습니다. 
 현재의 이시가키(石垣)는 이런 방식입니다. 위에서도 이야기하였지만 성벽의 기울기도 다르고 돌의 크기 및 축성방식도 차이가 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이 이시가키(石垣)가 진짜인줄 알았는데 이게 근대화 시기에 축대 형식으로 쌓은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또 하나 들어난 것이 바로 천수대로 들어오는 입구입니다. 동측에 있는 입구라고 하는 것을 봐서 현재 충혼탑 맞은편으로 보이는 곳입니다. 보시는 것과 같이 상당부분 훼손이 된 것은 사실입니다만 그래도 왜성 특유의 입구와 성벽의 기울기를 알 수 있습니다. 
저번에 이어서 이번에 일제강점기 마산왜성의 모습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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