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장의 사진이 우리를 아프게 하는 창원읍성 동헌 평근당 읍성(邑城)



일제강점기 일본은 1910년 읍성철거령을 내리게 되었고 읍성은 그렇게 무너져 내렸습니다. 그나마 객사나 동헌 건물은 학교나 관광서 건물로 남아 생명을 연장하였습니다만 다른 건물들은 많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창원읍성의 건물들도 마찬가지였으며 창원읍성의 동헌 건물인 평근당은 창원초등학교 전신인 창원장흥학교 교사로 사용되었습니다. 창원장흥학교는 1907년 개교를 하였으며 나중에는 창원공립보통학교로 바뀌었습니다. 아래에 나오는 사진은 창원청년단 결성식때 찍은 사진으로 뒷편에 평근당의 당호가 보이는 동헌 건물이 보입니다. 자세히 보시면 유리로 되어져 있는 것과 난로 연통을 매달아 놓은 부분이 보입니다. 또 평근당 양 옆에 활주가 달려져 있는 것이 특징인 것 같습니다. 예전의 평근당의 모습과는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창원청년단은 뒤에 자리하고 있으며 구 일본군 군복과 같은 복장을 입고 있습니다. 앞에는 일본인들과 일본 순사들이 보이며 두르마기를 걸친 조선인이 보이며 양복을 입은 사람들도 보입니다. 위쪽에 13.3.13이라고 적어 놓은 것은 1913년 3월 13일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팬저도 착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창원청년단은 1920년 6월에 최초로 만든 것이고 하는 것을 봐서 소화(昭和) 13년인 1938년이 맞을 것 같습니다. 맨 앞에 있는 일본인중 한 명은 목이 돌아갈 정도로 위세가 만만치 않았나 봅니다. 우측 학생은 욱일청천기를 들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일본 순사인지 교사인지는 모르겠지만 칼을 차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평근당의 모습으로 활주도 보이는데 평근당이라는 현판이 보이지가 않습니다. 나무 때문에 가려져서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사진을 자세히 잘 보면 평주에 한문으로 뭔가가 적혀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단 좌측에는 인고단련(忍苦鍛鍊) 가운데에는 내선일체(內鮮一體)라고 적혀져 있으며 우측은 나무가 가르져 있어서 어떤 한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하단부에 명징(明徵)이라는 한자가 있는 것을 봐서는 국체명징(國體明徵)이 맞을 것 같습니다. 

일제강점기 1935년 이후 당시 일제가 내건 3대 교육강령이 "국체명징", "내선일체", "인고단련"으로 완전한 일본인이 되기 위한 교육 방침이며 지원병으로 학생을 동원할 뜻이 담겨 있었습니다. 학교에서는 "황국신민서사"를 외우고 제창해야 했다고 하니 암담한 상황이었습니다.

"국체명징(國體明徵)"이란 천황을 현인신(現人神 살아있는 신)으로 하고 군신일체, 충효일본의 국체, 만세일계의 황통(皇統 황실을 잇는 혈통)을 절대부동으로 하는 국제 관념을 온 국민에게 배양하는 것을 의미하여 천황 국가를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게 하는 것을 지도 정신으로 한다고 강조한 것이 국체명징입니다. "내선일체(內鮮一體)"는 역사적으로 밀접하게 떨어질 수 없는 관계를 가진 신애 협력의 정신이며 국가에 헌신 희생하는 정신을 강조하는 것이며 우리 조선인들이 가장 많이 들었던 것중 하나입니다. "인고단련(忍苦鍛鍊)"은 헌신보국의 정신으로 어떠한 시련에도 인해하고 목적을 관철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¹

위 사진이 1938년이라면 아래에 나오는 사진은 적어도 1938년 3월 13일 이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창원읍성의 동헌은 평근당(平近堂)으로 오랫동안 사용되었습니다. 고을을 평안하게 잘 다스린다는 뜻이 담겨져 있는 평근당은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에게 일본 사람의 국민으로 살아라고 하는 첨병의 학교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두 장의 사진은 일본인들이 찍어 놓은 사진일 것입니다. 이 두장의 사진이 조선인들의 아픔을 알아달라고 하는 사진으로 보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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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영심 저 이화여자대학교출판부에서 펴낸 "일제시기 근대적 일상과 식민지 문화"에서 가져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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