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초기 율포진성(구율포성) 이야기 1 진성(鎭城)



2017년 초에 갔다온 율포진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율포진성은 옥포진성과 영등포진성 사이에 위치하고 있으며 장목진과도 상당히 가까운 위치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장목진은 거제도 서측에 자리하고 있고 영등포진과 율포진은 거제도 동측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율포진과 영등포진, 장목진 모두 북측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순신장군이 이끄는 이순신함대가 일본 왜군함대를 맞이하여 승리를 거둔 곳중 하나가 율포해전인데 이 해전이 일어난 곳이 율포진 앞입니다. 이순신함대는 율포진에서 나와 부산진 방향으로 가려고 하는 왜군 함대를 맞이하여 전투를 벌이게 되었고 율포만에서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 율포진은 현재 거제시 장목면 외포에서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고 합니다. 이후 여러차례 장소를 옮기게 됩니다만 임진왜란까지는 현재의 위치에 율포진성이 자리하게 됩니다.  
 율포진성이 있는 곳과 바닷가는 현재 직선거리로 900m ~1km정도 됩니다. 선소가 가까이 있지 않고 멀리떨어져 있는 위치인데 이런식의 수군진성이 많지가 않습니다. 현재 율포진성이 있는 앞의 논은 예전에는 바다나 강(강 또는 하천)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 추정을 해봅니다. 
 뭐 직선거리로 1km 정도 떨어져 있는 곳은 율포진뿐 아니라 가덕도에 있는 천성진의 경우도 동헌과 대략 1km정도 떨어져 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천성진은 바다와는 직선거리로 200미터도 떨어져 있지 않으며 조선시대 기준으로 한다면 100미터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율포진성처럼 1km 정도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율포만이라는 지명이 있었던 것으로 봐서 현재의 지도와 달리 율포진성까지 바다가 들어왔을 것으로 보여지며 위의 기준으로 보았을때 현재의 논은 매립을 하였을 가망성이 많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해를 돕기위해 현재의 지도에 바다가 들어왔을 것으로 생각해서 표시를 하였습니다. 이해를 돕기위한 것이지 실제로 이렇다고 생각하시면 안됩니다.  
 임진왜란 이후 율포진은 여러차례 이전을 하게 됩니다. 현종 5년(1664) 가배량진과 가까운 곳으로 옮기게 되고, 숙종 13년(1688)에는 가라산 밑으로 옮겼고, 경종 4년(1724)에는 수영(水營) 남쪽 5리로 옮겨졌다고 하는 것으로 봐서 현재 있는 율포리에 있었던 수군진은 경종 4년(1724)이후 자리 잡은 것으로 보여집니다. 조선전기 수군진의 변화와 조선후기 수군진의 변화를 한 눈에 알 수 있는 곳이 바로 거제도입니다. 조선전기때에는 거제 동부를 중심으로 수군진이 배치를 하는 방식이었습니다만 조선후기에는 읍치인 거제현이 옮겨가는 것은 물론 수군진도 동부에서 남서부로 옮겨가게 됩니다. 물론 장목진과 옥포진. 지세포진은 원래 있었던 그자리에 있지만 율포진과 영등포진이 남서로 옮겨가게 됩니다. 무엇보다 영등포진과 율포진은 180도 다른 곳으로 배치가 되어 자리를 지키게 됩니다. 이 부분이 헷갈리기 쉬운 부분입니다. 그러다보니 1872년 지방지에 나오는 율포진, 영등포진이 있는 그림지도를 보고 여러가지를 유추하는데 조선전기 당시와 조선후기 당시의 수군진이 다름을 잘 이해하여야합니다. 그러니까 조선전기때에는 거제 동부에 영등포진,율포진,조라진,옥포진,지세포진 이렇게 5개의 수군진이 배치됩니다. 하지만 조선후기에는 조라진,옥포진,지세포진 3개의 수군진만 동측에 배치가 됩니다. 이것만 보아도 조선전기와 조선후기 수군진의 역활이 많이 달라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율포진성은 현재 거제시 장목면 율천리 일대입니다. 율포진이 조선후기때 옮겨가게 되는데 옮겨간 율포진은 현재 거제시 동부면 율포리입니다. 지명이 옮겨가면서 율포는 현재 동부면 율포리에서 사용하고 수군진성의 성터인 율포진성만 남아있게됩니다. 율천리라는 것을 보았을때 하천이 있었던 것임을 증명해주는 것 같습니다. 

율포진성은 성문이 2개 였던 것으로 추정을 하고 있으며 북문과 남문의 성문이 있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현재 누각은 남아있지 않으며 체성은 잘 남아있습니다. 그림지도에 파랑색으로 표시한 것중 하늘색은 성곽의 추정선이며 나머지는 현재 남아있는 체성부분을 표시한 것입니다. 이 자료의 토대는 동아대학교 박물관에서 조사한 자료를 다음지도에 작성한 것입니다.  
 율포진성을 처음보았을때 본 체성으로 북측체성입니다.
 북측체성을 가기위해 걸어가다가 본 돌로 이게 성돌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
 현재 3~4단 정도 남아있는 북측체성으로 한 눈에 보아도 조선전기때 축성한 수군진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율포진은 문종 원년(1450)에 처음 『조선왕조실록』에 언급된다고 하는 것으로 봐서 1450년 전후에 처음 등장합니다. 《거제군지(巨濟郡誌)》에는 숙종 14(1688년)에 통제사 이세현이 장계하여 축성하였다고 합니다. 율포진에 영등포의 선군 20명, 옥포의 선군 30명, 군관 1명이 배치되었다고 전해집니다.
 하단에 제법 큰 돌이 자리하고 있으며 돌과 돌사이에 잔돌을 끼우는 방식으로 되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단부를 보면 상당한 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상단부에 있는 작은 돌들은 해방이후 밭을 경작하면서 주민들이 쌓아둔 것 같습니다. 
▼ 3~4단 남아있어서 웅장한 느낌은 주지 못합니다. 기단석은 아무래도 땅 밑에 묻혀있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체성의 안은 보는 것과 같이 작은 돌로 체워져 있으며 주민들이 체성위를 밭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율포진성 안의 모습입니다.
▼ 바다 방향으로 사진을 찍어 본 것으로 보이는 산들로 인해 바다에서 바라본다면 율포진에 있는 전선들이 잘 보이지 않았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체성 위에 아주 작은 돌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게 예전부터 있었던 것인지 근대에 주민들이 올려 놓은 것인지는 확실하지가 않네요.
▼ 주민들이 군데 군데 생활쓰레기를 버려놓은 곳이 보이더군요.
▼ 체성임에도 잘 보이지가 않네요.
▼ 조금가자 체성이 보이지만 위에서 보았어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 북문지에 가까이오자 체성부분은 보이는데 이게 헷갈리더군요,
 북문지 근처에 이르자 돌들이 보이는데 이것은 조선시대 성돌이 아닌 것 같기도 합니다.
▼ 사진에 보이는 부분이 북문지입니다.
다음편에 2편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덧글

  • 2017/05/18 14:14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7/05/19 00:58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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