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천왜성 남측 노보리이시가키를 찾아서 왜성(倭城)



웅천왜성을 나타내는 것중 하나가 바로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입니다. 우리말로 풀이하면 나성(羅城 풀이하다보니 이것 또한 한문이군요)으로 길게 이어진 장성으로 이해하면 편하실 것입니다.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를 대표하는 왜성이 울산의 서생포왜성입니다. 서생포왜성의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는 산의 하단부에서 시작하는데 길이도 그렇고 높이가 잘 남아있어서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를 상징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 하지만 현재 남아있는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를 기준으로 한다면 전체적인 길이는 웅천왜성이 더 길게 이어져 있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길이 기준으로 본다면 적어도 4배 이상 길게 이어져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부지런하지 못한 팬저는 웅천왜성을 전체를 다보지 못하였습니다. 아래 그림지도에나오는 F.G.H.M지역에 있는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는 가보지를 못하였습니다. 가보지 못한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일단 길이 잘 없습니다. 숲이 너무 많이 우거져 있는 상태에서 길이 없다 보니 가보지를 못하였습니다. 그러던중 창원대학교 도진순교수님과 함께 남측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를 찾아가기 시작하였습니다. 
▼ 지도에 있는 A지점에서 H지점으로 가기전에 본 것으로 남해고속도로 제3지선으로 보이는 다리는 남문대교이며 보이는 터널은 밤갓터널입니다.  
▼ 위 사진에서 없는 길을 개척하면서 20여분 지나갔습니다.(길이 나있다면 5분도 되지 않는 길인데 길이 없고 흔적을 알 수 없다보니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되었습니다)
이제 남측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가 있는 지점까지 온 것 같습니다. 저 멀리 거제도가 보이고 웅동경제자유구역을 알 수 있습니다. 
▼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의 흔적을 발견하였습니다. 
▼ 풀들이 많이자라서 한 눈에 확인을 하기가 힘이듭니다.
▼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풀들 사이에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가 보입니다.
▼ 이제 확실히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가 보입니다. 보이시죠.
▼ 풀들과 나무로 인해 잘 보이지 않지만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의 흔적은 확실히 보입니다. 
▼ 축성 방식도 왜성 특유의 방식이 그대로 보입니다. 
▼ 남측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는 많은 사람들이 오지 않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잘 남아있었습니다. 나중에 나오겠지만 여기까지 간벌을 하러 왔더군요.
▼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 높이는 1~1.5미터 정도 남아있더군요.
▼ 왜성의 큰 적은 나무라는 것이 실감이 납니다. 
▼ 왜성 특유의 각도까지 잘보입니다.
▼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가 G지점까지 쭉이어져 있는데 나무와 풀 때문에 잘보이지가 않습니다. 
▼ 이 부분은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 사이에 성문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어도 이 부분에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가 끊어져 있었습니다. 
▼ 2명의 사람이 왕복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습니다. 
▼ 나무와 풀 때문에 사진상에는 잘 보이지가 않네요.
▼ 쭉 이어져있는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
▼ 남측 아래로 바라본 모습으로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는 나무와 풀에 가려져 있어서 보이지가 않습니다. 
▼ 조금 더 내려오니 조금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가 보입니다. 
▼ 군데 군데 간벌한 흔적이 보이더군요. 여기까지 올라왔다면 엄청 깊게 들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가 있는 곳에서 웅동경제자유구역을 바라보았습니다. 
▼ 조금 더 내려오면 H지점이 보입니다. 이 지점은 이시가키로 쭉 이어져 있습니다. 
▼ 높이는 약 1.2미터 이상 되어보였습니다. 
▼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가 끝까지 이어져 있었습니다. 남해고속도로 제3지선 공사를 하면서 발굴조사를 하였다고 합니다. 
▼ 보시면 잔돌체움 방식으로 축성되어져 있으며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의 기울기만 아니라면 조선의 읍성과 같은 방식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 기준으로만 본다면 조선인을 동원하여 축성하였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 이 이시가키는 50여미터 이어져 있었습니다. 
▼ 이 이시가키는 군데 군데 이어져 있었다고 하는데 잘 안보이더군요.
▼ 이제 M지점으로 이동을 합니다. 
▼ 사진에는 보이지가 않습니다만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는 이어져 있었으며 
▼ 군데 군데 돌이 보이는데 중간에 끊어진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입니다.
▼ 자연석과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는 가까이 있었는데 이는 자연적인 돌을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와 연결한 것으로 보여지더군요. 거제 송진포왜성에서도 이런 방식으로 축성한 것을 보았습니다.  
▼ 자세히 보시면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가 보입니다.
▼ 풀과 나무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마른해자[카라 보리(からぼり)(空堀)]가 보입니다.  
▼ 더 이상 내려가지 못하고 찍어본 사진으로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가 이어져 있습니다.
▼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가 위쪽으로 이어져 있었지만 길도 없고 풀도 많이 자라난 상태라 이동은 포기하고 되졸아갑니다. 
▼ H지점에서 이어진 이시가키의 흔적은 보였습니다. 
계속해서 이어져 있다고 하는 이시가키는 보지를 못하였네요. 역시 성곽의 답사는 1월 ~ 2월 늦어도 3월안에 가보아야 될 것입니다. 일단 남측에 있는 노보리이시가키(登り石垣)가 잘 남아있다는 부분에 만족해야 할 것 같습니다. 




덧글

  • 햇볕정책의 괴뢰 문 2017/06/30 04:04 #

    불쾌하지만 역사적 교훈을 얻기 위해서라도 왜성들을 잘 보존하고 연구했으면 좋겠군요.
    현재의 미군부대와 함께 지도에 표시해 놓으니 한숨이 나옵니다.
    http://kallery.net/s.php?i=704
  • 팬저 2017/06/30 11:27 #

    예... 아픈 역사중 하나가 왜성입니다. 우리의 아픈 역사를 교훈 삼아야 이런 역사가 반복되지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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