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진동면 고현리 선두마을은 전선이 있었던 선소였다 읍성(邑城)



마산 진동면사무소를 조금 지나면 고현리가 나옵니다. 이 고현리는 고려시대 진동의 읍치였다가 조선시대로 접어들면서 읍치가 진동으로 넘어가면서 예전의 현이라는 고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고현리의 예전 이름이 우산이었는데 현재 우산초등학교라는 학교명이 있습니다.

 이 고현을 따라 차로 10여분 더 들어갑니다. 고현을 조금 지나면 왕복 1차선으로 된 도로가 나옵니다. 맞은편에서 차가 오면 대략 난감해지는 곳입니다. 아직도 창원에 이렇게 낙후된 곳이 있나 하고 느낄 정도로 아주 좁은 길이 나타납니다. 여기까지 시내버스(78번)가 들어오며 종점이라고 봐야할 것입니다.

이곳 지명은 선두인데 선두마을에 도로포장이 되어져 있는데 이렇게 포장된 시기가 2015년 7월이라 하니 여기가 얼마나 낙후된 곳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 마을의 지명이 선두인데 우리가 알고 있는 선두(先頭)에 사용하고 있는 그 선두가 아니고 船頭입니다. 배 선자에 머리 두자로 뱃머리를 뜻하는 지명입니다. 먼저 선이 아닌 배 선이 사용한 것은 왜 일까요?

이곳은 船頭가 아닌 宣頭였는데 언제 船頭로 바뀌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만 적어도 18세기 에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왜 배풀 선자를 사용하다고 배 선자로 사용하게 되었을까요? 이 부분은 숙제로 남을 것 같네요.

일단 이곳 선두(船頭)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 볼 수 있는 것은 1872년 지방지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1872년 지방지에는 선두마을에 전선이 4척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진해현 기록에는 전선 1척, 병선 1척, 사후선 2척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 기준으로 본다면 화공이 그림을 그릴 때 구분 없이 그린 것으로 보여집니다.

선두마을이 있는 곳에 어변정(禦邊亭)이라고 표시하여 놓았으며 그림도 잘 그려져 있습니다. 이 어변정은 관청인 진해현의 누청으로 수군장수들의 휴식처로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조선시대 당시 수군들이 있었던 수군진에는 어변정이 있었으며 진해현도 마찬가지로 사용되었습니다. 선두마을에는 어변정은 사라지고 없고 근대에 만든 정자가 하나 있습니다. 팔각정으로 이루어진 정자는 마을주민들의 휴식처라 사용되고 있습니다.

선두마을에서 동쪽으로 나아가면 이상하게 생긴 것이 하나 있는데 선돌입니다. 처음에는 남쪽에 많이 있는 벅수인줄 알았는데 벅수와 달리 얼굴의 형태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선돌은 뱃사람들이 풍어와 안녕을 비는 선돌로 경계구역을 나타나게 만들어 놓았으며 그 앞에는 소나무와 포구나무가 서로 기대어져 있습니다.

선두마을은 조선시대나 현재나 오지마을중 하나입니다. 조선시대 당시에도 이곳으로 오기위해서는 진해현에서 배를 타고 오는 것이 빠를 것으로 보여지는 곳입니다. 이곳에 전선이 자리하고 있어 유사시 적의 공격을 막기 위한 선소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선두마을과 가장 가까운 수군기지를 살펴보면 서쪽으로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현동에 있었던 구산진과 남서쪽으로는 고성군 거류면 화당리에 있었던 남촌진, 남동쪽으로는 거제시 장목면 장목리에 있는 장목진입니다. 현재 장목진에 있는 장목객사를 제외하면 어떠한 흔적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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