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읍성의 변화 읍성(邑城)



진주읍성이 또 한 번 변화를 꾀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진주대첩기념광장(진주성 광장) 조성 사업이 진주성의 변화를 이끌 부분입니다. 진주대첩기념광장(진주성 광장) 사업은 지난 2007년부터 시작하여 올해(2017년) 철거 및 발굴조사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여집니다. 총사업비 980억원을 투입해 오는 2018년까지 기념광장, 주차장, 기념관 등을 조성하는 사업으로 진주에서는 여러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사업중 하나입니다. 

팬저는 진주대첩기념광장 조성 사업에 앞서서 진주읍성의 변화에 관하여 알아보고자 합니다. 진주성이라는 지명을 붙어놓아지만 진주성은 진주읍성입니다. 진주성의 변화에 관하여는 경상대학교 교수이신 김준형교수가 지난 2013년 "조선시대 진주성의 규모와 모양의 변화"의 논문에서 이야기하였습니다. 아래에 나오는 이미지들은 김준형교수의 논문 "조선시대 진주성의 규모와 모양의 변화"를 참고로 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아래 이미지중 고려시대 토성부분에 관하여는 김준형 교수가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조선시대 이전인 진주의 토성이라 추가하였습니다. 토성을 제외하면 4가지로 나눌수 있는데 조선시대 전기 진주읍성, 임진왜란 당시의 진주읍성, 조선후기의 진주읍성, 현재의 진주성으로 나눌 수 있다고 김준형 교수는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조선전기 진주읍성은 성문은 3개로 남,북,서문이고, 임진왜란 당시는 구북문,신북문,동,서,남문 총 5개의 성문이 있었다고 합니다. 조선후기에는 내성을 추가함으로 내성과 외성이 이루어진 진주읍성이 되었으며 구북문,신북문,남,서문과 촉석문,공북문으로 총 6개의 성문이 있었다고 합니다. 현재는 내성 부분만 남아있으며 서문,촉석문,공북문 총 3개의 성문이 있습니다.
▼ 조선전기시대 진주읍성을 알아보기 위해 다음지도에 기입하여 보았습니다. 조선전기 진주읍성은 현재 남아있는 진주성보다 조금 규모가 큰 읍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구.진주시청의 일부와 진주경찰서 일부가 포함된 읍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 진주읍성의 규모가 작다는 부분이 계속해서 조정에서 논의되어 진주읍성을 조금 더 크게 축성하게 되었습니다. 축성을 완료한 시기가 임진왜란 발생 1년전입니다. 규모가 크게 확장한 진주읍성은 현재의 진주시외버스터미널 앞 부분까지 확장을 하게 되었으며 북측으로는 상당한 규모의 해자인 대사지가 설치가 됩니다. 
▼ 임진왜란 이후 진주읍성은 또 한번 변화가 나오기 시작하는데 내성과 외성의 분리입니다. 이는 조정에서 논의가 된후 축성하게 되었습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은 성곽의 변화가 생기게 되는데 그중 하나가 진주읍성의 변화입니다. 영변읍성과 같이 내,외성을 축성하는 방식과 성곽의 기울기가 변화가 생기는데 부산진성, 경성읍성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외적의 침입이 있을 경우 산성으로 가서 농성하는 변화를 택하게 됩니다. 그 변화중 하나인 진주읍성은 내,외성으로 바뀌고 경상우도병영이 창원에서 옮겨오게 됩니다.
▼ 현 2017년 진주성의 모습입니다. 조선후기 내,외성과 달리 내성만 현재 복원하여 놓았습니다. 진주대첩기념광장이 조성되면 또하나 변화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여집니다. 
▼ 김준형교수의 논문 "조선시대 진주성의 규모와 모양의 변화"에는 일제강점기와 6.25전쟁때 사라진 진주읍성에 관하여는 이야기가 없어서 표시하였습니다. 즉 진주읍성이 사라지고 없었던 60년의 세월이 비워져있어서 그 부분을 채웠습니다. 또 진주읍성 내부에 경상우도 병마절제사영이 옮겨오는 것과 경남 감영이 세워지는 것과 도청이 부산으로 옮겨가기전까지 부분도 기입하여 진주읍성의 변화 부분을 추가하였습니다. 
▼ 진주성 복원사업은 1969년 부터 시작하여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3차에 걸쳐서 진주성 복원사업이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진주대첩기념광장이 조성되면 4차 진주성 복원사업이라고 기록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진주성 복원사업에 빠져 있는 것이 촉석루 복원으로 6.25전쟁 당시 불타버린 촉석루를 1960년에 복원을 하였습니다. 1차 진주성 복원사업은 1969년부터 시작하여 1979년까지 복원을 하였는데 촉석문과 1~3단 남아있던 체성위에 현재의 모양으로 복원한 것입니다. 2차 사업은 1979년부터 시작하여 1991년까지인데 이때(1984년) 진주성 안에 남아있던 민가를 철거한 것입니다. 제가 처음 찾아갔던 1980년에는 주민들이 진주성 안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1992년부터 현재까지는 3차 진주성 복원사업으로 볼 수 있는데 이때 대부분의 건물과 기념탑들이 들어서게 되며 2002년 공북문이 복원 준공됩니다. 1~3차 진주성 복원사업을 나누게 된 내용은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에서 발행한 "진주성 조선시대 우물유적"보고서를 보고 작성한 것입니다.
진주대첩기념광장이 조성되면 진주성의 또 다른 변화가 생길 것입니다.조감도 기준으로 보면 남문과 외성의 일부가 축성이 되던데 이부분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덧글

  • 남중생 2017/08/22 02:18 #

    저렇게 지도로 대조하면서 시대별 변화상을 볼 수 있으니 편해서 좋군요!
    다소 무식한 질문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읍성 밖에 동헌, 객사가 있었던 건가요?
  • 팬저 2017/08/22 09:41 #

    진주읍성은 특이하게 읍성 외부에 동헌과 객사가 있었습니다. 동헌과 객사의 위치는 2,3,4번째 이미지에 표시하여 놓았습니다.
  • 남중생 2017/08/22 11:07 #

    네네, 바로 그 표시된 위치들을 보고 의아해서 질문을 드렸습니다... 특이한게 맞군요.
    성 밖에 행정시설이 자리잡는데 따로 이유가 있었을까요? 진주읍성은 순수하게 전시 방어용 성이라서 평시 시설은 밖에 둔다던가...
  • 팬저 2017/08/22 11:47 #

    이게 조선이 개국하면서 동헌과 객사가 자리를 하게 되는데 어떤 이유에서 읍성 외부에 동헌과 객사가 들어섰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풍수지리적인 요소 때문이지 않을까 추정해봅니다.
  • 남중생 2017/08/22 13:57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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