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항공사진을 보고 분석한 창원읍성 읍성(邑城)



국토지리정보원에서 구한 1954년 창원읍성 항공사진입니다. 워낙 사진이 큰 사진이라 관심이 있으신분은 국토지리정보원에 회원으로 가입하셔서 다운로드하시면 사진 파일을 구할 수 있습니다.

읍성이 파괴되는 시기가 1910년 이후인데 창원도 마찬가지로 일제강점기에 본격적인 파괴가 되는데 창원도 마찬가지로 파괴가 됩니다. 다만 창원의 경우 조선시대에는 창원이 중심지였지만 1899년 마산이 개항하면서 행정과 교육, 금융, 통신 등이 마산으로 넘어가면서 많은 사람들도 마산으로 넘어가면서 창원은 마산의 변방으로 전락하였습니다. 그 덕분에 1954년까지 창원읍성의 전체적인 형태가 남아있었으며 1970년까지도 제법 남아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 아래 사진을 보시면 창원읍성 전체적인 형태가 그대로 남겨져 있는 것이 보입니다. 현재는 도시화가 진행되어 전체적인 형태는 잘 보이지 않지만 1954년도에는 창원읍성의 전체적인 형태가 잘 나와있습니다. 현재는 사라진 저수지가 동문 앞에 떡하니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고자 위의 사진을 확대하여 보았습니다. 동문인 향양루(向陽樓)는 사라지고 없으며 동문의 옹성도 사라졌습니다만 일부 체성은 남아있는 것이 보입니다. D는 저수지이고 B는 치성입니다. 치성을 그림자를 추정해서 본다면 옆에 있는 초가집의 담장과 비슷한 크기로 보여 2미터 미만의 체성이 남아있다고 봐야할 것입니다.C의 경우 현재 떡방앗간이며 사진상에는 떡방앗간이 보이지가 않습니다. 사진을 유심히보면 F와 E는 동측체성인데 그림자를 기준으로 본다면 적어도 3미터 이상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A는 현재 재건창원교회자리입니다. 예전 형옥자리라 둥글게 돌아가는 담장이 보입니다.
▼ A자리는 창원읍성 객사터인데 현재 북동시장이 들어선 것과 달리 상당한 공간이 있음을 보여주며 객사의 크기를 알 수 있습니다. B,D는 관아터이고 C는 사미루과 있었던 곳입니다. E는 향청건물이며 예전에는 동사무소였는데 현재는 의안민원센터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빨강색으로 표시한 것은 객사옆 골목입니다. A를 자세히 살펴보면 북동시장이 형성되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서문지의 경우 서문인 망미루는 보이지 않으며 체성은 그래도 조금 남아있는 것으로 보여집니다.
▼ 남문지가 A이고 B는 중동성당자리입니다. C는 창원읍성 퇴수구 자리입니다. 남문지인 진남루의 경우도 사라지고 없는 것이 보여지며 남문지 옆으로 소방도로가 나서 그쪽으로 자동차가 다니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남측과 서측으로 이어지는 체성인데 A는 치성이 있으며 B는 체성위로 길이 조성되어져 있습니다. 예전에 여기가 암문이라고 하였는데 암문은 아닌 것으로 보여집니다. 또 A 앞에 보이는 해자는 그때까지 남아있었습니다.
▼ 북문지는 일제강점기때 사라지고 없으며 A는 신작로로 현재도 북면으로 이어지는 도로이며 B는 기찻길 아래로 들어오는 입수구이며 D는 북측체성입니다. C는 북측체성에 나와 예전부터 있었던 옛길입니다.
창원읍성 안을 살펴보면 기와집은 보이지 않고 초가집만 있습니다. 창원읍성 동문에 나와 동측으로 걸어가면 나와는 기와집이 김종영 생가로 조선시대때 양반의 전형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조선시대 양반들은 읍성 안보다 외부에 나와서 생활을 하였는데 그 전형적인 부분을 보여주는 것이 김종영 생가입니다. 1954년 창원시 의창구 지역을 살펴보면 기와집은 하나말고는 보이지 않을 정도이니 기와의 위력이 보통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덧글

  • 남중생 2017/09/24 23:15 #

    양반들은 오히려 교외에서 살았군요.
  • 팬저 2017/09/25 00:29 #

    예 여러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읍성안에는 고을 수령이 있으니 불편하는 것이 있고요. 또 그래도 고을에서 1인자로 자리 매김하는 것이 편한 것도 있었을 것으로 보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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