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해항 개항 610주년 기념행사 했을까? 조선시대

부산의 초량왜관 터에서 도자기 파편 수백 점이 추가로 발견돼 초량왜관 연구·복원에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는 기사입니다. 초량왜관(1678년 ~ 1876년)은 부산시 중구 신창동, 중앙동, 광복동, 남포동, 대청동 일대 약 11만 평에 일본인이 거주하며 한·일 교역을 펼친 곳입니다.


초량왜관보다 앞서 창원에 왜관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분들이 많지가 않습니다. 조선이 개국하고 얼마 되지 않은 1407년(태종 7년) 부산포와 내이포(제포, 지금 창원시 진해구 웅천동 일대)에 왜관을 설치하고 일본과 교역을 허락하고 교린(交隣) 차원에서 면세의 혜택을 줬습니다.

이후 1418년(태종 18)에는 울산의 염포(현 현대자동차 공장 일대)와 고성군의 가배량(현 통영시 도산면 오륜리 일대)을 개항하게 됩니다. 1419년(세종1년) 대마도 정벌로 인해 4개의 왜관은 폐쇄하고 있다가 1423년 부산포, 내이포(제포) 1426년 염포가 개항하여 삼포왜관이 들어서게 됩니다. 이후 1510년(중종 5년) 삼포왜란이 일어났습니다. 또 왜관은 폐쇄하였고 1512년 제포만 왜관이 들어서게 됩니다. 1541년 제포에서 조선의 관병과 왜인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자, 제포를 폐쇄하고 왜관을 부산포로 옮겨 갔습니다. 이후 잘 아시는 것처럼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임진왜란 이후 1607년(선조 40년) 두모포(부산 동구 초량동 고관입구)에 새로 설치되었다가 1678년(숙종 4년) 초량으로 옮겨 갔습니다.

삼포왜관 당시 왜관중 일본인이 가장 많았고 교역이 많았던 곳은 제포왜관이었습니다. 그만큼 큰 규모였고 부산포와 염포를 합쳐도 규모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 제포왜관지는 현재 창원시 진해구 제덕동이 있는 곳입니다. 진해 남문지구가 개발이 되면서 웅천에서 수도로 이어지는 도로를 개설하였는데 제덕고개로 이어지는 곳이 고개이고 커브길이라 이 길을 직선으로 이어려고 오래전부터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제포왜관지와 함께 제덕토성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바로 직선으로 된 도로를 개설하지 못하고 2017년 말부터 문화재연구소에서 시굴조사가 이루어졌고, 2018년 발굴공사가 시작되었으며 제덕토성에 관하여도 발굴공사가 이루어졌습니다. 2018년 안으로 발굴공사가 이루어지고 나면 삼포왜관중 가장 큰 제포왜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습니다.


▼ 제포왜관지에 관하여 문화재연구원에서 시굴조사와 발굴조사가 이루어졌습니다. 아래 사진은 수도에서 웅천방향을 본 것으로 도로개설을 위해 산을 절개한 모습입니다.
▼ 시굴조사한 모습이 곳곳에 보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제포왜관에서 웅천으로 가는 냉이고개에 현재 검문소와 같은 것이 설치되어 왜인의 입·출입을 통제하고 조선인과 왜인을 섞이지 않게 하였다고 합니다. 바다에는 선박들이 차례로 들어오게 하기 위해 수중목책을 박아 놓았다고 합니다. 현재의 하이패스와 같이 차례로 들어오게 해야 통제를 하기 좋으니까요. 그것도 부족해서 인지 제포왜관옆에 수군진인 제포진성을 축성합니다.

부산항은 1876년(고종 13년) 근대항으로서는 가장 먼저 개항하였습니다. 이후 다른 항구도 개항을 하게 되는데 인천항은 1883년, 마산항은 1899년에 개항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부산에서는 1876년 개항한 부산항이 아니라 1407년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앞서도 이야기하였지만 1407년은 부산포와 내이포에 왜관을 설치하고 일본과 교역을 허락 한 것이니 “1407년이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부산뿐 아니라 진해에서도 1407년을 개항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개항 600주년을 맞이한 행사를 하게 되었는데 그 시기가 2008년입니다. 이후 마산과 진해 그리고 창원이 통합되었고 창원시에서 진해항 개항 610주년을 올 2017년에 추진했어야 하였는데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왜 그렇게 하였을까요? 왜 창원의 역사를 그냥 아무렇지 않게 내버려두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이라도 챙겨야 되지 않을까요? 창원시에서 진해항 개항 610주년 부분에 관하여 행사가 이루어질지 아닐지는 저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100년 단위가 아니어서 기념행사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창원시의회 역사문화 연구회가 조직되고 연구를 하고 있다는 것에 관하여는 환영을 합니다. 하지만 그냥 지나갈 것이 아닌 우리 지역의 역사에 관하여 좀 더 고민하고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초량왜관에서 나온 도편들이 많이 나왔다고 하는데 제포왜관지에서도 나오지 않을까 하는데 어떻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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