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양 객사를 가기 위해서는 외삼문과 내삼문을 통과하였을 것입니다. 객사는 왕권을 상징하는 지방 관아의 중심건물입니다. 그런 왕권의 상징적인 객사를 가기 위해 2개의 문을 통과하는 것이 지방 관아의 일반적인 공간이었습니다. 나주와 같은 곳은 외삼문과 내삼문 사이에 중문이 있지만 보통 일반적인 곳은 2개의 문을 통과하였습니다.
외삼문의 경우 바깥에 있는 삼문이라는 것입니다. 외부에 있다 보니 조망을 위해 보통 2층 누각으로 된 삼문을 설치합니다. 2층 누각으로 된 삼문이 전부는 아니고 1층으로 된 삼문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강릉과 영월의 객사인데 여기는 2층 누각이 아닌 삼문입니다.
최근에 복원을 하였다고 하는 곤양 객사의 외삼문인 응취루를 보았습니다. 2층 누각이 있어서 곤양을 조망하는데 좋더군요. 복원한 응취루는 원래 있었던 자리가 아닌 곳에 복원을 하였습니다. 원래 자리는 현재 곤양초등학교가 사용 중이라 현재 복원된 곳으로 옮겼습니다.
응취루는 말 그대로 객사의 외삼문입니다. 객사 바깥에 있는 삼문이라는 것입니다. 외문도 아닌 삼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원한 응취루를 보면 삼문이 아닌 삼간(三間)으로 되어져 있습니다. 이렇게 복원하게 된 것은 1963년 응취루를 철거하였던 자료를 참고하였다고 합니다. 이게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삼문이 삼간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 부분은 숙제로 남는 부분이라 봐야할 것입니다.
문제는 응취루 외부를 담장을 두르고 앞쪽에 협문을 달아 놓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보고 저는 어떻게 이야기할지 모르겠더군요, 곤양면 주민들의 입장에서는 응취루가 이순신 장군이 숙영하기도 한 곳이어서 중요하다. 중요하니 격을 올리기 위해서 담장(보호축대)을 치자고 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위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응취루는 객사를 가기 위해 지나가는 외삼문이라는 것입니다. 굳이 담장을 치고 앞에 격에도 안 어울리고 어디에도 없는 협문을 설치하였는지 저로서는 조끔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뭐 곤양에 있는 응취루 말고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에 있는 진해현 동헌 앞 내삼문은 삼문이 아닌 외문으로 협문이 설치되어져 있으며 격에도 안 어울리고 어디에도 없던 월영대에 담장(보호축대)을 두르고 협문을 달고 그것도 모자라 월영대 비석 위에 비각을 세웠습니다. 비각은 화려한 단청을 채워 넣고 말이죠.
이러한 것이 창원과 곤양에만 있겠습니까? 전국 어디에도 있을 것이라 봅니다. 20세기와 21세기 식으로 복원한다고 스스로 위안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 아래는 사진만 올립니다. 응취루에서 바라본 곤양의 모습으로 산위에 있는 응취루 누각인데도 곤양 전체는 눈에 들어오지 않네요.










▼ 밑에서 본 응취루의 모습


▼ 응취루를 가기 위해서는 이 협문을 지나서 가야합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어디에도 없는 문이라는 것입니다.


▼ 하단부는 거북선 형상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 협문에도 단청이 그려져 있습니다.

▼ 협문 옆으로는 담장이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원래 객사의 외삼문 기능은 어느새 사라져 버리고 없고 중요 건물이라는 인식만 주고 있습니다.

▼ 응취루와 협문의 모습으로 주객이 전도 된 것 같습니다.

▼ 어디에도 없었던 이 협문이 왜? 응취루 앞에 오게 된 것일까요?


▼ 담장과 응취루, 사진을 찍기에는 좋겠지만 고증에도 맞지 않는 이 방식을 왜 택하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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