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지 110년만에 나타난 창원읍성 사직단2 읍성(邑城)



『창원부읍지』 ‘단묘’에 의하면, “창원의 사직단은 창원 도호부에서 서쪽으로 2리에 있다.”고 적혀져 있습니다. 창원도호부라고 하는 것이 동헌인지 객사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동헌과 객사의 기준으로 해도 직선거리 730m와 600m라 서측 2리안에 있습니다. 여단은 북 1리라고 했는데 일단 여단으로 추정하는 곳이 북 1리 안에는 있습니다.
▼ 사직단이 있는 곳에서 여단의 방향을 바라본 곳으로 마을이 보이는 곳에 여단과 객사가 있습니다.
▼ 창원읍성 여단이 있는 곳은 공용주차장 아래편에 있는데 생활 쓰레기와 분료가 아무렇게 뒹굴고 있었습니다.
▼ 창원읍성 여단의 축대인지 공영주차장을 만들면서 쌓은 축대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만 사직단의 담장으로 추정하는 곳입니다. 일단 보이는 방향이 북측입니다.
▼ 사직단 안에는 민묘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이 땅이 민가의 땅인지 공용부지인지 알 수 없습니다.
▼ 보이는 곳을 잘 보면 군데 군데 인위적으로 쌓은 담장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창원읍성의 사직단뿐 아니라 전국에 있는 사직단은 일제의 강압에 의해 대한제국에서 1908년 사직단을 해체합니다. 그러다 보니 전국에 있는 사직단은 황폐화되기 시작하였습니다. 1929년 조선총독부에서 전국에 있는 고건물을 조사하였는데 그때 조사한 것중 하나가 창원읍성 사직단입니다. 그 자료에서 현재 창원읍성 사직단의 주소가 나왔으며 사직단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1929년 조사 당시 황폐화되었다고 적혀져 있었습니다. 이후 1954년 항공사진에도 희미하게나마 사직단의 흔적은 찾을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실제적으로는 창원읍성 사직단이 우리들 곁에 사라진 것은 60년이 넘습니다만 이 부분에 대한 자료가 없고 최종적인 것은 1929년 조사된 자료 이외에는 없습니다. 일제의 강압에 의한 사라진 사직단 기준을 잡으니 올해로 110년이라 110년 만에 돌아오는 식으로 이야기하였습니다. 이 부분은 전국적인 현상이라 일단 보조를 맞추고 있습니다.
사직단의 규모는 159평이라고 조선총독부에서 조사하였습니다.
▼ 중간 중간 간벌한 나무를 모아둔 곳이 있었으며 사직단 자리에도 군데 군데 있었습니다.
▼ 군데 군데 돌들이 있었는데 이게 사직단의 담장인지는 확인이 불가능하며 창원시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조사를 하여야할 것입니다. 창원시 문화유산과에서는 학예사와 문화재위원과 함께 현장을 방문할 것이며 조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이 조사후 2019년 추경예산을 반영하여 창원읍성 사직단에 관한 조사를 완료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맹자는 “백성이 가장 중요하고, 사직이 다음, 왕이 가장 마지막"이라고 했다고 전해집니다. 성리학을 받들었던 조선에서 사직은 아주 중요한 곳이었습니다. 

웅천 사직단, 진해현 사직단. 산청 단성 사직단, 창녕 사직단, 진주 사직단은 복원을 하였거나 복원 준비 중이며 고성 사직단은 사직단이 있었던 땅은 발견이 되어져 있지만 방치, 훼손되어져 있으며, 밀양 사직단은 권순강 우리문화재연구원 과장이 최초로 발견은 하였지만 복원은 하고 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2015년 진주박물관에 의해 사천 곤양 사직단이 발견이 된 상태이지만 훼손된 상태입니다. 거제 사직단은 2016년 11월 김해박물관에 의해 발견이 되었습니다. 거제시는 사직단 발견이 되자 사직단 일원에 대해 지표조사를 실시하였습니다.

이번 조선총독부에서 조사한 경남 고건축목록에 나온 사직단을 살펴보면 창원, 사천, 함양, 산청, 단성, 합천, 울산인데 현재 울산은 경남에서 떨어져 나갔으니 제외하고 산청과 창원은 사직단을 발견했습니다.

아직 사직단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한 위치를 모르는 곳이 남해, 하동, 의령, 안의, 삼가, 초계, 거창, 함안, 칠원, 영산, 양산, 김해입니다.

참고로 부산에 있는 사직야구장이 바로 사직단의 사직(社稷)입니다. 부산 사직단은 바로 동래 사직단을 이야기하며 동래 사직단을 복원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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