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를 지켰던 곡포보성_02 진성(鎭城)



곡포보성의 서측체성은 군데 군데 남아있지만 그 흔적이 많지 않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1954년 항공사진에서는 잘 나온 체성이 언제 어떻게 무너져 내렸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 최하단 기단부만 남은 모습이 보입니다.
▼ 기단부 조차도 보이지 않는 부분도 있습니다.
▼ 아니면 흙 밑에 기단석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 학교 담장과 같이 쭉 이어져 있는데 이게 과연 서측의 체성일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 하지만 중간 중간에 나오는 상당히 큰 돌을 보면 서측체성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듭니다.
▼ 최근에 들어선 것으로 추정하는 민가로 체성이 지나갔으며 여기에 치성이 있었는지는 확인이 불가능합니다.
▼ 민가의 축대로 사용되고 있는 돌로 곡포보성의 체성과는 무관합니다.
▼ 이렇게 놓고보면 현재 축성하는 체성과 별차이를 느끼지 못합니다.
▼ 북측체성이 시작되는 곳인데 북측체성으로 된 부분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 6~70년대 학교 담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 올린 축대가 보이는데 워낙 돌이 작아서 곡포보성의 체성이라고 보기는 힘들었습니다. 다만 북측체성은 현 학교 담장과 연결이 되었을 것입니다.

▼ 성현산 봉수가 있었던 호구산으로 성현봉수대는 서쪽에 있는 곡포성과 앵강만 일대에 왜적이 출현하면 봉수를 올리던 곳으로 자연석으로 축성되어 있는데 망대의 흔적은 있으나 연대는 흔적을 찾아 볼 수 없다고 전해집니다. 미조 망운산봉수 → 금산봉수 → 성현봉수로 이어집니다. 또 가천 설흘산봉수 → 성현봉수로 이어지며 성현봉수는 망운산 봉수와 대방산 봉수로 이어집니다. 미조 망운산봉수 아래에는 미조진이 있고 금산봉수는 상주포보, 설흘산 봉수는 평산진에서 관리하며 연계되어져 있습니다.
▼ 조그마한 돌담이 보일 정도이며 북측체성은 흔적이 없으며 1954년 항공지도에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 이제 동측체성으로 접어듭니다.
▼ 동측체성으로 조그마한 체성의 흔적이 보입니다.
▼ 가까이 가서 보니까 제법 큰 돌로 구성된 하단부가 보입니다.
▼ 높이는 4~50센치 정도 되는 체성인데 50미터 정도 남아있습니다.
▼ 학교 담장처럼 보이지만 곡포보성의 체성입니다.
▼ 조금 남아있지 않고 하단부 1단만 남겨져 있습니다.
▼ 민가로 이어지는 부분은 남아 있었는데 민가가 문이 닫혀져 있어서 들어가지를 못하였습니다.
▼ 하단부와 기단부가 있을 것 같은데 생활 쓰레기와 묻혀져 있어 육안으로 식별이 곤란하였습니다.
▼ 민박집인데 제법 체성의 흔적이 보입니다.
▼ 이제 높이도 제법되는 돌이 하단부에 있습니다.
▼ 확대해 본 것으로 하단부 1단 정도만 예전 곡포보성의 체성이고 나머지는 현대화가 진행되면서 학교 담장으로 작은 돌을 끼워서 축대처럼 사용하였음을 보여줍니다.
▼ 여기는 그래도 육안으로 확인이 가능합니다만 다른 곳은 집이 잠겨져 있어서 육안 식별이 곤란하였습니다.
▼ 민박 옆집으로 여기 또한 현대의 돌과 섞여져 있었습니다.
▼ 요즘 시골에 많이 도입하고 있는 벽화의 모습이 보이는데 여기 곡포보성에 어울리는 수군의 모습을 벽화로 하였으면 더욱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 벽화의 수준은 나쁘지 않습니다. 위에서 이야기하였던 것처럼 역사적인 의미의 수군진과 같은 식으로 하였다면 좀 더 이 지역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 통영 산양읍 삼덕리에서 본 벽화입니다. 이곳에는 당포진성이 있었다는 것을 참고하여 수군의 모습을 그려 놓았습니다.
▼ 새마을금고 뒤에 남측체성이 있을 것 같은데
▼ 뒤편에는 콘트리트로 축대를 쌓아 놓았습니다.
▼ 새마을금고와 그 옆에 있는 민가에 남측체성이 있을 것인데 팬저는 들어가지를 못하였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들어가서 남측 체성을 확인해야 겠네요.
▼ 곡포보성은 남해군에서도 잘 홍보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남해군에서는 미조진, 평산진, 적량진을 홍보를 하더군요. 곡포보와 상주포보는 아직 홍보가 부족한 것 같더군요. 남해읍내에서 본 남해군 관방진지도입니다. 보는 것과 같이 평산진,미조진,적량진을 홍보하고 있지만 곡포보와 상주보는 안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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