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서측을 지켰던 평산진성_01 진성(鎭城)



1872년 지방지에서 본 평산진입니다. 성문은 2개로 남문과 북문이 위치하고 있으며 동측에 선소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평산진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면 경상도 남해읍지에 “현의 남쪽25리 지점에 있다. 석축둘레 1,558자. 높이 11자이다. 만호는 무관으로 종4품이고 군관2인, 진리15인, 지인 12인, 사령 15명이고 전선 1척, 병선 1척, 사후선 2척, 능노군 145명, 사부 28명, 화포수 10명, 포수 34명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남해에서는 미조진과 함께 중요한 수군 기지입니다. 현재 있는 위치는 신라시대 평산현의 위치라고 하며 세종13년(1431)에 평산만호가 평산영전(營田)을 수호, 세조12년(1466)에 웅천첨사 휘하 평산포만호, 성종12년(1481)에 평산진성은 석성으로 1,558자를 축성하였다고 합니다. 객사와 아사의 모습이 보이고 진성 외부에 민가들이 많이 보입니다. 그림지도는 남북으로 그려 놓았지만 실제로 위 아래가 바뀐 상태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 평산진에 관한 항공지도로 섬들이 몇 개보이는데 이들 덕분에 조선의 군선을 숨기기가 좋았을 것입니다.
▼ 평산진성의 모습으로 북문과 남문이 있으며 사각형으로 된 수군진성입니다.
▼ 높이를 측정한 것으로 평산진성은 해발 40미터 아래에 위치하고 있으며 산과 산사이 계곡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 평산진성은 남해 서측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여수에 있는 전라좌수영에서 나와 경상우수영으로 접어들면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이 평산진성입니다. 현재는 적량진이 있는 곳이 남해군이지만 조선시대에는 적량진이 진주였습니다.
▼ 평산진이 있는 바다를 바라본 것으로 방파제와 함께 섬들이 많이 보입니다.
▼ 평산진성이 있는 앞에 4개의 섬들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 평산1리라고 하는 곳이 평산진이 있었던 곳입니다.
▼ 평산편의점이 있는 곳을 보니 여기가 바로 평산진이 있었던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 평산1리 마을회관 앞 골목을 따라 올라가면 먼저 만나는 것이 북문지인데 경운기와 함께 있는 적벽돌이 있는 집 사이가 북문지입니다.
▼ 가정집에서 이발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 작은 돌이 보이기는 하지만 여기가 평산진의 체성은 아닙니다.
▼ 남해라는 섬때문인지는 몰라도 작은돌로 만들어 놓은 담장이 많이 있습니다.
▼ 평산진성 안으로 물이 흘러갔음을 알 수 있는 계곡입니다. 그렇다면 체성 사이에 수구문이 있었을 것입니다.
▼ 조금 올라오자 빈터가 보이더군요.
▼ 보이는 곳으로 체성이 지나갔을 것으로 예상하여 체성의 흔적을 표시한 것입니다. 보시는 것과 같이 계곡물이 흘러가는데 저곳에 수구문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 조금 더 올라가자 체성의 흔적이 보입니다.
▼ 제법 큰 돌이 보이죠.
▼ 조금 더 올라가자 체성으로 착각하기 쉬운 담장이 보입니다. 여기는 남측체성보다 더 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 시골에 가면 항상있는 멍멍이들
▼ 축대의 석축방식은 일본식으로 견치석이라고 하더군요.
▼ 일본식 축대 석축쌓기 방식이 있는 곳에서 북측(바다)방향을 바라본 것으로 남측체성은 아래에 표시한 것처럼 이어져갑니다.그런데 이부분이 상당히 문제일 것 같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아래에 나오는 이미지를 보시면 알 것 같습니다.
▼ 전봇대가 있는 곳이 남문지이며 체성이 이어져 있었을 것입니다. 남측이 지대가 높고 북측이 낮아서 남측에서 북측을 보면 바다가 보입니다.
▼ 이제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밭에 올라왔습니다.
▼ 밭사이에 보이는 돌이 있는데 제법 크기는 하지만 체성에 사용된 돌은 아닌 것 같더군요.
▼ 중간에 본 축대인데 이게 헷갈리더군요.
▼ 아래와 같이 제법 큰 돌이 정교하게 있어서 이게 체성일까? 하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나중에 볼 북측체성과 비교하면 확실하게 큰 돌이며 이부분이 제가 헷갈리는 부분입니다.
▼ 보시는 것과 같이 30여미터 쭉이어져 있습니다.
▼ 돌의 크기도 그렇고 해서 헷갈리기 쉽습니다. A라고 표시한 부분이 현재 각 연구기관에서 이야기하는 남측체성입니다. 하지만 밭에서 본 돌들이 오히려 기단석으로 보이는 부분이 보입니다.
▼ 남측체성이 이제 한 눈에 들어옵니다. 나중에 이야기하겠지만 이 상태로 보면 분명하게 남측 체성인 것 같은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다 보니 동아대박물관에서 1987년도 작성한『가야문화권유적정밀조사보고서』에도 남측 체성임을 이야기하며 국립해양문화재연구원에서 조사한 조선시대 수군진조사 3, 경상우수영편에 나오는 평산진에도 남측 체성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팬저도 처음 현장을 갔을때 "와~ 잘 남아있네"하는 생각이 들었고 남측 체성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 사진에 보는 것과 같이 동측이 높게 되어져 있어서 체성이 U자형으로 되어져 있습니다.
▼ 체성이 이어져 있는데 뭔가가 이상합니다. 그런데 가까이 가보니 뭔가가 이상하더군요. 그러니까 체성으로 되어진 부분은 10미터도 되지 않고 나머지는 그냥 담장인 것 같습니다.
▼ 하부의 돌이 작습니다. 또 기단석이 보이지 않습니다. 흙아래에 있을 수 있으니 기단석은 넘어갑니다.
▼ 집 주인께서 텃밭으로 나오는 통로인데 보이는 돌이 일정한 크기로 되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하부를 보아도 크기도 일정하지 않는데 이게 평산진의 체성일까? 하는 마음이 들더군요. 잠시보면 남측체성인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본다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은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다만 여기 보이는 체성은 그래도 남측 체성인 것 같습니다만 
▼ 조금만 가면 이 정도라면 체성이라기 보다 주인장이 만든 담장이 아닐까 하는 마음이 듭니다. 그러니까 일부는 남측체성이고 나머지는 돌로 만든 담장 같습니다.
▼ 사이사이에 있는 돌을 봐서는 근대에 축대형식으로 쌓아 올린 것 같은데....
▼ 조금 더 올라가자 더 작은 돌이 보이는데 내부 체움 형식도 아니라 헷갈립니다.
▼ 체성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 이렇게 작은 돌이 자리하는 것은 조선시대 평산진성의 체성이 아니고 근대에 담장 형식으로 쌓아 올린 것이 거의 확실할 것 같습니다.
▼ 이제 동측으로 이어지는 부분인데 이게 언제 축대로 만들었을까요?
▼ 축대 형태임을 잘 알 수 있습니다.
▼ 내부로 와서 보니 안과 밖 모두 돌이 작습니다.
이게 과연 남측체성인지 아닌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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