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읍성 서당인 육영재를 찾았다 읍성(邑城)



동요 “고향의 봄”의 작사자인 이원수는 창원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면서 서당에서 한문을 수학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원수가 이야기하기를 “창원읍에서 자라며 나는 동문 밖에서 좀 떨어져 있는 소답리라는 마을의 서당엘 다녔다. 소답리는 작은 마을이었지만 읍내에서도 볼 수 없는 오래 되고 큰 기와집의 부잣집들이 있었다. 큰 고목의 정자나무와, 봄이면 뒷산의 진달래와 철쭉꽃이 어우러져 피고, 마을 집 돌담 너머로 보이는 복숭아꽃 살구꽃도 아름다웠다.”라고 회상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이원수가 “동문 밖 소답리에 있는 서당에 다녔다”라는 것에 주목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래저래 알아보고 있는데 정확한 위치를 알고 있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큰 기와집이라는 부분 때문에 저는 꽃 대궐인 김종영 생가를 주목하였습니다. 김종영 생가와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마을에 있는 곳에 서당이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1954년 항공지도를 보고 여기일까? 아니면 여기일까? 생각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정확한 위치며 기록이 없어서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2018년 창원 사직단을 찾으면서 나온 것이 육영재(育英齋)였습니다. 당시 사직단과 함께 육영재에 관하여 나왔지만 제가 잘 몰라서 한 번 가본 것이 전부입니다. 육영재라는 곳이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는지는 몰라도 이름이 전해주는 것과 같이 교육기관일 것이라고는 생각은 하였지만 육영재가 서당인줄은 몰랐습니다. 무지한 저의 능력이 뽀록 났습니다. 이것도 오늘 이래 저래 찾아보다가 나온 것입니다. 

육영재는 보통 문중에서 후학을 위해 세우는 학문적인 기능이라고 하며 현재 전국에 몇 군데가 남아있습니다. 경남 고성 하일면, 함평, 합천 적중면 등도 남아 있습니다. 이 육영재는 회산감씨문중에서 인수받아 고종 14년 (1877)에 이건하였습니다. 이건한 장소는 팔용동 탄약고라고 하는 군부대 안에 있는데 관술정이라고 합니다. 1936년에는 관술정 뒤편에 삼열사(三烈祠)를 세워 임진왜란 때 선무원종공신에 오른 감경인과 그 동생 경륜 형제를 모시고 매년 음력 4월 15일 유림제를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럼 다시 돌아가서 이원수가 동문 밖 소답리에 있는 서당이 바로 육영재일까요? 위에서도 이야기하였던 것처럼 육영재는 1877년에 이건을 하였습니다. 이원수는 1911년 생으로 자신이 서당을 다닐 때에는 1918년에서 1922년 사이일 것입니다. 이원수가 다니던 서당의 경우 향교 서측에 있을 때 가 아니라 제가 처음 생각하였던 김종영 생가 주변이 맞을 것 같습니다.

일단 창원시에서는 이 육영재에 관하여 좀 더 연구를 하여야 할 것 같으며 진전에 있는 경행재(景行齋)를 참고하였으면 좋겠고, 육영재를 복원하여 자라는 아이들에게 교육의 장이 되었으면 합니다. 

이원수의 친일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고 일단 이번에는 친일에 관하여는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자신의 회고록에 나온 서당부분에만 저는 집중을 했습니다. 

창원시에서 현재 행복의창 만들기 사업을 진행한다고 하고 있으며 예산은 70억 원 정도입니다. 육영재와 같은 서당을 만들기 위한 부지매입이라도 이루어졌으면 합니다.
▼ 육영재가 있었던 곳은 현재 사람이 살고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이곳이 행복의창 만들기 하면서 매입을 한 것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습니다. 육영재 땅은 247평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1877년 이전까지는 여기서 많은 학생들이 치초 교육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 육영재 옆 건물에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있습니다.
▼ 새롭게 2층 건물이 들어서있습니다.
▼ 행복의창 만들기하면서 향교 옆 대지를 주차장 용도로 사용하려고 구입하였다고 하던데 보이는 방향인 것 같은데 말이죠.
▼ 새롭게 놓은 길에 점점 빌라가 들어서고 있어서 예전의 땅이 점점 위험해지고 있습니다.
육영재터를 창원시에서 매입을 하였으면 합니다. 여단, 사직단, 육영재까지 창원의 옛 이야기가 서서히 나타납니다. 육영재를 통해 어마어마한 스토리가 나올 것이라 생각하며 육영재의 자료는 박영주 경남대학교 박물관 연구원님이 찾은 것입니다.




덧글

  • 남중생 2019/02/04 17:43 #

    오... 그럼 노랫말 속 "나의 살던 고향"이 저 서당 근처를 말하는 것이겠네요.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 팬저 2019/02/10 20:07 #

    예 현재 알려진 곳과 조금 다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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