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굴조사중인 기장읍성 남문 읍성(邑城)



딱 1년전인 2018년 2월에 다녀온 기장읍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1년전 기장읍성을 찾아가니 발굴중이었습니다. 처음 찾아간 2010년에 비해 많은 변화가 있더군요. 마을로 형성되어져 있던 곳은 철거를 하였으며 본격적인 복원을 하기 위해 먼저 발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 앞으로 복원할 기장읍성 조감도입니다. 사진상 오른쪽이 동문이며 아래가 남문입니다. 잘 보이지 않지만 왼쪽에 서문이 있습니다. 북문은 작아서 보이지 않지만 북문을 제외하면 3개의 성문을 다 복원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되며 체성의 경우 북측일부와 동측 일부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다 복원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정도라면 영남권에서는 아주 많이 복원하는 읍성이 될 것입니다.
▼ 남측에는 몇 군데 민가가 남아있지만 조만간 철거를 할 것 같았는데 1년이 지난 지금은 어떻게 전개가 될까? 모릅니다.
▼ 당시 발굴이 이루어지지 않은 곳은 천으로 덮어 놓았더군요.
▼ 예전부터 있었던 기장읍성 안내판
▼ 기장읍성 남측체성으로 1~2단 정도 남아있는 것을 보여줍니다. 
▼ 민가의 담장으로 사용되던 성돌이 이제 제모습을 찾아가는 것 같습니다.
▼ 하부의 기단석이 보이며 기단석 아래에도 잔돌이 보입니다.
▼ 뚜렷하게 보이는 기단석이 "여기가 마지막이요"라고 외치는 느낌을 줍니다.
▼ 예전 민가의 담장으로 사용할때에는 제법 큰 규모의 돌이 있네 정도였는데 이제 비슷한 규모의 성돌이 모여있으니까? 자신의 모양세를 보여줍니다.
▼ 남측체성 앞의 해자
▼ 해자를 찾기 위해 해자 모양에 따라 조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 남측체성이 조사된 마지막 부분으로 그 옆으로는 너무 작은 돌들이 나옵니다.
▼ 제가 처음 왔을때에는 민가가 많아서 체성을 조사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이렇게 발굴이 이루어지니 확실하게 체성을 알아볼 수가 있네요.
▼ 교란된 흔적이 보이며 작은 돌들로 담장을 만들어 놓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이렇게 교란된 것은 일제강점기와 현대시기에 교란이 되었을 것입니다.
▼ 교란된 지점을 지나면 다시 남측 체성의 모습이 보입니다.
▼ 또 만난 남측체성은 우리나라 남아있는 읍성과 같이 읍성체성의 흔적과 현대에 담장을 사용하기 위해 축조한 작은 돌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 기장읍성의 남측체성은 1~3단 정도 남아있지만 그래도 제법 잘 남아있는 체성에 속하는 편입니다.
▼ 여기서 부터는 진짜로 체성의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 다시 남문지를 되돌아 오면서 본 체성으로 조선초기 연해읍성에서 본 축조방식을 볼 수 있습니다.
▼ 21세기에 보는 읍성이 대부분 이렇습니다. 무너진 체성과 그 뒤로 보이는 아파트. 이런식의 앵글은 이제 익숙한 편에 속합니다.
▼ 무너진 체성 틈 사이로 주민들이 축조한 돌들이 보이며 돌의 크기 차이가 확연하게 보일 것입니다.
▼ 남문 앞의 옹성 때문에 해자가 삥 둘러갑니다.
▼ 처음 찾아간 2010년도에 이 집이 남문 옹성에 있다고 하였는데 2018년에 보니까 맞더군요.
▼ 제가 찾아간 2018년 2월 이후에 집은 철거를 하였으며 이후 남문 옹성이 나왔습니다.
▼ 위에 있는 민가를 철거하고 나서 발굴조사한 기장읍성 남문과 옹성의 모습입니다. 확실하게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남문에서 이어져 기장초등학교까지 연결이 되는데 기장초등학교 자리가 객사와 동헌자리입니다. 조선의 전형적인 도로망 구조를 알 수 있으며 객사와 동헌이 높은 곳에 위치하는데 위세를 보여주는 장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진제공 : 기장군청 
▼ 드론을 통해서 바라본 기장읍성 남문 발굴조사중인 모습으로 남문의 옹성과 체성의 모습을 잘 알 수 있고 성문지 주변의 모습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사진제공 : 기장군청
▼ 옹성과 남측체성이 만나는 지점입니다.
▼ 이 사진을 보면 발굴조사를 위해 땅을 판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단석 아래에 잡석들이 채워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부분들이 왜성의 축조방식과 조선의 읍성 축조방식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선의 읍성은 기단석 아래에 잡석을 채워지만 왜성은 땅을 파고 그 위에 바로 성돌을 얻는 방식입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왜성이 있는 곳을 가보면 무너져 내리면 빨리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 아직 해자 부분을 조사를 하지 않은 것을 보여줍니다.
▼ 해자 안의 잡석들이 보입니다.
▼ 기장읍성 남측체성은 그래도 용케 살아남아 있었습니다.
▼ 이 사진을 보면 좌측은 발굴하기전의 모습이고 우측은 발굴하고 나서의 모습입니다. 좌측은 1단 정도 보이고 우측은 1~2단 보이는데 기단석이 나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발굴조사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 민가의 담으로 사용하면서 어떤 곳은 시멘트로 채워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남아있는 남측체성중 가장 잘 남아있는 부분이 아닐까 할 정도로 아주 잘 남겨져 있습니다.
▼ 성돌의 크기도 크기고 형태도 잘 남겨져 있어 조선초기 연해읍성의 축조방식을 잘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시멘트로 만들어 놓은 담장은 하단부 1~2단 위에 만들어 놓았네요.
▼ 여기서부터는 확연하게 우측은 잘 남아있는 체성이고 좌측은 잘 남아있지 않는 체성입니다.
▼ 가면서 체성의 흔적은 점점 안보입니다.
▼ 겨우 명맥만 유지한다는 것이 맞을 정도로 남아있는 것은 기단석이 전부입니다라고 할 정도입니다.
▼ 기단석이 보이긴합니다만 남아있는 체성이 거의 없다시피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하단부는 겨우 보입니다.
▼ 해자와 체성의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체성에서 해자까지는 7~9미터 정도 되어 보이고 해자의 폭은 4미터 정도 보였습니다.
▼ 하단부 1단을 제외하고는 남아있는 것이 없으며 민가를 철거해서 그런지 읍성 내부의 모습이 보입니다.
제가 찾아갔을때보다 현재는 많은 조사가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또한 본격적인 발굴이 이루어질 것이라 사진에 나오는 모습과는 확연하게 다를 것입니다. 또 다른 발굴조사나 복원할 공사현장 그리고 완성한 기장읍성의 모습을 올릴 수 있었으면 합니다. 2019년부터 기장읍성 남문을 복원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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