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일본신사를 찾았다 구 한말 및 일제강점기



네이버 백과사전에 창원만세사건을 찾아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 장재상은 1942년 7월 20일 창원면 동정리에 있는 창원신사 뒤 숲에서 10여 명의 급우들(박대근·최을석·조문대·김명수·배장실 등)과 밀회를 거듭한 후 청년독립회를 조직했다. 청년독립회는 이후 일본의 감시가 극심하여 공식적인 활동보다는 백정기의 지시에 따른 은밀한 활동을 펼쳐나갔다. 이들은 학교에서 강요하는 신사참배에 응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단체 참배 때는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들어가지 말 것, 노골적으로 불참 권유는 하지 않지만 주변 친구들에게 자연스럽게 불참을 권유하고 먼저 실천할 것이라는 강령을 세우기도 했다.

장재상은 배장실과 일본이 신성하게 여기는 신사문(神社門)에다 진흙을 칠하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 또한 ‘조선독립만세’라고 쓴 벽보를 진해군항과 연결되는 요지인 창원역의 지하도 교량 화장실 등에 붙여 대중적 관심을 이끄는 사건(창원만세사건)을 주도하기도 했다. 1943년 5월 말경 장재상과 7명은 창원만세사건의 용의자로 진해경찰서에 검거되었으나, 범행을 부인하고 증거가 없어 29일 만에 풀려났다. 그 후 일본의 집요한 수사로 1944년 12월 진해헌병대에 의해 검거되어 8개월 동안 수감되었다가 출옥했다. 장재상은 출옥 후 모진 고문의 여독으로 고생했다.

이 내용을 보면 창원면 동정리에 있는 창원신사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창원신사라고 하는 곳이 과연 어디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울, 부산이나 마산과 같은 대도시에는 일본신사가 만들어지고 나서 일본신사에 관한 자료가 많거나 많은 분들이 알고 있지만 창원에 있었다고 하는 창원일본신사는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전해져 오는 것도 없습니다. “

일단 창원일본신사가 어디에 있는지를 아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그래서 이 동네를 잘 아시는 분이 필요할 것 같아서 3.23 창원읍민독립만세의거 100주년 기념추진위원회 나은옥 사무국장에게 부탁을 드렸습니다. 그분을 오늘 만나기로 하고 나은옥 사무국장과 박영주 경남대학교 박물관 연구원과 함께 황차주 어르신을 만났습니다.

황차주 어르신은 선대 대대로 창원 의창동에서 사셨던 분이고 예전에 창원시의원을 역임하신 분입니다. 창원일본신사는 현재 구.창원여중 자리였던 동정오성아파트 근처였습니다. 원래 이곳은 조그마한 동산이었는데 해방 후 일본신사를 허물면서 동산도 삭평하였다고 하더군요.

동정오성아파트 옆 도로에 위치한 일본신사는 1,220평이 넘었는데 해방 후 12개 택지로 나누었다고 하더군요. 같이 함께한 박영주 연구원님이 가져온 사진을 보여주니 “맞다. 여기가 신사자리이다. 이 사진을 어떻게 가져왔느냐?”면서 되물어 보더군요.

현재 창원일본신사가 있었던 곳은 도로가 나와 있는 상태라 이곳이 과연 창원일본신사가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동네에서 흔하게 보는 풍경입니다. 당시 일본신사는 2층 주택의 옥상 정도 위치에 있었다고 하며 동산은 허물어 버렸다고 합니다.

창원일본신사는 조선시대 당시 활을 쏘는 강무정이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왜인들이 강무정에 일본신사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당시 1주일에 한 번씩 일본신사를 참배하였으며 그 참배를 거부하려고 청년독립회를 조직하여 일본 신사 입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인 도리이에 진흙을 바르고 했는데 황차주 어르신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이 했다고 합니다. 당시 일본신사참배 거부운동을 하신 분 중 현재 생존하고 계신분이 계신데 오경팔(吳慶八) 어르신입니다.

강무정은 사정으로 말 그대로 활터였습니다. 조선시대 당시 읍성 외부에 활터를 두었는데 창원은 강무정입니다. 강무정에서 200미터가 되지 않은 곳에 표적판이 있었는데 현재 임진각 식당 옆 동산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조선시대에 국궁을 연습하던 강무정을 왜인들이 일본신사를 만든 것입니다. 강무정은 현재 두대동에 있는 창원시 공설운동장 뒤편에 이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기는 창원시 궁도협회에서 사용하는 사로입니다.

아직 생존하고 있는 오경팔(吳慶八) 어르신은 만나지 못하였는데 다음에 만나서 창원만세사건에 관하여 자세히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 1954년 항공지도에서 본 창원의 모습에서 일본신사가 있었던 흔적을 발견하였습니다. 창원일본신가가 있었던 곳은 조그마한 동산이었는데 이것을 허물었다고 하는데 그 자리가 평편하게 나와 있습니다.
▼ 1948년 창원항공지도를 보면 확실하게 신사의 위치며 크기 높이를 알 수 있습니다. 위에 있는 1954년지도와 비교하면 확연하게 차이가 있습니다.
▼ 현재의 모습에서는 그 어디에도 흔적을 찾을 수 없습니다. 일단 일본신사는 1949년에서 1954년 사이에 사라진 것 같습니다. 
▼ 일제강점기 1914년 당시 조사한 지적도로 田으로 나와 있습니다. 빨강색과 노랑색이 일본신사가 있었던 곳이라고 합니다.
▼ 이 사진은 해방이후 찍었던 사진 같은데 이 자리가 일본신사의 모습이고 예전 강무정의 자리라고 합니다. 이 사진은 박영주 경남대학교 박물관 연구원이 가지고 있던 것입니다. 비석이 4개가 있는데 높게 있는 비석은 황씨문중의 비석이라고 하는데 현재는 어디에 갔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 현재는 여느 동네와 마찬가지로 빌딩과 주택 그리고 아파트가 있어서 일본신사에 관하여는 상상도 하지 못합니다. 여기가 신사 계단이 시작하는 곳이라고 합니다.
▼ 동정오성아파트 옆 소방도로로 이쯤이 일본신사가 있었던 곳이라고 합니다.
▼ 현재는 소방도로이고 평지라 이곳이 과연 일본신사였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이지만 이곳에 창원일본신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제 하나씩 나오는 창원의 이야기가 살아서 움직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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