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 홍교인 용다리는 어디에 있었을까? 영성(營城)



전라병영성인 강진에 가면 병영성 홍교가 있으며 경남 창녕군 영산면에 가면 만년교라고 하는 홍교가 있습니다. 이외에 전국에 많이들 있는 것이 홍교인데 이 홍교가 진주에도 있었습니다. 홍교는 경상우도병영성인 진주성 남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 홍교는 남강에서 대사지로 연결하는 해자의 다리입니다. 이 홍교에 관하여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보관하고 있는 <진주성도>에 자세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전체적인 모습은 강진에 있는 병영성 홍교보다 영산면에 있는 만년교에 가까운 형태로 보이는 다리입니다.
▼ 이 홍교는 조선시대 당시에는 많이들 사용하였습니다만 홍교가 무너진 것 같습니다. 이 홍교가 언제, 어디서, 누가 파괴를 했는지 모릅니다. 다만 이 홍교의 잔해들을 모아서 경상우도병영성인 진주성 진해루 밑에 보관하면서 <용다리>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용다리의 슬픈 전설>이라며 안내판을 부착하여 놓았습니다.
  저도 경상우도병영성인 진주성을 많이 가보았습니다만 이 <용다리>를 찾아보려고 하지 않았는데 1915년 지적도를 찾아보면서 찾게 되었습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에서 보관하고 있는 <진주성도>에 그려진 것처럼 <용다리>라고 불리는 홍교는 남문인 예화문 바로 옆에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915년 지적도에도 바로 옆에 있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이미지출처 : 국가기록원 지적아카이브
여기서부터 그동안 <용다리>라고 하는 것이 잘못 알려졌음을 저는 확인하였습니다. 항상 하는 이야기이지만 보다 정확한 것은 전문가 선생님들의 조사가 더 필요하겠지만 아마추어인 제가 문제를 제기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일단 <용다리의 슬픈 전설>이라며 안내판을 보면 “진주시 동성동 212-1번지(삼성화재)부근에 용머리가 양쪽으로 붙어있는 돌다리가 있었다”고 적혀져 있습니다. 그런데 1915년 지적도를 바탕으로 현재 네이버 지도 위에 표시를 해보니 진주시에서 이야기가한 동성동 212-1번지가 아닌 것임을 알았습니다. 축소 확대 등으로 인해 오차 범위가 있을 것임을 봐주었으면 합니다. 진주시에서 이야기한 곳에서 직선거리로 100여 미터 떨어진 곳으로 지금의 진주교의 입구가 <용다리>가 있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용다리>가 <진주성도>에 그려진 홍교인가? 하는 의문이 생길 수 있는데 1915년 지적도를 보면 하천으로 표시한 곳은 대사지와 남강 그리고 대사지와 남강 사이로 흐르는 묘(渵 큰물 묘)가 유일한 것이라 정확하게 맞을 것입니다. 제가 추정한 것은 오차가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대략 2~3미터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면 <용다리>는 크기는 얼마였을까요? 1915년 지적도를 바탕으로 대강 예측한다면 7~8미터 정도 길이가 되어 보였으며 폭은 3미터 정도 되어 보였습니다.(근거는 방한지로 그려진 격자를 3미터 기준으로 잡은 것입니다)
또 <용다리>가 과연 안내판에 적혀져 있는 것처럼 <용머리가 양쪽으로 붙어있는 돌다리> 일까? 하는 부분인데 이건 저도 못 본 것이라 “맞다! 아니다!”라고 이야기하기 힘들지만 전라도 지역에 있는 홍교를 기준으로 한다면 용머리가 양쪽으로 붙어있는 돌다리가 아닐 가망성이 많다는 것입니다. 강진에 있는 전라병영성 앞에 있는 다리인 홍교와 진주에 있는 경상우도병영성 홍교를 비교하는 것은 재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둘 다 전라도와 경상우도를 책임지는 병영성이었으며 성문을 지나 만나는 다리이라는 점도 일치합니다. 그렇다고 강진홍교와 진주홍교가 같다고는 볼 수 없지만 그래도 같지 않았을까? 라고 추정은 가능할 것 같습니다. 강진 홍교의 바닥 가운데에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되어진 다리는 강진 이외에 몇 군데가 있습니다. 보성 벌교의 홍교, 여수 흥국사 홍교, 순천 선암사 홍교, 다리일 수도 있고 아닐 수 도 있는 고흥 옥하리 홍교에서도 다리 바닥 가운데에 마룻돌이 용으로 장식해 놓았습니다. 마룻돌의 형식이 아니고 다리 양 옆으로 튀어 나오는 장식용 돌이라면 진주시에서 적어 놓은 것이 맞을 수 있습니다. 즉 홍교 가운데 양옆으로 돌출되게 만든 홍교라면 2개의 용머리가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양 옆이니 양쪽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런 식은 여수 흥국사 홍교에 있다는 것입니다.

 전남 강진에 있는 전라병영성 앞 홍교 이미지출처 : 한국관광공사
 창녕 영산면 만년교 진주성도에 나오는 그림을 기준으로 한다면 만년교가 가장 가까운 형태인 것 같습니다.  이미지출처 : 두산백과사전
 벌교 홍교  이미지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강진에 있는 전라병영성 앞 홍교의 용두     이미지출처 : 광주드림
▼ 흥국사 홍교의 용두     이미지출처 : 광주드림
 고흥 옥하리 홍교(실제로는 홍교가 아니고 수문입니다)의 용두
 여수 흥국사 홍교에 있는 장식용 돌로 이런식으로 용머리를 장식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즉 용두가 아니라면 이런식 장식용 돌이 용다리에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이미지출처 : 네이버 블로그 장발장님 https://blog.naver.com/jvj24601/221232778264
 홍교 양옆으로 용머리를 올려 놓을 수 있습니다. 용다리의 용 크기로 봐서는 홍교 양평에 용머리를 올리는 방식이 아닐까 추정합니다. 이미지출처 : 여수관광문화 홈페이지
 그렇다면 홍교는 언제 없어졌을까요? 1915년 지적도에는 분명하게 그려져 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1933년도 나온 진주시 지도를 보면 진주교가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진주교가 놓이면서 홍교는 사라졌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1933년 이전인 1918년 진주시 지도를 보니 그 당시에도 진주교는 있었더군요. 그렇다면 홍교는 1915년과 1918년 사이에 사라졌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그것도 아니라면 1933년 이전에 없어졌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제가 경상우도병영성 남문의 위치를 지적도를 바탕으로 추정해 보았는데요. 진주시 SNS 계정에 올라온 항공사진을 보니 제가 예측한 부분과 1미터 차이도 없는 것 봐서는 제가 이야기하고 있는 홍교의 경우도 맞을 것 같습니다. 따라서 홍교에 관한 연구가 많이 이루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구글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