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당시 진주성 동문은 어디일까? 영성(營城)



1차 진주성 전투에서 치열하게 싸웠다고 하는 동문지 근처는 현재 장대동어린이공원 부근입니다. 정확하게는 장대동어린이공원이 있는 곳이 왜군들이 있는 곳이고 조선군은 그보다 서측 방향입니다만 편의상 어린이공원이라고 하겠습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진주성은 변화를 격게되는데 그중 하나가 진주성을 축소하는 것입니다. 동측체성을 22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축성하게 됩니다. 또 하나가 진주성 내부에 내성을 축성하여 내성과 외성으로 분리하게 된 것이 특징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동측체성의 성돌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진주성을 축소하면서 그대로 옮겨갔을 가망성이 많지만 그것에 대한 기록은 제가 보지를 못해서 정확하게는 잘 모르겠습니다. 

1915년 일제강점기 당시 조사한 지적도를 보면 정확하게는 아니지만 임진왜란 당시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동측체성의 흔적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일단 형태는 한문의 여덟 팔(八)자 모양으로 되어져 있으며 끝이 뾰족한 모양으로 나와서 길게 형성되어져 있는데 이 부분이 해자라고 김준형 경상대학교 교수는 이야기합니다. 해자 바로 뒤로 체성이 형성이 되는데 이 부분은 1915년 지적도를 보시면 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적도에서 돌출되어져 있는 부분이 옹성이 돌아갔던 부분이라고 김준형 교수는 이야기하였습니다.

아래 나오는 두장의 이미지는 김준형 경상대학교 교수의 논문 “조선시대 진주성의 규모와 모양의 변화”에 나오는 이미지입니다.
김준형 경상대학교 교수의 논문 “조선시대 진주성의 규모와 모양의 변화”에 1910년대 지도를 가지고 이야기하였는데 이후 1915년 지적도가 개방되어서 좀 더 업그레이드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또 이 논문에 1930년대 추정하는 사진 속에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의 동측체성에 관하여 이야기하는데 사진이 워낙 작아서 구분이 힘듭니다. 그래도 대충의 형태는 파악이 가능합니다.

여기서 부터는 제가 추정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제가 지적도와 1930년대로 추정하는 사진을 살펴보니 일단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이 숲인데 이 숲은 가방수(加防數)라고 하는데 큰 비가 왔을 때 동남쪽의 남강 물이 세차게 밀려 드는 것을 막기 위해 조성된 것라고 합니다. 가방수 앞에 텅 비어있는 공간이 임진왜란 당시 치열한 현장인 동문과 동측체성이 있었던 곳입니다. 이 가방수 바로 앞에 해자로 추정하는 것이 있는데 이 해자로 추정하는 부분은 조선후기 해자와 대사지로 연결하는 곳입니다. 지적도 상에는 E라고 표시하여 놓았습니다. 원본 지적도와 제가 임의로 색상을 표현한 것과 비교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해자로 추정하는 곳 바로 뒤에 빨강색으로 표시한 것이 있는데 지적도에는 논으로 나와 있습니다. 저는 이 부분이 임진왜란 당시의 체성으로 추정하는 곳입니다. 빨강색으로 표시된 곳은 쭉 연결되어 임진왜란 이후 조성된 체성과 연결이 될 것입니다. 노랑색 점선이 있는 부분인데 F로 표시하여 놓았습니다. B부분은 옹성으로 추정하는 부분입니다. A에서 이어져 나오는 부분이라 옹성일 것이라 추정합니다. 다만 옹성의 일부 부분만 남은 것이 아닐까 추정합니다. 그러니까 H까지 연결되어야 하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사라진 것이 아닐까 추정합니다. 제가 추정하는 것으로 본다면 G부분이 동문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동문 추정하는 곳 바로 뒤에가 사(社)로 나오는데 당시에 절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1915년 지적도중 진주 장대동일대입니다. 지적도출처 : 국가기록원 지적아카이브 
위의 지적도를 토대로 해자추정과 체성 추정을 표시한 것입니다. 그리고 1910년대 당시 길을 표시하여 놓았습니다.

1930년대 찍었던 것으로 추정하는 진주 사진입니다. 촉석루 주변을 찍은 사진은 많은데 동측에서 찍은 사진은 많지가 않아서 아주 귀한 사진입니다. 사진출처 : 국립중앙박물관 유리건판사진
지적도를 토대로 유리건판 사진에 표시해 보았습니다.

지적도를 기준으로 임란 당시 동측체성과 동문지를 표시한 것입니다. 오차가 있으니 그 부분을 감안하고 보셔야 합니다.
1930년대로 보이는 사진을 보면  지적도와 달리 평지라 어디가 체성이 지나갔는지 성문이 어디인지 정확하게 알 수가 없습니다. 다행이라면 가방수(加防數)와 길, 그리고 해자로 추정하는 곳이 사진에 표시가 되어져 있어서 동측 체성을 추정을 할 수 있습니다. 사진을 보면 보는 방향은 지대가 낮고 촉석루가 있는 곳은 높고 그 뒤에 보이는 서장대가 가장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왜군의 입장에서도 가장 공략하기 좋은 곳이 동문지일 것입니다. 지적도를 기준으로 1930년대 사진으로 추정하는 곳에 추정된 체성과 동문지를 표시하여 보았습니다. 추정하는 것이라 일부는 틀릴 수 있습니다. 정확한 것은 1930년대로 추정하는 사진이 임진왜란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라는 것입니다.  

아 그리고 가방수라고 하는 숲은 현재 없어졌으며 그 숲이 바로 장대동 어린이 공원입니다. 이러다 보니 어디가 어디인지는 현재 알 수가 없습니다.
지적도를 근거로 추정해본 임란당시 동문지입니다.
앞으로 더 많은 자료들이 나올 것으로 보이고 그 자료를 토대로 임진왜란 당시의 진주성중 동문을 추정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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