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청 단성 사직단을 방문해보니 읍치



단성 사직단은 현재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에 있으며 도로명 주소에는 사직단로입니다. 단성은 조선시대 단성현이었다가 일제강점기 산청군과 합쳐져서 일개 면으로 전락한 곳입니다. 조선시대 기준으로 보면 당연히 사직단이 있었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단성 사직단도 여느 사직단과 마찬가지로 단성현의 서측에 자리하고 있으며 직선거리로 2km가 되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예전 기록에는 현에서 3리가 떨어져 있었다고 하네요.
▼ 고지도인 해동지도를 살펴보면 사직단이 서측이 자리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향교는 북측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 산청 단성사직단에 관한 글을 살펴보면 " 사직단(社稷壇)이란 임금이 백성을 위하여 토신(土神)인 사(社)와 곡신(穀神)인 직(稷)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단을 말한다. 면적은 약 585㎡에 이르고 1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2점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보존상태가 좋아 제단의 위치와 축조 방식을 확인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것을 알 수 있다. 남아 있는 제단은 동, 서, 남 세가지 방향의 제단이다. 각 방향의 중간에는 3층으로 이루어진 섬돌이 있다. 2005년 1월 13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255호로 지정되었다."라고 적혀져 있습니다. 
▼ 단성에서 운행하는 버스는 내원마을에 내리면 바로 단성사직단이 있습니다.
▼ 조금은 높은 곳 같지만 걸어서 금방 올라갑니다.
▼ 단성사직단은 동,서,남 방향에 제단을 설치하였다고 하는데 보시는 방향은 북측방향입니다.
▼ 단성사직단은 지난 2005년 1월에 경남 기념물 255호로 지정이 되었으며 일부 복원을 하였다고 합니다. 즉 옛모습 있는 그대로 하되 일부만 복원을 한 것이라고 합니다.
▼ 산청 단성사직단 안내판
▼ 올라가면 보이는 단성사직단
▼ 동서남북 4방향에 조그마한 담을 만들어 놓았다. 이 담장은 유(壝)라고 하는데 제단의 영역을 표하는 담장입니다. 이렇게 담장을 두는 것은 신과 인간의 영역을 표시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즉 인간과 신과의 영역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유는 높게하지 않고 낮게 설치하는 것이 사직단의 특징입니다.
▼ 사직단은 조선 건국에 이은 한양 도성의 건설과정에서 종묘, 궁전, 조시(朝市), 도로 등과 함께 계획되었다고 합니다. 즉, 사직단은 도성의 가장 기본적인 시설의 하나로 가장 먼저 조성된 것이 사직단이라고 하니 사직단을 대하는 조선의 태도를 알 수 있습니다.
▼ 다른 곳에 있는 사직단은 동서남북 4방향 출입문에 홍살문을 다는데 단성 사직단은 그 홍살문이 없었다.
▼ 우리나라의 사직단은 백제에서 처음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후 고구려와 신라에서 사직단을 세웠고, 고려는 개성 안 서쪽에 사직단을 세우고 제례 제도를 정비했다고 합니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 사직단 제례는 국가 제례 중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됩니다. 사직은 민생에 관련된 최고의 신을 모신 제단이란 점이 강조되었고, 농업신과 연결되어 기우제(祈雨祭), 기고제(祈告祭)를 중심으로 운영되었습니다. 조선시대의 종묘는 서울에만 있었지만, 사직단은 지방 주현(州縣)에까지 설치되어 수령들이 제사를 주관했습니다. 위에서 나온 것과 같이 기우제와 기고제를 지내는 곳이 사직단입니다.
▼ 사직단의 사직에 관하여 알아보면 사신(社神)은 토지 또는 흙·땅을 관장하는 신을 말하고, 직신(稷神)은 곡식을 관장하는 신을 이야기합니다. 사직단은 사신(社神) 즉 토지신을 오른쪽(서쪽)에, 직신(稷神) 즉 곡신 신은 왼쪽(동쪽)에 두고 제를 지냅니다.

▼ 두 개의 제단이 있고, 제단의 위쪽(남쪽방향)에 신실(神室)이 있습니다. 
▼ 오래된 소나무는 세월의 깊이를 보여줍니다.
▼ 단성 사직단은 경남에서는 유일하게 남아있는 사직단으로써 제단의 규격은 <국조오례의>의 규정과 비슷하며 이러한 문화재적 가치를 높이 평가하여 2005년 1월 13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 255호로 지정하여 보존하고 있다.
▼ 보이는 건물은 신실로 밤나무로 만든 위패를 깎아 신실에 모시다가 제사 때에는 제단에 내려 모셔놓고 제를 지낼 수 있는 공간입니다.  
▼ 단성사직단은 2006년 산청문화원이 발간한 <산청군지>에 사방으로 섬돌을 내고 각각 세 계단으로 하며, 제단은 방색으로 꾸미고 그 위에 황토를 편다라고 적혀져 있으며 단성사직단의 건립에 관하여는 정확하게 나와 있지 않다고 하며 조선 초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한다고 합니다.
▼ 보이는 곳이 북측인데 북측으로 신이 들어온다고 합니다.
▼ 보통 외부에 신실을 내는 것에 비해 같은 공간에 신실이 있는 것이 특이합니다.
▼ 소나무가 있는 곳에 문이 있는데 저기가 동측입니다.
▼ 신실 뒷면에 보이는 축대로 축대 방향이 남측입니다.
▼ 신실 옆에서 바라본 단성 사직단의 모습입니다.
사직대제에는 기곡(祈穀), 춘향(春享), 추향(秋享), 납향(臘享)이라는 네 가지 제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제사가 거행되는 날짜를 보면 기곡제는 정월 첫 번째 신일(辛日)에 거행하고, 춘향제는 2월 첫 번째 무일(戊日), 추향은 8월 첫 번째 무일, 납향은 12월 납일에 거행했다고 합니다. 사직단 제례에는 소사(小祀)도 있었습니다. 비가 내리기를 기원하는 기우제(祈雨祭), 비가 그치기를 기원하는 기청제(祈晴祭), 눈이 내리기를 비는 기설제(祈雪祭), 괴이한 일이 있을 때 거행하는 해괴제(駭怪祭), 귀신을 위로하는 위안제(慰安祭), 사직단 신위를 이동시키는 이안제(移安祭), 중요한 일을 알리는 고유제(告由祭)가 이에 해당하는데 지방에서 지방관이 거행하는 사직단 제례도 소사에 속했다고 합니다.

▼ 보이는 담장(유(壝)은 서측입니다.
▼ 산청 단성사직단은 최근 복원한 지방의 사직단과는 조금 다른 형태를 보여주는데 바로 사단과 직단을 분리한 것입니다. 다른 곳은 사단과 직단을 하나로 합친 것에 비해 다르게 되어져 있습니다.
▼ 유(壝)를 복원하면서 자라고 있는 소나무를 피해서 복원하여 놓았습니다.
▼ 일단 배수구를 만들어 놓은 부분은 예전에는 없었던 것이 아닐까 추정합니다.
▼ 단성사직단 관련 사진들이 찍으면 이 방향으로 찍는 것 같습니다. 이 모습이 많이 본 모습입니다.
▼ 현재 산청 단성사직단은 춘양대제를 통해서 제례행사를 재현하고 있습니다.
▼ 전국적으로 사직단을 찾고 있으며 많은 수의 사직단을 발견, 발굴하였으며 일부는 복원을 하고 있습니다.
경남에서는 산청 단성 사직단이 유일하게 남아있었고 이후 창녕사직단이 복원이 되었으며 진주사직단, 고성사직단이 발굴이 되면서 기념물로 지정이 되었습니다. 이후 거제 사직단, 밀양 사직단, 창원 사직단, 곤양 사직단 등이 위치를 발견하였으며 사천 사직단은 위치를 발견하였지만 토지재개발로 흔적이 없어졌고, 합천 사직단은 지방공단이 들어서면서 흔적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외 함양 사직단, 산청 사직단은 위치가 나왔지만 보다 더 정확한 위치는 아직 나오고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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