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촉석루 익루가 있었네 영성(營城)



오늘 진짜로 대박인 사진을 보았습니다. 1901년 1월말~2월초에 찍은 사진으로 일본인 지질학자 고토분지로의 조선기행록에 나오는 진주 촉석루 사진입니다. 이 사진을 박영주 연구원님이 스캔하여 보내온 것입니다. 지금으로 부터 118년전의 사진으로 아주 중요한 사진입니다. 그동안 밀양 영남루의 경우 이인재(피닉새아님)가 밀양부사로 부임하여 현종 10년(1844) 다시 개창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당시 영남루를 개창할때 참고한 것이 바로 진주 촉석루인데 무엇을 참고했는지에 관하여 나온 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나온 사진은 바로 1901년 초 사진입니다. 이 사진에는 영남루에 있는 익루가 있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즉 문헌에 있는 내용 영남루가 촉석루를 참고했다는 것이 증명되는 순간입니다. 와~ 대단한 사진입니다. 다만 영남루와 같이 침류각으로 연결하는 층층각이라는 계단형 통로는 보이지 않습니다. 촉석루 우측(남강 건너서 본 방향으로 촉석루 동측에 익루가 있습니다)익루는 ㄱ자형으로 된 익루로 촉석루의 높이와 같습니다. 1931년 촉석루 사진을 보면 이 익루가 보이지 않습니다. 즉 1931년 이전에 익루는 사라졌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이 익루가 언제 없어졌는지는 좀 더 많은 사진 자료나 문헌이 있어야 될 것 같습니다. 다만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여러개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1901년 사진을 보면 촉석문도 보이는데 지금과 같이 잡상이나 취두는 보이지 않습니다. 즉 현대에 복원한 것은 엉터리라는 것이죠.(저는 이 부분에 관하여 여러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남포정사가 보이며 촉석문 옆(현 진주성 촉석문 옆 화장실 부근)에 포루가 보이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즉 촉석문은 옹성이 없으니 취약한 부분을 보강하기 위해 포루가 세워진 것은 아닐까 추정해봅니다. 오늘 사진을 스캔하여 주신 박영주 연구원님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로서 진주성에 관한 의문이 조금은 벗겨졌네요.

저 사진을 보니 왜? 촉석루가 조선의 3대 누각이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의 촉석루와 비교해보면 확연한 차이를 보여줍니다.


▼ 1901년 촉석루의 모습
 촉석루 옆에 ㄱ자로 된 익루가 보이고 촉석문도 보입니다. 촉석문에는 아무런 장식이 없는 것이 보입니다. 촉석문옆에 포루가 보입니다.
 1931년 촉석루의 모습으로 ㄱ자로 된 익루가 보이지 않습니다. 1931년 이전에 익루가 사라진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덧글

  • 역사관심 2019/05/25 23:32 #

    허, 익루사진이 있었군요! 저건 복원해야...
  • 팬저 2019/05/25 10:03 #

    예... 일단 좀 더 정확한 자료가 있었으면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또 이상하게 복원이 될까? 걱정이 됩니다.
  • 드미트리 2019/05/25 14:39 #

    다 복원했으면 좋겠군요.
  • 팬저 2019/05/25 14:50 #

    예.. 그전에 정확한 자료를 모으는 것이 우선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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