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초기 촉석루는 좌우에 4개 익루가 있었다 영성(營城)



촉석루 동측에 있는 익루가 있는 것을 사진으로 확인을 해보았습니다. 1907년 이전에 익루인 함옥헌이 없어졌을 것으로 봤는데 1906년에 함옥헌이 사라지게 된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촉석루가 본루이고 좌우에 속루라고 하는 익루가 있었는데 그 누(樓)가 4개였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전에 누(樓)가 4개였는데 1593년 2차 진주성 전투 당시에 좌우 누각 4개 모두 소실되었다고 하네요. 이후 2개의 누각(쌍청당(雙淸堂), 임경헌(臨景軒))은 복구하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동각인 능허당은 2차 진주성 전투 당시 소실되었다가 중수 할 때 복구하였다고 합니다. 이후 능허당(凌虛堂)이 함옥헌(涵玉軒)으로 바뀌었고 1906년 일본인에 의해 사라졌다고 합니다. 청심헌(淸心軒)은 능허당(凌虛堂) 옆에 있었는데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소실되어 버렸고 이후 중수하였지만 몇 차례 화재가 나면서 1757년에 없어졌다고 합니다. 출처 : 동서대학교 하강진교수의「진주 촉석루 제영시의 제제적 성격」
조선초기 촉석루 좌우에 있었다는 익루를 고증없이 배치한 것입니다. 임경헌은 나중에 관수헌으로 능허당은 나중에 함옥헌으로 바뀝니다.
조선초기에는 좌우에 4개의 누각이 거느린 거대한 규모의 촉석루였지만 조선후기에는 함옥헌만 거느린 작은 규모의 누각이었다가 임진왜란이 불타고 나서는 촉석루 본루만 남게 되었습니다. 

평안북도 성천에 있는 강선루를 보면 아주 큰 누각임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십이루가 길게 이러져 있으니 더욱 더 큰 누각임을 보여줍니다. 또 뒤편에 객사인 동명관까지 있으니 더욱 더 큰 규모임을 보여줍니다.

진주 촉석루가 조선의 3대 누각임을 보여주는 것이 현재의 촉석루가 아닌 조선 초기 촉석루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촉석루에 관하여 더 알고 싶다면 까마구둥지님의 글을 참고하시고 봐주시기 바랍니다.



덧글

  • 역사관심 2019/05/26 22:06 #

    "진주 촉석루가 조선의 3대 누각임을 보여주는 것이 현재의 촉석루가 아닌 조선 초기 촉석루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동감입니다. 우리 문화재의 복원시, 가장 전성기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됩니다.
  • 팬저 2019/05/27 00:44 #

    예 기본적인 자료를 찾고 모은 이후에 진행하였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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