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향토사연구회에서 발견한 창녕사직단 읍치



창녕 사직단은 2003년 창녕향토사연구회 회원들이 활동 중 창녕향교앞 명덕못 근처를 창녕문화공원(2004년 조성) 답사하다가 발견한 것이 사직단 터입니다. 이후 조선고적도보에 실린 사직단 위치자료, 사직단터 현장사진, 현풍사직단 사진을 첨부하여 창녕군에 공문을 발송하였고 2006년 지표조사와 2011년 발굴조사를 통해 제단과 담장의 기초시설, 계단, 부속건물지, 단과 석축 등이 확인되었으며 2011년 11월 10일 바로 기념물로 지정된후 얼마되지 않아 복원을 하였습니다. 이 창녕 사직단은 경남에서 복원한 것은 두 번째로 사직단입니다. 이보다 먼저 있었던 것은 산청 단성 사직단인데 이는 오래전부터 있었던 것을 일부 복원한 것이 산청 단성사직단입니다. 창녕 사직단 이후 진주 사직단과 고성사직단이 기념물로 지정이 되었습니다.

고대 농경사회에서 국토와 곡식은 국가와 민생의 근본입니다. 사직은 토지신인 국사신(國社神)과 곡물신인 국직신(國稷神), 두 신에게 제사를 드리기 위해 단을 쌓고 제사를 지내는 곳을 사직단이라고 했습니다.  “『주례』에 따르면 종묘는 관아의 동쪽에, 사직은 관아의 서쪽에 둔다는 원칙에 따라 세워졌습니다.(거의 이 부분을 지키는데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관아가 이전하였거나 할 경우 위치가 다르게 될 수 있습니다) 지방관은 왕을 대신해 토지신과 곡식 신에게 매년 두 차례 제사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가뭄이 들거나 풍년을 기원하는 제사도 때때로 올리기도 하였습니다.”

경남의 사직단 현황을 살펴보면 단성사직단은 경남기념물 제255호, 창녕사직단 경남기념물 제278호, 진주사직단 경남기념물 제291호, 고성사직단 경남기념물 제296호로 지정이 되어져 있습니다. 이외에 정확하게 지번이 알려진 사직단은 곤양, 창원, 함양, 산청, 합천, 사천, 웅천, 거제, 밀양 사직단입니다. 사직단이 있었다는 것은 알지만 정확한 지번을 모르는 곳은 진해현 사직단입니다.

이외에 김해, 양산, 영산, 거창, 하동, 남해, 삼가, 초계, 안의, 함안, 의령, 통영의 사직단은 대충 위치는 알지만 정확한 지번을 모르고 있는 곳입니다.

▼ 복원한 창녕사직단으로 창녕 사직단을 촬영한 것은 2017년 5월 2일이지만 이제야 올립니다. 
 창녕 사직단 발굴조사 당시의 모습으로 현재와 비교할 수 있겠습니다.
 담장은 낮게 복원하여 놓았습니다.
 단은 3단으로 조성한다고 하던데 4단으로 복원을 해놓았네요.
 낮은 담장과 배수구
 사직단 4곳은 홍살문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사직단의 정문은 북문인데 성문의 정문이 남문과는 반대된 개념입니다.
 기와는 조선식으로 복원하여 놓았습니다.
 북문을 바라본 모습으로 북문의 담장은 나무로 되어진 낮은 담장입니다.
창녕군은 조선시대 당시 창녕군과 영산현 두 개의 군현이 있었습니다. 영산에도 사직단이 있었을 것인데 아직 찾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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