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시에서는 조선초기 경상우도병영성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까? 영성(營城)



창원시 마산회원구 합성동은 조선초기 경상우도병영성이 있었으며 임진왜란 이후 진주로 경상우도병영이 옮겨가게 되고 이후 사용하지 않은 폐성이 됩니다. 해방이 되고 마산수출자유지역을 조성한다고 하면서 경상우도병영성의 돌을 가져가서 매립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조선초기 경상우도병영성의 흔적이 남은 것이 많지가 않습니다. 그래도 각 문화재연구원등에서 창원시 등의 의뢰를 맡아서 연구를 한 것이 있습니다. 

동아대학교박물관, 1991,『마산 합포성지 기초조사 보고서』.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 2006,『마산 합포성지-마산 합성동 114-1번지 건축물 신축예정지 시굴조사 보고서』. 경남발전연구원 역사문화센터, 2006,『마산 합포성지-마산 합성동 73-10번지 주택신축부지 내 시굴조사 보고서』, 경남대학교박물관 2010 『합포성지 정밀지표조사보고서』, 한국문물연구원 2015 『마산 합성1동구역 주택재개발정비 사업부지 내 매장문화재 발굴(시굴)조사 결과보고』이외에 몇 개가 더 있습니다.

아래에 나오는 사진은 경남대학교 박물관에서 조사한 합포성지 정밀지표조사보고서에 나오는 사진입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현재 합포성지(조선초기 경상우도병영성)에 남아있는 체성은 많지 않으며 일부를 복원한 것은 있습니다. 현재 경남유형문화재 제153호로 지정되어 있는 합포성지이며 아래에 나오는 것이 유일하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위에서 나오는 곳을 가려고 하였지만 민가라 주인의 허락이 있어야 하는데 갈때마다 주인장이 없어서 들어가보지를 못하였습니다. 그러다 최근에 다녀왔는데 아래 사진과 같이 빌라를 신축한 상태였습니다. 빌라의 준공이 2016년 7월이니 2016년 1월부터 공사가 들어간 것 같습니다. 머릿돌에도 그렇게 적혀져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2015년 말에 민가를 헐고 건축심의를 받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다면 과연 문화재위원들은 저 내용을 알았을까? 아니면 문화재위원들이 참석을 했을까? 참석했다면 허가를 해주었을까? 왜 해주었을까? 등 의문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신축된 빌라 바로 뒤가 조선초기 경상우도병영성 동측체성과 동문지 부근입니다. 아래에 나오겠지만 빌라와 체성과는 불과 1미터도 되지 않을만큼 떨어져 있습니다. 70~80센치 정도될 것 같더군요.
빌라에서 바라본 골목으로 골목은 아주 작은데 아마도 예전의 해자였을 것입니다.
1950년대로 보이는 합성동일대 항공사진입니다. 빨강원으로 표시된 부분이 새롭게 신축한 빌라가 있는 곳입니다.
조금 확대해서 보니 당시에 옹성을 따라서 집을 짓고 사용중이었습니다. 바로 앞은 해자의 모습이 보입니다.
1915년 일제강점기 당시의 지적도입니다. 파랑색 원으로 표시된 부분이 동측체성이고 동문이 있는 곳입니다.
현재 남아있는 면석들은 아주 큰 면석들로 일단 육안으로 보면 제법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기단석으로 보이는 부분도 보입니다.
면석이 워낙 큰데 체성의 아래부분이라 그런 것 같습니다.
동문 옹성이 시작되는 부분에도 상당히 큰 돌이 민가를 지탱하고 있습니다.
동측체성과 옹성이 만나는 지점입니다.
현재 동측체성 10여미터와 옹성 10여미터가 남겨져 있습니다.
하단부는 현재 거의 날아간 상태이며 옹성의 경우 기단석도 없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반대편으로 와서 옹성이 있는지 살펴보았는데 사진과 같이 전혀 없더군요.
위에서 본 것과 같이 체성과 동문지로 추정되는 곳에 불과 1미터도 되지 않습니다. 지난 2004년에 창원읍성 체성과 불과 1미터도 되지 않은곳에 허가하여 지금 엄청난 예산이 투입되고 있습니다. 그런 창원시가 그런 문제점을 개선하지 않고 12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똑 같이 건축허가를 해주었습니다. 당시 문화재위원들은 도대체 뭘하였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으며 건축과와 문화유산과가 유기적으로 협조를 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렇게 반복되는 부분을 저로서는 이해하기가 힘이드네요.





구글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