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단과 공동묘지와의 상관관계 읍성(邑城)



조선이 생기고 한양을 수도로 정하면서 가장 먼저 만들었다고 하는 사직단, 사직단을 궁궐의 우측에, 종묘를 좌측에 두는 고대의 도성 조영 원칙인 좌묘우사가 『주례』고공기를 참조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합니다. 한양뿐 아니라 지방의 경우도 좌묘우사의 원칙을 지켰습니다. 지방은 사직단을 읍치의 우측에 향교를 좌측에 두었습니다. 즉 사직단은 서측에 향교는 동측에 배치를 하였습니다. 물론 조선 후반기로 가면서 이 원칙이 무너진 곳이 제법 있습니다. 그래도 기본적으로는 좌묘우사의 원칙을 지켰습니다. 현재 좌묘의 향교는 각 지역마다 잘 남아있습니다. 그에 비해 우사라고 할 수 있는 사직단은 1908년(순종2년) 통감부의 칙령으로 제사에 관한 시설 대부분이 철폐됩니다. 이후 복원을 시도하는 곳도 있었지만 주로 2000년대가 넘어서면서 한 개, 두 개씩 사직단의 흔적을 찾거나 복원을 하고 있습니다.

위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사직단은 읍치의 서측에 위치합니다. 읍성에 있어 서문은 잘 사용하지 않는 문이며 시체가 나간다고 해서 지역에 따라 시구문이라고 불리기도 하였습니다. 우리의 조상들의 방위각에 있어서 서측은 해가 지는 곳이라 서문으로 시체를 내 보내는 것 같습니다. 그에 비해 동측은 앞으로의 권력, 새롭게 떠오른다는 개념이 잡혀져 있습니다. 그래서 차기 국왕인 세자(世子)는 동측에 있는 궁궐에 있다고 해서 동궁이라고 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지방은 종묘와 다른 공자를 모시는 묘인 향교는 묘 말고도 앞으로 나라를 이끌 세력을 동측에 배치한 것 같습니다. 즉 학생들이 수업하는 곳이 향교라 동측에 배치한 것 같습니다.

다시 서측으로 가보면 경남에 있는 사직단이 있는 곳을 가보니 공동묘지와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가 찾아간 곳은 사천, 함양이며 지적도로 본 것은 칠원입니다. 이외에도 있을 수 있고 없을 수 도 있습니다. 아직 다 찾지를 못했어요. 우리조상들이 행한 "동입서출(東入西出)" - 동쪽으로 들어가고 서쪽으로 나온다는 이야기처럼 풍수적인 요소 때문에 서측에 공동묘지를 만들었던 것은 아닐까도 생각해봅니다.


칠원읍성 서측으로 향교와 사직단이 있었다고 하는 곳입니다. 현재 칠원 사직단은 찾지를 못하였습니다. 핑크색이 칠원향교가 있는데 좌묘우사의 원칙을 어기고 우사 자리에 위치하고 있는데 원래 자리에서 한 번 옮겨온 것(1700년(숙종 26))이 지금의 자리입니다. 사직단이 있는 곳 옆에 밝은 오렌지색이 많이 보이는데 다 무덤입니다. 상당히 많은 무덤이 있는 것봐서 그자리는 공동묘지인 것 같습니다. 
함양 사직단이 있는 곳은 공동묘지였는데 현재는 분묘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서측에 공동묘지가 들어선 것은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서측은 해가 저무는 공간이라는 의미로 서측에 묘지를 조성하는 이유도 있을 것입니다. 



덧글

  • 바람불어 2019/07/19 21:06 #

    대구도
    향교는 동문밖 현 교동시장 자리에. 지금은 향교가 남산동으로 옮겨 교동(향교동)시장이라는 이름만 남음.
    사직단은 서문 저 멀리 서구 평리동에 있었군요.
  • 팬저 2019/07/20 00:10 #

    대구는 현재 사직단이 3개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구 사직단은 현재 정확한 위치는 모르고 있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경산 사직단은 경산시에 있지 않고 노변동에 있으며 현풍 사직단은 원래의 사직단이 있는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복원하였다고 합니다. 대구는 넓어서 재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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