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읍성 동문 밖 지과정은 어디에 있었을까? 읍성(邑城)



현재 매주 수요일 경남도민일보에 연재되고 있는 함안총쇄록 답사기는 19세기 말 함안을 둘러싼 풍속들을 보여주고 있으며 기록의 중요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2편에는 함안읍성을 이해할 수 있게 함안읍성 주변을 일러스트로 그려놓아 독자들에게 이해할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함안읍성 밖의 모습도 표시하여 놓았는데 그중 나오는 것이 지과정(止戈亭)입니다. 여기서 나오는 지과(止戈)는 창(戈)의 “창을 거둔다”라(止)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통영의 세병관 앞에 지과문이 있는데 같은 뜻입니다. 

▼ 이미지 출처 : 경남도민일보

경남도민일보에 적혀져 있는 것을 보면 “지과정(止戈亭) : 동문 밖에 있다. 6칸으로 현판이 지과헌(止戈軒)이다. 감옥(囹圄):군옥(郡獄). 동문 동쪽에 있다. 읍장시(場市): 동문 앞에 수십 호 인가가 있는 자리다. <군지(郡誌)>에 방목시(放牧市)로 나온다. 교장(敎場) : 동문 밖으로 광활(廣闊)하다. 무예기술(武技)을 연습한다.”로 나옵니다.


경남도민일보에 그려진 일러스트를 보면 지과정은 동문에서 북측에 그려져 있고, 그 아래에 교장이 나온다. 경남도민일보에서 이렇게 일러스트를 그리게 된 것은 오횡묵은 부임 엿새 뒤인 27일 통인과 관노를 1명씩만 데리고 읍터 전반을 살펴 보는데에서 나옵니다.

여기서 지과정의 모습은 “지과정 : 동문에서 보면 북쪽에 있다. 감옥 : 동문에서 보면 지과정 남쪽에 있다”라는 대목입니다. 위에 적혀져 있는 지과정은 동문 밖에 있다와 동문에서 보면 북쪽에 있다. 지과정 남측에 감옥이 있다고 나오는데 어떤 것이 맞는지 헷갈립니다.

오횡목이 읍터를 돌아보면서 보는 기준으로 보면 분명 동문 북측에 자리하고 있으며 형옥보다 위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이미지 출처 : 국가기록원 지적아카이브

1916년 조선총독부에서 조사한 함안군 일대의 지적도를 살펴보면 지과정의 위치가 조금 다른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오횡목 군수가 함안군수로 부임한 것은 1889년으로 지적도가 나오기 전 27년 전입니다. 조사하는 기간을 제외하면 대략 25년 전에 부임한 것을 알 수 있는데 시간이 흘렀던 관계로 조금은 착오가 있을 수 있고, 또 한편으로는 큰 변화는 없지 않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습니다.

일단 1916년 지적도를 살펴보면 보라색으로 칠해진 부분이 보이는데 바로 형옥 즉 감옥자리입니다. 이 형옥을 보면 대지(垈地)항목입니다. 즉 집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땅의 주인은 국가(國家)를 나타내는 국(國)이 아닙니다. 국가 땅에서 개인 땅으로 바뀐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과정은 6칸으로 적혀져 있는데 앞면 6칸, 옆면 2칸의 정자일 가망성이 많습니다.(기자의 이야기로는 정면 3칸 측면 2칸 총 6칸이라고 하네요) 즉 건물이 있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지과정은 논과 밭이 아닌 대지(垈地)일 것입니다. 형옥 위에 지과정이 있었다고 하는데 형옥 위에는 논과 밭이 전부인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해 동문에서 나오는 곳에 대지들이 많이 있는데 바로 읍장시입니다. 읍장시를 이야기할 때 나온 “문 앞에 수십 호 인가가 있는 자리다”라는 것이 지적도에서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동문 옹성을 중심으로 17개의 대지(垈地)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밝은 황토색으로 칠해진 것이 개인이 소유한 대지입니다.

▼ 이미지 출처 : 국가기록원 지적아카이브

노랑색으로 칠해진 곳이 있는데 바로 국가 땅임을 표시하는 국(國)이 적혀져 있는 곳을 표시한 것입니다. 주로 동측 성벽 바로 아래에 있는 땅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벽(빨강색) 아래가 아닌 곳에 노랑색으로 칠해진 곳이 있습니다. 이 땅을 보면 국가 땅이면서 대(垈)로 적혀져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지과정이 있었다고 하는 곳은 대지여야 합니다. 그리고 국가의 땅이었을 것입니다. 지번을 보면 함안군 함안면 봉성리 1129번지입니다. 

▼ 이미지 출처 : 국가기록원 지적아카이브
1129번지 바로 옆에 국가 땅이었음을 보여주는데 바로 밭(田)임을 표시하여 놓았습니다. 1129번지 보다 7배 이상 큰 땅임을 알 수 있습니다. 1130번지로 이곳이 바로 교장일 가망성이 많습니다. 경남도민일보에 적혀져 있는 것을 보면 “교장(敎場)은 동문 밖으로 광활(廣闊)하다. 무예기술(武技)을 연습한다.”라는 항목과 일치합니다.

지과정이 있었던 곳은 현재 밭으로 사용 중에 있으며 교장(敎場)은 민가와 함께 나무를 심어 놓았습니다. 또 교장(敎場)이 있는 곳에 도로가 개설되어 소방도로로 사용중입니다.

저건 1916년 지적도의 기준이며 이전에 지과정이 있었던 곳은 현재로서는 모릅니다. 다만 대지라는 땅의 용도로 기준으로 지과정이 동문 앞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을 합니다. 경남도민일보에서는 2가지를 이야기하였습니다. 동문 앞이다는 것과 동문 북측이라는 것인데 일단 제 생각에는 동문 앞이 맞을 것 같습니다.

항상하는 이야기이지만 이 부분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는 문화재연구원에 지표조사 등이 이루어져야 정확하게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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