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해 학개의 지도와 지적도 합포해전




진해 학개가 합포인줄 아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일제강점기때 나온 지도나 항공사진들입니다. 이렇게 일제강점기때 나온 지도는 그곳에 사람이 살았는지 포구가 있었는지를 알기 위함입니다. 물론 그걸로 학개에 사람이 있었는지 아닌지는 정확하게 모르는 것은 맞지만 추정을 할 수 있지요. 임진왜란 당시 학개에 포구가 있었는지, 사람이 살았는지를 알수가 없으므로 현재 학개가 합포해전이라고 주장하고 저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일단 일제강점기 1910년의 경우 조선의 인구가 1,650만명정도 추정을 하고 있으며 1945년 2,526만명으로 추정을 합니다. 35년만에 인구가 900만명이 늘어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인구는 얼마 정도 될까요? 대략 1,000만명으로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2) 또 다른 자료에는 1729년의 경우 713만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우리역사넷에 있는 자료를 한다면 중종 38년(1543)에 조선의 인구는 416만명입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 추정한다면 1,000만명이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인조 17년(1639)에 조사된 조선의 인구는 152만명으로 나와 있습니다. 3) 우리 역사넷에 있는 자료 아래편에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인구를 1,400만명으로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 다만 학자들마다 주장하는 것이 다른 상태라 정확한 인구를 측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인구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현재의 개념으로 접근하는 것은 큰 오류가 있다는 것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인구가 1,000만명이라고 하면 남북한 인구 7,500만명의 7~8분의 1이 조선에 살았다면 단순하게 측정하여 진해구 인구 1/7이나 1/8으로 기준하면 대략 3만명이 되지 않습니다. 1789년 호구총서에 의하면 웅천은 15,742명이라고 합니다. 

조선이 개국하기전 고려시대에 현재의 해군부대가 있는 현동에 완포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선이 개국이 되면서 현재 웅천에 치소를 두었습니다. 그리고 완골포와 가덕도에 조선수군진이 있었으니 정확한 인구는 알 수 없지만 대략 완포현에 1/4. 안골과 가덕에 1/4, 웅천에 1/2정도의 인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기준으로 1789년 호구총서를 대비시키면 완포에 4,000명, 웅천에 8,000명, 안골과 가덕에 4,000명 정도 살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웅천에 8,000명이 산다고 가정을 할 경우 학개에 사람들이 살았을까요?

학개가 있는 곳은 일제강점기 당시 해군기지가 있는 진해다 보니 번번히 지도가 빠져있습니다.또 해방이되고 1950년대 이후 항공사진에는 시골이라 번번히 빠져있어서 학개의 변화를 측정하지 못하여 아쉬움을 주고 있습니다.

▼ 미국 텍사스대학에 올라온 1945년 진해지도에서 찾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큰 지도는 여기를 클릭하세요.
 위 지도에서 행암이 있는 부분을 확대를 해보니 학개에 관하여는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저 지도를 보면 행암에도 집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도로도 보이지 않습니다. 지도는 1946년에 나왔지만 일제가 조사한 1933년에서 1936년을 참고한 것 봐서는 저 지도는 1930년대 중반으로 보여집니다. 
▼ 다른 지도가 있나 싶었지만 보이지 않았으며 해도가 인터넷에 공개된 것이 있어서 링크시켜봅니다. 진해만 해도입니다. 출처는 여기를 클릭하세요.
 위 해도를 확대해보면 수치에 몇 가구가 보이며 학개에도 3개의 점이 보이는데 가구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수치나 죽곡은 지명이 있지만 학개는 보이지 않고 대일산이라는 산의 지명만 보입니다. 이건 학개라는 지명이 없었던 것은 아닐까요? 확대된 지도는 여기를 클릭하세요.
 그러던중 일제강점기 당시(1914년) 대지를 측량한 지적도가 있어서 살펴보았습니다. 살펴보니 학개가 있는 곳은 전부 밭으로 나와있었으며 대지라고 하는 곳은 2개인데 현재 학개횟집이 있는 곳입니다. 지적도에서 나오는 녹색은 밭이고, 하늘색은 바다입니다. ㄱ 갈색은 도로이며 노랑색이 대지, 연두색이 논입니다. 노랑색만 보이죠. 보시면 도로가 보이지 않고 있으며 저 상태에 포구가 있지는 않아보입니다. 지적도 출처 : 국가기록원 지적아카이브  
 가장 하단에 있는 지적도만 불러온 것이고 색상은 표시 하지 않았습니다.
 아래에 나오는 지적도는 웅천과 제포의 선소가 있었던 괴정마을입니다. 여기는 상당히 대지가 많은 것을 볼 수 있으며 포구가 있었던 곳은 둥근 모양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선소가 있었던 곳은 국가부지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해 학개는 사유지이며 2개의 대지가 있는 것이 전부입니다. 과연 저 상태에 지명이 있었을까요?
좀 더 많은 지도와 항공사진들이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 학개가 합포해전지가 맞을까요? 저는 점점 아니다라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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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경숙 식민지 시기(1910년-1945년) 조선의 인구 동태와 구조 
3) 우리역사넷 조선시대 호구 통계자료  http://contents.history.go.kr/front/nh/view.do?levelId=nh_033_0020_0010_0010







덧글

  • 역사관심 2020/02/19 06:52 #

    오 정말 흥미롭습니다. 더 많은 자료가 나와서 확실한 위치정보를 알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 팬저 2020/02/19 12:49 #

    예.. 현재 저는 합포해전지가 학개라고 하는 주장에 "그곳은 아니다"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좀 더 정확한 것은 더 많은 연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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