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포浦의 차이는 합포해전



합포해전지라고 하는 학개는 저번 발제글에서도 이야기하였지만 1910년대 가구수 2채만 있었던 곳이라 포구가 들어가기 힘들다고 하였습니다. 포구가 있었다면 최소한 도로가 나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도로가 나 있지 않는 부분을 보았습니다. 이번 편에는 학개라는 지명에 관하여 한 번 알아보겠습니다. 

여기서 개라는 뜻을 국어사전에서 살펴보면 "강이나 내에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이라고 정의되어져 있습니다. 우리말로 개가 나오는 바닷가는 아주 많습니다. 아래에 나오는 2003년 발행 진해지도를 보면 개로 표시된 것이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산 구산면의  모개와 막개를 비롯하여 진해를 오면 개가 아주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학개는 기본이고 부엉개, 곰개, 큰애럭개, 농밖개, 상녹바위개, 모란개, 가는개 등 아주 많습니다. 학개는 그중 하나일 가망성이 많다는 것입니다. 즉 2가구도 되지 않은 마을의 지명이 없다가 뱃사람들이 부착한 학개라는 명칭을 가져올 가망성이 많다는 것입니다. 지도를 보시면 개가 부착된 곳은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습니다.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이라 사람이 살기에 부적합한 곳이 땅 끝이라 생각이 듭니다. 학개는 큰개라고 적혀져 있는 곳 바로 옆  칼맞이끝 바로 옆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개에 비해 포(浦)에 관하여 국어사전을 살펴보면 "배가 드나드는 개의 어귀. 항구보다 규모가 작음."이라고 적혀져 있습니다. 즉 배가드나드는 어귀로 배가 정박을 할 수 있는 곳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아래 지도에 포구인 것을 표시한 것입니다. 방파제로 바람과 파도를 막을 수 있으며 배가 정박할 수 있게 만든 곳을 표시한 것입니다. 여기에 분명하게 학개에도 자그마하게 표시가 되어져 있어서 표시를 하여 놓았습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개는 바닷가 어귀를 이야기하는 것이고 포는 배가 정박하는 곳을 이야기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현재 합포해전이 학개라고 주장하시는 학자들은 학개가 언제 학포로 바뀌었는지 이야기를 하여야함에도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이 없고 오로지 갈 수 있는 곳은 여기 이외에는 없다고 이야기하십니다. 

페친인 김병륜 샘은 "개는 포浦의 우리말입니다. 임진왜란 관련 조선시대 한글 문헌에 **포는 모두 **개로 표기되어 있다면서 임진왜란 당시 적은 글과 현재의 개의 의미가 다를 수 있음으로 다시 한번 살펴보라"는 이야기를 해주십니다. 임진왜란이후 개가 현재의 개로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좀 더 확인을 해봐야 할 것 같네요.

2003년 발행한 진해시 지도를 살펴보면 바닷가에 개가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국어사전을 살펴보면 "개는 강이나 내에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이라고 정의내려져 있습니다. 그렇다면 학개의 개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학개뿐 아니라 진해에 있는 개가 표시된 것을 보니 저정도 나옵니다. 도시화가 진행된 곳을 제외한다면 더 많은 개가 있었을 것 같은데 말이죠. 

자 그렇다면 진해의 학개의 지명은 언제 생겼을까요? 그 부분에 관하여 적어 놓은 글이 현재 저는 보지를 못하였네요. 저번에도 이야기하였지만 1913년 지적도에 집이 딸랑 2채 있었습니다. 이게 임진왜란때 있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저의 생각입니다. 또한 지명이 있었을까요? 학개라는 바닷가 끝에 있는 지명이 넘어와 마을이름이 된 것은 아닐까요? 그것도 해방 이후 말이죠. 학개마을이 조성된 것이 언제인지는 몰라도 해방이 되고 나서 10가구 정도 모였을때 마을 명칭이 생긴 것 같습니다. 이 마을이 1913년에 2채인데 그 보다 이전인 임진왜란 당시에는 마을이 형성되지 않았을 것으로 저는 추정합니다. 1913년도에는 조선의 인구가 1,650만명이 넘었고 임진왜란때에는 그보다 적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인구에 관하여는 학자들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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