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개가 포구라는 부분을 알기 위해 1914년 나온 지적도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다 살펴보기는 그렇고 해서 웅천현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있다가 또 다른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바로 웅천현 천가면에 있었던 가덕진성과 천성진성입니다. 현재는 부산시 강서구 천가동입니다. 지적도를 보면 2중으로 된 성벽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왜성처럼 구분이 된 2중, 3중으로 된 성벽은 아니지만 가덕진성의 남측성벽과 천성진성의 동측성벽이 2중으로 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천성진성의 경우 지난 2016년 4월 부산시립박물관에서 가덕도 천성진성 문화재 발굴조사를 하면서 2중으로 된 성벽에 관하여 세상에 공개를 하였습니다. 물론 저는 이보다 앞선 2010년 8월 블로그를 통해 공개를 하였습니다. 뭐 저야 아마추어다 보니 2중으로 된 성벽은 공개를 하였지만 옹성이 있다고 생각하여 이야기하였는데 부산시립박물관에서는 옹성은 없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2010년 당시에는 지적도를 볼 수 있는 공간(인터넷)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2014년 국가기록원에서 지적도를 공개하였고 그 부분을 저는 2017년 이후 알았습니다. 제 같은 아마추어에게는 이런 것이 축복이죠.
천성진성에 관한 조사는 있었지만 가덕진성에 관한 조사는 없습니다. 최근 가덕진성 남측 옹성 앞 도로를 개설하려다 해자가 나오다 조사한 것이 있습니다. 최근 며칠 전 가덕진성이 무너져 내린 것에 긴급발굴조사가 2020년 3월에 진행할 것이라고 합니다.
아무튼 다른 곳과 달리 가덕도에 있는 진성은 왜? 2중으로 된 성벽이 이루어진 수군진성을 쌓았을까요? 일본과 가장 가까운 최전방이라는 요소도 작용을 했을것 같기도 하는데 이 부분은 전문가 샘들이 밝혀야 될 것 같습니다.
▼ 가덕진성과 천성진성의 위치

▼ 1914년 지적도에서 본 가덕진성의 모습으로 3개의 성문과 옹성 그리고 치성까지 잘 남아있었던 것 같습니다. 남측이 아래인데 남측을 보면 2중으로 된 체성이 보입니다. 이러한 부분이 처음 축성한 16세기인지 아니면 임진왜란 이후 축성한 것인지는 전문기관에서 발굴조사를 해봐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 천성진성의 경우는 남측이 아닌 동측으로 된 2중으로 된 체성이 구성되어져 있습니다. 해안가인 서측을 방어하기 위해 서측을 2중으로 하지 않고 왜? 동측으로 2중으로 된 성벽을 만들었는지는 확인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2중으로 축성하였는지 이 부분도 연구하면 재미가 있을 것 같네요. 전문가 샘들의 연구가 이루어진다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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