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포合浦의 탄생 배경 합포해전



의령읍을 들어가기전에 나즈막한 곳에 예전 의령현감들을 치적을 자랑하기 위한 선정비가 있습니다. 이 선정비중에 하나가 유독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는데 바로 현감서후유영청백애민불망비입니다. 저번에 한 번 글 적은 것을 다시 한번 재활용합니다.

이 서후유 불망비에는 이런 말이 적혀있습니다. 환주합포(還珠合浦)라고 말이죠. 합포라는 지명이 들어갔으며 앞에 있는 환주는 현재 마산에 있는 환주산입니다. 이 환주산에 회원현성이 있으며 문신미술관, 창원시립마산박물관이 있는 곳입니다. 성호동에서 보면 잘 보이는 환주산의 환주가 의령에까지 적혀져 있으며 합포라는 지명이 들어가 있습니다. 저 멀리 떨어진 의령에 왜? 합포라는 지명이 있을까요?

후한서에 적혀있기를 “환주합포는 진주조개가 합포 땅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뜻이다. 옛날 중국의 전한(前漢) 때 맹상(孟嘗)이라는 사람이 진주조개가 많이 잡히는 합포―중국 남쪽 광시(廣西)자치구 허푸[合浦] 남쪽에 펼쳐진 베이부 옴팡바다[北部灣] 일대―의 태수(太守)로 갔을 때 이야기이다. 값비싼 진주를 탐낸 많은 수령(守令)들이 진주조개를 마구 채취한 탓에 진주조개들이 모두 이웃 고을로 옮겨갔는데, 새로 부임한 맹상이 백성들을 잘 다스리자 마침내 진주조개가 다시 돌아왔다”고 하는 데에서 나온 것이 환주합포, 합포환주입니다.

합포환주는 중국의 유명한 시인의 글에도 많이 인용됐다. 당대의 저명한 시인인 王維도 송형계주(送邢桂州)라는 시에서 인용하고 있다. 왕유가 친구인 형제(邢濟)가 관리로 취임하러 임지로 떠나는 것을 송별하며 쓴 시다. 이 시에서 왕유는 친구더러 ‘합포환주 맹상처럼 애민정치 펼칠 것’을 당부한다.
铙吹喧京口,风波下洞庭。赭圻将赤岸,击汰复扬舲。
日落江湖白,潮来天地青。明珠归合浦,应逐使臣星。
(요취훤경구, 풍파하동정. 자기장적안, 격태부양령.
일락강호백, 조래천지청. 명주귀합포, 응축사신성)
(노래소래 요란한 경구를 뒤로 하고, 물결을 헤치며 동정호로 들어가네.
자기를 지난 뒤에는 적안을 향해, 노를 젓고 더하여 돛까지 올리겠지.
해 진 뒤에 호수에 달빛이 흰데, 바닷물이 밀려와 하늘과 땅이 하나 되네.
합포환주 맹상처럼 애민정치 펼치고, 이합을 알아본 사자처럼 귀한 일꾼 되시게나)

여기서 나오는 환주(還珠)는 곧 선정을 펼친 수령의 상징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합포라는 지명을 가져오면서 백성을 잘 다스리겠다는 환주가 따라오게 된 것입니다.

그런 환주합포가 그래도 거리가 되는 의령 땅에 나오게 된 것일까요? 환주합포에 등장하는 인물은 서유영(1801-1874) 현감입니다. 1865년(고종 2) 가을에 의령현감(宜寧縣監)에 부임을 합니다. 5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4년 만에 파직되어 유배를 가게 됩니다. 가게 된 사연이 암행어사에게 무고(誣告)를 입어 유배가게 됩니다,

1868년(고종 5) 가을 평안도 삼등(三登)에 유배되었다가 1870년(고종 7) 1월에 유배가 풀리어 양주로 돌아오게 되며 고향인 충청도 금계(錦溪: 지금의 금산)로 낙향하여 생활하다가 그 곳에서 생을 마칩니다.

서유영은 의령현감 재임기간 동안 청백한 자세로서 수령의 직무를 다하였던 것 같습니다. 유배간 현감을 위해 선정비를 세우고 환주합포(還珠合浦)라는 글까지 적어 놓은 것을 보니 말이죠.

1873년(고종 10년) 서유영이 자신이 들은 141편의 이야기를 수록한 설화집으로 만든 것이 바로 금계필담입니다. 금계필담은 2권 2책으로 이루어졌는데 한문필사본으로 되어져 있습니다. 2011년 KBS 드라마로 제작한 <공주의 남자>가 바로 금계필담을 근거로 각색한 것입니다. 금계필담은 당시 전해져 오는 야사에 관한 것이라고 합니다. 현재 금계필담에 관한 책이 나와 있는데 <금계필담, 낙향 선비의 은밀한 조선록>이라고 하며 현재 e-book으로 서비스되고 있습니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56947912 e-book으로 된 책은 총 7권이 나와 있습니다.

서유영은 금계필담 이외에도 육미당기(六美堂記)라는 한문과 국문으로 된 고전소설을 지었습니다. 또 이외에 시집 운고시선도 작성하였습니다.

의령 땅에 환주합포라는 명칭이 들어간 불망비가 있습니다. 그러면 왜? 환주합포라고 적었을까?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합포라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는 것입니다.

신라 초기에는 골포현(骨浦縣)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에 골포현을 합포현이라 부르면서 사용한 것이 합포입니다. 저번에도 한 번 이야기한 것처럼 “합포가 마을도 아니고 가구 수 2채만 있었던 곳에 부르는 이름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즉 김해, 진주, 양주(양산), 밀양과 같이 큰 지역명에 들어가는 것이 합포입니다. 그런 합포라는 지역명 옆에 가구 수 2채도 되지 않은 곳에 합포라는 지명을 사용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현재 마을 지명중 진주, 동래, 밀양, 양산, 김해라는 마을이 전국에 몇 개가 있을까요? 있다면 이웃 도시에 있을까요?

합개라는 명칭을 경상도 말로 부르면 합포가 된다는 이야기로 학개가 합포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나, 가까운 바다는 합포만 있다라고 하는 것은 과학적이나 논문의 가치로 떨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논문과 책에는 저녁 6시에 해가 지기 때문에 4시에 출발하면 도착하는 곳은 합개뿐이라고 하였다가 제가 하지 앞이라 7시 40분에 해가 지는 날짜이니 제3의 장소라고 하니 배가 운항하는데 시간이 더 걸린다면서 6시에 영등포에서 출발하였다고 하면서 만들어 놓은 틀에 합포해전이라고 이야기해버리면 어떻게 되는 것인지.. 그럼 그 앞의 논문은 뭐가 되는지.. 이게 맞는 이야기일까요? 정작 유시에 출발하였다고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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