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56년(효종 7) 유형원(柳馨遠)이 편찬한 전국 지리지에 웅천에 관한 포구가 나옵니다. 웅천의 포구는 6개인데 부곡포, 웅포, 덕산포, 양곡포, 제포, 주포입니다. 웅천 읍치에서 가장 먼 곳은 바로 양곡포로 서측 55리라 표시하였습니다. 양곡포는 현재 창원시 성산구 양곡동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서측이 아닌 동측으로 가장 먼 곳은 주포인데 동측으로 20리 떨어져 있다고 합니다. 1656년이면 임진왜란이 끝난지 58년인데 이때 합포라는 포구는 왜? 등장하지 않을까요?
전국지리지 이후에 나오는 것이 대동지지인데요. 1861년(철종 12) 편찬에 착수하여 1866년까지 보완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대동지지에 나오는 웅천의 포구를 보면 주포, 양곡포, 덕산포, 웅포, 부곡포, 구천포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1656년에 나온 전국지리지와 비교하면 제포 말고 구천포가 등장합니다. 구천포는 서측으로 15리 떨어진 곳에 있다고 합니다. 서측으로 10리 떨어진 곳인 덕산포보다 더 서측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외에 있는 포구명칭이 있는 웅천을 보면 풍덕포, 완포, 제포, 신문포, 안골포입니다. 여긴 모두 수군진이 있었던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학개가 있었다고 하는 곳은 웅천읍치에서 서남측으로 15리 정도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서측15리 정도에 19세기에는 구천포가 있고 임진왜란 기준의 16세기로 가면 덕산포가 서측 16리에 떨어져 있습니다. 학개는 어디에 있죠? 기록에도 나오지 않는 포구이며 학개라고하는 포구라고 이순신전문가들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학개가 포구라는 것을 먼저 증명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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