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포의 흔적은 이렇게 많이 남겨져 있는데 진해 합포의 흔적은... 합포해전



북마산을 가면 마산여중 뒤편에 있는 산을 봉수대가 있어서 봉화산이라고 부르며 봉화산봉수라고도 이야기한다. 봉화산봉수를 달리 이야기할 때 성황당봉수라고도 부른다. 그럼 성황당은 왜? 봉화산에 있을까? 보통 고을의 읍치가 있는 곳에 있는데 성황당이 왜? 먼 곳에 있을까? 이는 합포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봐야 한다. 합포현치소가 있었던 현 자산동 문신미술관이 있는 곳이 바로 환주산이다. 합포환주라고 저번에 이야기를 하였는데 다시 이야기를 하면 합포환주는 ‘진주구슬이 합포로 돌아왔다’는 뜻이다. 중국 전국시대 동한의 정치가인 맹상이 있었는데 맹상이 합포의 태수로 부임해 보니 민심이 떠나 있었다. 합포의 명산인 진주도 생산이 끊겨 가난해지는 바람에 길가에서 굶어 죽는 사람이 속출하고 있었는데 모두 탐관오리들 때문이다. 맹상은 이전의 폐단을 혁파하고 선정을 베푸는 한편 백성들에게 이익이 갈 수 있게 진주 생산을 재정비한다. 그랬더니 채 일 년이 되지 않아 합포를 떠났던 진주가 돌아왔고, 물건과 돈이 유통되기 시작해 백성들이 잘살게 되었다고 한다. ‘후한서 맹상전’에 전해지는 얘기가 바로 합포환주이다.

합포환주와 같은 선정을 베풀라는 뜻으로 757년(경덕왕 16년) 골포에서 합포가 된 것이며 현재 문신미술관이 있는 곳을 환주산이라 부르며 토성을 축성한 것이다. 고려를 거치면서도 합포라는 지명이 살아남았지만 환주라는 지명도 살아남았다. 환주산이라는 것도 현재도 남겨져 있지만 현 마산회원구 북성초등학교를 가면 일우근주아파트라는 지명이 있다. 북성초등학교 근처에 근주역이 있었으며 하천을 근주천이라고 불리었는데 현재는 삼호천이라고 불리고 있다. 근주는 한문으로 적으면 近珠이다. 가까울 근에 구슬 주이다. 즉 가까운 것에 구슬이 있다인데 구슬은 바로 환주를 나타내는 것이다. 환주는 還珠인데 돌아올 환자와 구슬 주이다. 근주역에서 환주산까지는 직선거리로 3km가 되지 않는 2.8km정도 된다. 구불구불 돌아간다고 해도 4km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근주역만 보아도 합포는 오랫동안 있었음을 증명한다. 그런데 진해의 합포라고 하는 것은 신라, 고려, 조선시대에도 등장하지 않고 심지어 일제강점기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해방 이후 등장하는데 언제인지 알 수가 없다.
합포해전이라고 하는 합포가 과연 그토록 주장하는 진해 학개가 맞을까? 저는 임진장초에 웅천땅 합포라고 하였기에 마산이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하지만 합포만의 바다임에는 틀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과거나 현재나 바다를 갈라서 니 땅, 내 땅하는 것도 아니고 당시 기준으로 봐도 그렇다는 것이 저의 결론입니다. 따라서 합포해전에 관한 끝장토론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는 것이 제 결론입니다.

내용은 최헌섭 두류문화재연구원장님이 이야기한 내용을 제가 다시 정리한 것이며 사진은 강창원샘 블로그에서 가져왔어요. http://blog.daum.net/win690/15938435?np_nil_b=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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