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해전사에 나오는 합포해전의 오류에 관하여 합포해전



최두환 전.충무공리더십센터 교수의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완역난중일기>에서 합포해전을 웅천땅 합포(경남 진해시 웅천 2동 학개/합개)라고 규정을 하였습니다. 최초로 합포가 웅천의 학개라고 하였지만 조선시대에 그곳에 진짜로 사람이 살았는지 아닌지, 문헌상에 합포라는 지명이 등장하는지, 포구로서 문헌에 남아있는지 등을 이야기하지 않고 그냥 웅천땅 합포라고 규정을 하였습니다. 

이후 합포해전지가 기존에 알려진 마산이 아닌 진해 학개라고 두 번째(정확하지 않습니다. 이 부분은 좀 더 연구가 필요하겠지요) 발표한 분이 바로 현재 해군사관학교 교수로 재직중인 이민웅 교수입니다. 이민웅 교수는 서울대학교 박사 논문을 2002년 2월에 발표하게 되는데 논문제목은 <임진왜란 해전사 연구>입니다. 이 논문중 합포해전에 관한 내용을 살펴보면

이날 옥포해전을 마친 이순신 함대는 거제도 북단에 위치한 영등포로 이동하여 정박하려 했는데, 오후 4시쯤 '이곳에서 멀지 않은 바다에 일본의 대선 5척이 지나간다'는 척후장의 급보를 받았다. 이에 이순신 함대는 곧바로 추격을 시작하여 웅천 땅 합포에 이르자 다급해진 일본 수군은 배를 버리고 상륙하였댜 이곳에서 두 번째 전투인 합포해전이 벌어지게 되었다. 이순신 함대는 뭍으로 올라 도망한 일본 수군의 빈 배를 모두 분멸하는 전과를 올리고, 밤중에 건너편 창원 땅 남포에 이르러 정박하였다.

<주석>
여기서 합포는 <임진장초>에서 밝힌 바와 같이 웅천(현재의 진해시) 땅에 있는 합포이고, 이은상과 이상석 등이 마산 합포로 비정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첫째 오후 4시부터 추격하여 해질녘에 상륙이 가능한 곳은 웅천 합포외에는 불가능하다. 둘째 현재까지 진해시에 합포라는 지명이 남아있다. 셋째 <임진장초>에는 창원 땅 마산포(고려시대의 합포)라는 지명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이렇습니다. 이민웅 교수 또한 웅천땅 합포라고 하면서 학개를 이야기합니다. 최두환교수 보다는 좀 더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오후 4시에 추격하여 해질녘에 상륙이 가능한 곳은 웅천 합포외에는 불가능하다"라고 규정을 합니다. 그러면서 예를 든 것이 진해에 합포라는 지명이 남아있다라는 것입니다. 이후 이민웅 교수는 자신의 논문을 바탕으로 다듬고 보충한 <임진왜란 해전사>를 출판합니다. 이 시기가 2004년 7월입니다. <임진왜란 해전사> 81쪽을 살펴보면 합포해전에 관한 글이 나옵니다.

 "합포는 임진장초에서 밝힌 바와 같이 웅천(현재 진해시)에 있는 합포이다. 20세기 중반 이후 이은상이 <완역 이충무공 전서> 등의 저서에서 1차 출전의 두 번째 해전 장소인 합포를 현재의 마산으로 비정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상황적으로도 거제도 북단에서 오후 4시부터 추격하여 해 질 녘에 상륙이 가능한 곳은 웅천 합포 외에는 찾을 수 없다. 더구나 현재에도 진해시에는 합포라는 지명이 남아있다. 뿐만 아니라 임진장초에는 창원땅 마산포(고려시대의 합포)라는 지명이 따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해전에서 이순신 함대는 뭍으로 올라 도망한 일본 수군의 배를 모두 불태우는 전과를 거두었고, 밤중에 건너편 창원 땅 남포에 이르러 정박하였다.“

말을 풀었다는 정도이지 박사 논문 <임진왜란 해전사 연구>의 내용과 별차이가 없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민웅교수의 박사논문인 <임진왜란 해전사 연구>와 저서 <임진왜란 해전사>에서도 합포가 조선시대에 있었는지에 관한 글은 보이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문헌상에 남아있는 합포라는 지명에 관하여도 보이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존 마산이라는 학설을 뒤집기 위해서는 뭔가 확실한 한방이 있어야 하는데도 그러한 것은 보이지 않고 학개가 합포라고만 규정을 하는데 현재 지명이 남아있다라는 것입니다. 그 학개라는 지명이 언제 등장하였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일제강점기인지 아니면 해방 이후인지에 관한 어느 것도 보이지가 않는다는 것이지요. 아니면 조선중기인지 초기인지 아니면 말기인지에 관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 고려초·중기 현 진해는 합포와 김해에 속해져 있었음을 표시한 지도입니다.
마산에 있는 합포와 진해 학개(합포라고 하는)라는 곳은 직선거리 16km이고 뱃길로 하면 대략 18km정도 나옵니다. 넉넉하게 잡아도 20km 조금 더 여유를 두어 30km를 두겠습니다. 우리가 신라시대 이후 나오는 도시들의 지명이 있는 곳에 반경 30km 안에 같은 지명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경주 옆에 경주가 없고, 양주(양산) 옆에 양주가 없습니다. 또 김해, 동래, 창원, 밀양, 진주, 고성, 거제 등의 이름과 같은 곳이 바로 옆에 있는 경우가 있는지요? 무엇보다 고려시대 현재 진해구에 있는 대발령의 서측 땅이 바로 마산에 있는 합포(合浦) 땅이었습니다. 현재 진해해군기지사령부가 있었던 곳이니 직선거리 7km 정도 되는 곳에 합포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학개에 합포 그것도 한문이 똑 같은 합포(合浦)라는 지명을 사용하였을까요?

이민웅 교수가 주장한 "오후 4시부터 추격하여 해 질 녘에 상륙이 가능한 곳은 웅천 합포 외에는 찾을 수 없다"라는 부분은 작년과 올해 뱃깃을 따라 가면서 증명을 하였고 많은 분들이 보았습니다. 즉 이민웅 교수가 논문에 게제한 첫 번째와 두 번째 모두 아님을 증명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조선시대 현재의 학개가 합포였다는 것을 증명하지 않으면 이민웅 교수의 논문 <임진왜란 해전사 연구>와 2004년 작성한 <임진왜란 해전사>에 나오는 합포해전에 관한 논문과 글은 맞지 않다는 것이 됩니다. 고려시대 대발령을 중심으로 서측은 마산의 합포 땅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아닌 현재의 학개 땅이 합포(合浦)였음을 증명하셔야 이 논란이 조용하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덧글

  • 백두 잊혀진 역사여행 2020/06/19 09:08 #

    합포해전의 경우는 지금 상황으로서는 위치가 정확하게 밣혀지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것 같네요..
  • 팬저 2020/06/19 09:07 #

    예 맞습니다. 오래 걸릴 것으로 저도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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