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읍성 무우루 읍성(邑城)



20세기초 부산 동래읍성으로 성문안에서 성문 바깥을 바라본 모습입니다. 잘 보시면 성문이 2개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동래읍성중 성문이 2중으로 된 것은 남문이 유일함으로 이 곳은 남문을 바라본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남문의 경우 성문을 2중으로 만들어 놓았는데 이를 익성이라고 합니다. 익성으로 만든 읍성이 많지 않은데 우리가 잘아는 수원 화성의 경우 익성으로 성문을 만들어 놓았지요. 화성은 둥글게 성문을 만들고 뒤에 또 성문을 만들어 놓았는데 비해 동래읍성은 사각형의 성문을 만들고 뒤에 또 성문을 만들어 놓았던 것이 조금 다릅니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의 침략을 당한 상태라 보니 더욱 더 성문을 튼튼히 하기 위해 성문을 2중으로 만들어 놓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진 상에 보아서 저 멀리 있는 성문이 바로 세병문(洗兵門)입니다. 무기를 씻는다는 세병(洗兵)의 의미를 담은 세병문인데 남문 앞에 있었던 다리가 세병문입니다. 세병문의 세병(洗兵)의 경우 통영에 있는 통제영의 본영 건물이 세병관인데 이름과 뜻이 똑 같습니다. 여기서 나오는 세병은 만하세병(挽河洗兵)에서 따온 말로 '은하수를 끌어와 피 묻은 병기를 닦아낸다' 는 뜻입니다. 더 이상 전쟁은 말고 평화를 누리자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사진에서 가까이 보이는 성문이 주조문(朱鳥門)입니다. 주조문의 경우 세병문을 지나서 만나는 것인데 현재 사진에는 무우루(無憂樓)를 현판으로 달았습니다. 이는 성안에서 외부로 나아갈때 보이는 방면에 현판을 달아 놓은 것입니다. 즉 주조문에는 현판이 2개가 달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무우루는 근심을 없앤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임진왜란과 같은 큰 전쟁이 일어나도 백성들이 근심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담긴 것입니다. 즉 보기에는 상당히 멋이 있고 든든한 동래읍성 성문이지만 전쟁은 멈추고 평화를 누리고자하는 선조들의 마음이 담겨 있는 것이 동래읍성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무우루를 지나면 왼쪽에 보이는 것이 바로 내주축성비로 1731년(영조7년) 동래부사 정언섭이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된 동래읍성을 대대적으로 수축한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수축의 내력을 적어 1735년에 건립한 것입니다. 지금으로 치면 공사 기념비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내주축성비는 현재 동래읍성 북문 안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덧글

  • 백두 잊혀진 역사여행 2020/06/28 11:28 #

    한가지 안타까운점이 있다면, 동래읍성과 세병문의 경우는 일제강점기에 사라지지 않았다면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사각형 익성을 가진 성이었을것 같네요..
  • 팬저 2020/06/29 09:42 #

    예 맞습니다. 사각형의 익성에 2층 누각의 화려함은 대단하였을 것 같습니다.
  • 한라온 2020/07/04 10:35 #

    저 화려하지만 단정한 지붕을 개인적으로 좋아합니다 ㅎㅎ
  • 팬저 2020/07/05 10:43 #

    위세가 대단하게 보이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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