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포해전지라고 하는 학개는 합포해전지가 아니라고 제가 몇 번이나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합포해전지라고 하는 학개가 합포해전지가 맞다면 관련 문헌들을 공개하라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잘 아는 것처럼 합포해전지가 진해학개가 맞다고 하면서 나온 것이 벌써 30년이 넘었고, 본격적으로 맞다고 이야기한 것은 20년이 넘었습니다. 하지만 진해학개가 맞다고만 하지 고문헌이나 문헌에 등장하는 것은 없었기 떄문입니다. 그래서 합포해전지가 학개라고 하는데 그 사실을 이야기하면 된다고 이야기를 하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인터넷카페 <이순신을 배우는 사람들>에 있는 격군님께서 웅천현감님이 찾았다고 하면서 공개한 것이 바로 아래에 나오는 지도입니다. 이 지도는 1899년 일본수로국에서 조사하여 1904년 발행한 지도입니다. 이 지도는 <마산포 부도수도>에 있는 한 모습입니다. 이야기한 것처럼 진해학개 앞에 합포말(合浦末)으로 적혀져 있습니다. 그러자 더 이상 이 논란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저기에 나오는 수로는 일제가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먼저 바다를 조사한 것으로 마산포 이외 포항, 원산, 나선, 제물포, 나진, 제주도 등 바닷가가 있는 동네는 다 조사를 하고 수심을 표시하고 지명을 표시하였던 지도이며 현재 도쿄대학교에서 서비스를 하고 있는 지도입니다.

▼ 부산포의 지도는 현재의 지도와 조금 다른 부분을 보여줄 것입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부산포 지도중 "꽃피는 동백섬에 봄이 왔건만 형제 떠난 부산항에 갈매기만 슬피우네"로 시작하는 조용필의 <부산갈매기> 노래에 "오륙도 돌아가는 연락선마다"는 가사가 나오는데 부산을 상징하는 지명중 하나입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오륙도라고 적혀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오륙도 바로 옆에 신선대라는 곳이 있습니다. 신라 말기에 최치원이 신선이 되어 유람한 곳이라고 하는 곳이 바로 신선대입니다. 신선대가 보입니다.

▼ 신선대 아래에 해운말(海雲末)이 보입니다. 여기서 말(末)은 육지나 섬의 끝을 의미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높이로 본 해운말과 오륙도에 관한 것입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다시 마산포지도로 다시 되돌아 가보겠습니다. 현재의 진해 서부지역의 모습이 보이고 마산합포구 구산면 지역이 보입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현재 해군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진해해군기지사령부의 모습이 보이는 곳입니다. 저 당시에는 조그마한 어촌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당시 소모도는 물길이 흘러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가까이 가보니 현동이라는 마을 명칭이 있습니다. 현동(縣洞)은 예전에 치소를 다스리는 현(縣)이 있었음을 증명해줍니다. 저곳이 현재는 진해해군기지사령부가 있는 곳입니다. 현동이 있었던 곳은 완포현이 있었던 곳입니다. 완포현 이전에는 완포향이 있었고 완포향은 합포현의 관할지였습니다. 즉 합포현이 현동이라고 하는 곳을 다스렸다는 이야기이며 현재 진해구청이 있는 곳 옆에 있는 대발령까지 다스렸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현재 지도로 다시 되돌아가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피서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고 하는 해운대에서 해운말(海雲末)까지는 직선거리 대략 9km정도 됩니다. 9km나 떨어진 곳에 해운대 끝이라고 표시를 하였을까요?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진해해군기지사령부가 있는 현동이라는 곳에서 합포말(合浦末)까지는 직선거리 대략 8km정도 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몇 번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당시에는 인구가 많지 않았습니다. 세종실록에 기록된 완포현의 인구는 497명이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해 자세히 알고싶다면 이곳을 클릭하세요.
500명도 되지 않은 인구가 현재 진해서부지역에 살았다는 것입니다. 지명이 따로 있기가 슆지 않았을 것으로 보여지며 합포의 끝이라는 합포말(合浦末)을 사용한 것은 아닐까 합니다. 물론 당시 사람들은 합포말(合浦末)보다는 합포끝이라고 이야기하였겠죠. 이것을 한문으로 적다보니 합포말(合浦末)이라고 적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임진왜란 일어난 합포해전입니다. 임진왜란 당시 전후에 합포라는 지명에 관한 자료를 올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04년 일제강점기 당시의 지도이며 이 지도가 합포라는 지명에 관하여도 아니고 바로 합포말(合浦末) 즉 합포끝을 의미하는 합포말(合浦末)로 1592년 임진왜란 당시 합포였다는 것을 증명해줄 수 있나요? 저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게 맞다면 해운대는 어떻게 설명을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더 이상 이 논란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만 제가 볼때에는 더 논란이 될 것이며 엉뚱한 지도를 가져왔다는 것을 증명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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