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지지자료에도 없는 합포 합포해전



일제는 조선을 식민통치하기 위한 기초 작업으로 호구와 토지조사에 매진했습니다. 통감부의 주도로 1909년 3월에 민적법이 공포되면서 내부경무국은 민적실사에 착수했고, 경찰과 헌병의 원조 아래 1910년 5월에는 민적부(民籍簿)를 완성했습니다. 을사늑약 직후인 1910년 9월에는 1,293만 명의 인구를 조사한 『민적통계표(民籍統計表)』가 발행되었습니다. 

1910년 초에 대한제국에 설치된 토지조사국은 조선총독부에서 임시토지조사국으로 개칭되어 토지조사사업을 주도했고, 『조선지지자료』는 토지조사사업의 목적으로 선행 조사하였습니다. 이 자료를 토대로 일제강점기 당시의 토지와 지명, 산, 하천, 포구 등에 관한 자료를 현재 살펴보고 있습니다. 

일제강점기에 나온 조선지지자료 마산부편을 보면 현재 통합 창원시의 모든 지역들이 나옵니다. 현재 조선지지자료는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보다 자세하게 보시려면 이곳을 클릭하세요.  여기서 9번 경상남도를 찾아서 클릭하시고 가장 하단에 있는 7번 마산부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 마산부 하남면에 나오는 산과 지명들입니다. 아래에 나오는 이미지는 전부 국립중앙도서관의 저작권자임을 알려드립니다.
▼  하남면에 장복산이 보이죠.
▼ 동네 명칭에 안민리, 남지리, 장복리, 상리, 정리, 목리 등이 보입니다. 이곳은 현재 창원시 성산구에 있는 안민동 등이 있는 곳입니다.
 당시 마산부 웅서면입니다. 웅서면은 현재 창원시 성산구 양곡에서 진해구 서부지역 일부입니다.
▼ 귀산, 중평, 안곡, 도만 등이 보입니다.
 웅중면으로 현재 창원시 진해구 경화동과 석동 일대입니다.
 하구리, 중동리, 석리, 조천리, 중초리 등 지명이 보입니다.
 신덕리, 덕산리, 풍호리, 행암리가 보입니다. 그리고 포구에는 풍호포, 덕산로, 범동포가 보입니다.
 마산부 웅읍면으로 현재 창원시 진해구 웅천동, 남산동 일대로 예전 웅천지역이라고 보면 됩니다.
 포구는 사도포, 제포, 삼포, 원포가 보입니다.
 주산물이 무엇인지에 관해서도 나오고 웅읍면에 있는 마을을 보여주는데 북문리, 성내리가 보입니다.
 서중리, 남문리, 수도리, 제덕리, 명동, 죽곡리, 원포리가 보이지만 여기서도 합포는 보이지가 않습니다.
▼ 남아있는 성곽에 관하여도 조사되어져 있습니다. 읍내성(웅천읍성), 남산성(웅천왜성), 제포성(제포진성), 명동성(명동왜성)
 이제 웅동리로 현재 창원시 진해구 웅동일대로 웅동, 안골, 청안일대입니다.
 월남리, 산양리, 소사리 등이 보입니다.
 마전, 청천, 안골리 등이 보입니다.
 주막까지 자세하게 소개해 놓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 진해 인구는 1920년대 13,365명이었습니다. 56개의 마을에 관하여 자세히 그려져 있지만 합포해전이 벌어졌다고 하는 학개는 보이지가 않습니다. 적어도 합포리가 나와야 되는 것 아닌가요? 결국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조사한『신구대조조선전도부군면리동명칭일람(新舊對照朝鮮全道府郡面里洞名稱一覽)』와 『조선지지자료』에도 보이지가 않습니다. 합포해전이 벌어졌다고 하는 학개는 도대체 어디에 있나요?




덧글

  • Positive 2020/10/07 16:15 #

    여담인데 자료속의 한자 쓰신분이 어마어마한 명필같네요.
  • 팬저 2020/10/11 11:57 #

    글씨는 잘 적었습니다.
※ 로그인 사용자만 덧글을 남길 수 있습니다.


구글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