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가 합포해전지라면 옥계도 옥포해전지가 된다 합포해전



玉浦조선수군이 처음으로 승리한 전투가 있었던 곳 바로 거제 옥포
조선수군의 한이 있는 칠천량, 조선수군이 처참하게 무너진 곳이 바로 거제 칠천량
두 곳 모두 거제에 있으며 조선 수군의 기쁨과 슬픔을 본 곳입니다.

승리한 곳이 아닌 패전한 곳을 후세에게 전달하고자 칠천량해전공원이 지난 2013년 7월 개관하였습니다.
칠천량해전공원이 있는 곳이 바로 거제시 하청면 연구리입니다. 연구리 중에서도 있는 곳은 옥계마을입니다. 어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곳 같지 않나요?

옥계를 한문으로 옮기면 옥포(玉浦)가 되겠지요. 어 이상하죠. 조선 수군이 처음으로 승리한 전투가 있었던 곳 바로 옥포(玉浦)이지요. 옥포라는 지명이 있는데 한문의 옥포와 같은 옥계가 같은 지역에 있다. 이렇다면 합포해전이 학개라고 주장하시는 분들의 이야기처럼 이야기하면 옥포해전은 기존에 알려진 거제시 옥포1동에 있는 옥포가 아니라 하청면에 있는 옥계가 된다는 것입니다. 
옥계에서 전투를 치루고 영등포진성에서 휴식을 취하다가 학개에서 합포해전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옥포해전을 칠천도에 있는 옥계를 옥포해전이라고 보고 있지 않지요. 왜? 그렇게 옥계에서 옥포해전이 벌어졌다고 하지 않을까요? 바로 지명 때문입니다. 

옥포는 임진왜란 당시 옥포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에 비해 옥계마을에 관한 역사를 살펴보면 고종 32년(1895년) 5月 26日 칙령 제98호 면리 개편으로 하청면은 하청, 유계, 외상, 덕곡, 해안, 사환, 실전, 석포, 장곶, 어온, 욋포, 연구, 송포, 대곡과 두모, 관포, 신촌, 궁농, 농소, 상유, 하유, 구영, 황포, 장목 등 24리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옥계는 등장하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다 1942년 5월 1일 부락구제 실시로 석포, 덕곡, 해안, 서항, 서대, 서상, 동리, 서리, 중리, 창동, 성동, 사환, 와항, 실전과 장곶, 어온, 물안, 대곡, 송포, 황덕, 연구, 곡촌, 금곡, 옥계 등 24개 부락이 되었습니다. 이때 처음으로 옥계가 등장합니다.

옥계마을의 유래를 살펴보면 "본래 외질개 또는 욋개라 하였는데 이는 칠천도의 밖개라는 뜻이고 서남으로 뻗은 땅끝의 형세가 비녀모양이라 옥계라 하였다"라고 적혀져 있습니다.

진해 학계의 경우도 옥계와 마찬가지로 일제강점기 당시는 물론 조선시대에서도 학개라는 지명은 등장하지 않습니다. 학계라는 지명이 등장하는 것은 1987년 11월 국립지리원의 지도에서 나옵니다.(이부분은 조금 더 조사를 해볼 생각입니다 과연 언제 등장하는지) 그에 비해 합포라는 지명은 통일신라 때부터 등장을 합니다. 따라서 옥계가 옥포가 될 수 없는 것처럼 학계가 합포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칠천량패전지는 현재 공원이 설립된 옥계리가 아니고 장목면으로 봐야하지만 공원은 하청면에 만들어져 있습니다.
합계, 학개, 학계, 합포 등 다양하게 불리고 있지만 등장하는 시기는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때 보이지 않으며 해방이 되고 나서 1987년에 처음으로 등장을 합니다. 지도에 관한 이야기는 여기에서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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