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산 구산면 옥계가 옥포라... 합포해전



1904년 일본 수로국에서 조사한 지도를 보면 합포해전이 벌어졌다고 주장하는 학계(학개. 학포, 합포 등 다양한 지명을 사용)에 합포라고 적혀져 있으며 영문으로 학개라고 적여있습니다.
마산포 수로 지도를 보면 남포 바로 뒤편에 옥포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한문으로 玉浦라고 적혀져 있습니다. 거제 옥포해전이 벌어졌다고 하는 옥포와 같은 지명입니다. 거리도 제법 멀리 있는 곳에 옥포라는 지명이 있네요. 당시 작성한 지도에 있는 지명들이 정확할까요? 현재도 사용하고 있을까요?
옥포라고 적혀져 있는 곳은 현재 옥계라는 지명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현재 경남대학교 수련원이 있는 곳이 옥계인데 옥계로 가면서 만나는 바다 뷰가 좋습니다. 특히 밀덕들에게 아주 좋은 곳이지요. 밀덕들은 한 번 가볼만합니다. 시력이 좋다면 이라는 전제가 있습니다.

이 옥계는 전형적인 어촌마을로 현재 50여 가구 거주하고 있습니다. 이곳 옥계는 일본 수로국이 작성한 옥포라고 사용하지 않고 옥계라고 사용하고 있을까요? 그건 예전부터 옥계라는 지명을 사용하였기 때문입니다. 일본이 조선어를 듣고 한문으로 옮기면서 옥계를 옥포로 적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부분은 합포해전이 벌어졌다고 주장하는 학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학계마을은 그동안 학계마을로 불리었고 지금도 그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현재는 진해해군기지사령부가 있는 곳에 있는 소모도, 이 소모도의 남쪽 끝에 농포말(農浦末)이라고 적혀져 있습니다. 소모도 어디에도 농포라는 곳은 보이지 않습니다. 없는 농포를 지명이 들어간 농포말이라고 하였을까요? 거기에는 조선어로 불리는 것을 한문으로 적으면서 발생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당시 조선인들은 농개끝이라고 불리었던 것 같습니다. 즉 포구가 있어서 농개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고 바닷물이 들어오는 곳이라 농개라고 하였으며 농개의 끝이니 농개끝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를 일본인이 적어면서 농포말(農浦末)이라고 한 것입니다.
우리말에 나오는 개는 강이나 내에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을 개라고 하는데 진해 지도에 개라는 지명이 유독 많이 나옵니다. 2003년 발행한 진해지도를 보면 개라는 지명이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1904년 발행한 일본 수로국에서 만든 지도에 나오는 합포말(合浦末)은 학개끝이라는 이야기가 됩니다. 즉 합포해전이 벌어진 합포(合浦)가 아니라 조선인이 이야기한 학개끝을 한문으로 적으면서 합포라고 적었고 영문으로 학개라고 적은 것입니다. 

현재도 물이 드나드는 곳의 지명이 사용하는 곳과 같은 이치입니다. 
17~8년 동안 합포해전에 관한 논문을 보면 “여기서 합포는 <임진장초>에서 밝힌 바와 같이 웅천(현재의 진해시) 땅에 있는 합포이고, 이은상과 이상석 등이 마산 합포로 비정한 것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첫째 오후 4시부터 추격하여 해질녘에 상륙이 가능한 곳은 웅천 합포외에는 불가능하다. 둘째 현재까지 진해시에 합포라는 지명이 남아있다. 셋째 <임진장초>에는 창원 땅 마산포(고려시대의 합포)라는 지명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라고 나온 것이 전부입니다.

오후 4시부터 해질녘 상륙 가능한 곳에 관하여는 벌써 안드로메다로 넘어갔죠. 이 부분을 이야기하니 출발 시간이 4시에서 6시로 바뀌었다고 2020년 2월 합포해전에 관한 토론회를 하면서 억지 주장을 하고 있죠. 둘째 합포라는 지명이 남아있다는 부분은 1987년 이후 지도에서 나오고 그 이전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셋째 창원 땅 마산포라는 지명은 따로 있다. 이 부분은 임진장초에 웅천 땅이라고 하였으니 창원 땅은 아닌 것 같아서 넘어갑니다.

이후 합포해전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한다고 이야기하고 합포해전지 답사를 하니까 들고 나온 것이 바로 1904년 일본 수로국에서 작성한 지도였습니다. 그 지도에 관하여는 몇 번이고 제가 이야기를 하였으며 현재 사용하는 물이 드나드는 개에 관하여 정리하였습니다. 또한 조선어를 한문어로 옮기면서 개가 포구가 되면서 수 많은 포구들이 등장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1964년 지도
1970년 지도
1987년 지도
그동안 당시 진해시에서 합포해전에 관한 논문 몇 줄로 반응하여 합포해전지가 학개로 규정이 되었고, 통합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학개가 합포해전이 되었습니다. 통합이 되고도 계속해서 합포해전지가 학개라고 하였으며 지역에 있는 학자들도 해전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해전에 관하여는 해군사관학교에 물어보라는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또한 통합 창원시가 되고 나서 발행한 <마산시사>에도 합포해전지를 진해의 학개로 보고 있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해전이라는 특수성, 이순신이라는 영웅적인 부분 때문에 그 누구도 접근하기 힘든 곳이 합포해전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둠이 빛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이제 거의 끝이 보이기 시작하였습니다. 작은 빛이지만 빛이 보이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집단지성의 힘으로 합포해전지라고 규정하고 있는 학개는 아니라는 목소리를 내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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