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의령사직단을 찾았다 조선의 삼단(三壇)



드디어 의령사직단을 찾았습니다. 지난 2019년 5월 의령사직단에 관하여 글을 올리면서 "여기가 아닐까?"하고 추정한 곳 바로 뒤가 의령사직단이네요. 예전 의령사직단 발제글 보기

조선시대 의령에서 발행한 의춘지에 의하면 西洞 古稱西門洞 文廟 鄕校 興學堂 司馬所 尊德齋 在此一鄕儒風所自由焉 西嶺有社稷壇 余宜寧 金延安 沈靑松 崔慶州 四氏居焉라고 적혀져 있습니다. 한문을 번역하면 “서동(西洞)은 예전 서문동(西門洞)이라 했다. 문묘(文廟), 향교(鄕校), 흥학당(興學堂)이 있다. 이 하나의 고을에서 유풍(儒風)이 일어났다. 서쪽 고개에 사직단(社稷壇)이 있다. 의령여씨, 연안김씨, 청송심씨, 경주최씨 등 네 성씨가 산다.”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의령에서는 사직단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

이 부분은 이렇게 수정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의령사직단은 뒤늦게 찾은 관계로 현재는 원형이 사라져버렸다. 다만 현재 의령시외버스터미널 옆이다"라고 말이죠. 

의령사직단을 찾기위해 이래 저래 찾아보았지만 흔적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2019년 5월에 의령향교 땅이며 지목이 대지인곳을 의령사직단으로 추정을 하였지만 명확한 자료가 나오지 않아서 잠정 보류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전종한 경인교대 교수가 작성한 <조선 시대 고을 사직단의 경관 구성과 복원 방향 - 부평 사직단을 중심으로 - >에 부평사직단을 찾는 과정을 소개해 놓았습니다. 논문을 보면 " 부평 사직단의 위치 추정을 위해 주목할 만한 자료가 있는데, 바로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가 조사한 「부평 사직단 국유림 경계도」이다. 일제강점기에 조사된조선왕조의 고을 사직단 소유 국유림 경계도는 부평사직단을 비롯해 전라남도 화순군의 화순면 소재 사직단(1915), 경상남도 의령군 풍덕면 소재 사직단(1916),평안남도 덕천군 군무면 소재 사직단(1915) 등이다."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이 논문을 보고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니 국가기록원에 의령사직단에 관한 자료가 나오더군요. 그래서 복사신청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자료가 오늘 도착하여 공개를 합니다. 아래 이미지의 출처는 국가기록원입니다. 이 자료에는 사직단국유림경계도라고 적혀져 있으며 경상남도 의령군 풍덕면이라고 적혀져 있습니다. 풍덕면은 조선시대부터 풍덕면으로 사용하였으며 일제강점기인 1922년 덕곡을 병합하면서 지명을 의령면이라 칭하게 되었고, 1979년 의령면이 의령읍으로 승격화되었습니다. 따라서 풍덕면은 의령읍으로 생각하고 지적도를 찾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1916년 발행한 지적도에는 풍덕면으로 나와있습니다. 문제는 풍덕면까지는 나와 있지만 뒷편의 리(里)가 나오지 않다는 것입니다. 1916년 당시 풍덕면안에 있는 동동리,무전리,상리,서동리,정암리,중리,하리를 다 찾아야합니다. 

▼ 하지만 사직단은 1872년 지방지에 서측에 그려져 있으니 서동리를 찾으면 될 것입니다. 이미지출처 :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 이번에 국가기록원 서울기록정보센터에서 받은 <의령 사직단국유림경계도> 저 지형을 잘 기억해야 합니다. 주소는 의령군 풍덕면 서동리 산2번지입니다. 년도는 1916년입니다. 이미지출처 : 국가기록원 서울기록정보센터
▼ 서동리에 있는 지적도중 2019년 5월에 제가 추정하면서 올린 지적도에서 위 사직단의 형태를 찾았습니다. 이미지출처 : 국가기록원 지적아카이브
▼ 핑크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의령 사직단국유림경계도>입니다. 노랑색은 2019년 제가 추정한 사직단입니다. 사직단의 지목은 밭으로 나와있습니다. 이미지출처 : 국가기록원 지적아카이브
▼ 확대를 해본 것입니다. 사직단의 밭이 제법 큰 규모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저 곳중에 어디에 있었을까요? 이미지출처 : 국가기록원 지적아카이브
▼ 그러던중 1954년 항공사진을 보았습니다. 노랑색으로 표시한 것이 <의령 사직단국유림경계도>에 나오는 사직단입니다. 빨강색 원이 사직단의 흔적을 볼 수 있는 제단의 흔적이 보입니다. 이미지출처 : 국가지리정보원 국토정보플랫폼 
▼ 위 항공사진을 확대해보았습니다. 제단이 있는 곳은 높게 올라와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1990년 초반이나 1989년까지는 저 흔적이 남아있었을 것으로 추정해봅니다. 의령시외버스터미널이 1993년 4월 30일 개장하니 말이죠. 이미지출처 : 국가지리정보원 국토정보플랫폼
▼ 현재의 지도와 지적도 그리고 항공사진을 토대로 현재 지도에 의령사직단을 대입시켜보았습니다. 오차가 있겠지만 3~4미터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의령사직단은 의령시외버스터미널 뒷편 산림조합과 성수모텔사이로 추정을 합니다. 이미지출처 : 네이버지도
▼ 의령읍내에 있는 의령시외버스터미널
▼ 시외버스터미널이라 모텔들이 많습니다. 
▼ 시외버스터미널 바로 옆은 보는 것과 같이 야산을 깍아서 만든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 시외버스터미널 옆으로 난 소방도로와 비교하면 어느정도 높이에 사직단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의령시외버스터미널이 자리한 것이 대략 30년이 다 되어가는군요.
▼ 의령시외버스터미널의 모습
▼ 시외버스터미널 바로 옆 소방도로 옆이 의령사직단이 있었습니다. 물론 원래 있었던 산을 깍아버려서 지번은 의미가 없습니다. 
▼ 바로 보이는 성수모텔 주변이 의령사직단이 있었을 것입니다. 저 상태에서 7층 정도 높이에 사직단이 있었을 것입니다. 

의령사직단의 지번은 찾았지만 늦게 찾은 관계로 의령사직단은 형태 그대로 사라졌습니다. 아쉬움을 줍니다. 



덧글

  • 역사관심 2021/01/20 14:05 #

    고생하셨네요. 진짜 대단하십니다.
  • 팬저 2021/01/21 00:29 #

    감사합니다. 요즘은 숨은 보물찾기에 푹 빠졌습니다.
  • 한라온 2021/02/05 21:11 #

    조선시대에는 저렇게 고을마다 사직단이 다 갖추어져 있었나요?
  • 팬저 2021/02/08 18:20 #

    예 군·현에는 모두 사직단이 있었다고 보시면 됩니다. 물론 여제단, 향교, 성황단도 마찬가지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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