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가읍성앞 저수지는 대사지? 읍성(邑城)



1872년 지방지에 나온 삼가읍성을 보고 삼가읍성은 2중으로 만든 읍성인줄 알았습니다. 현장을 가보아도 읍성의 흔적이 없어서 정확하게 알지 못하였다가 나중에 2중으로 된 읍성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이번에 삼가읍성 지적도를 살펴보니 재미있는 것이 보입니다. 

삼가읍성의 남측은 양천이 지나갑니다. 1916년 지적도에 나오는 양천과 지금의 양천과 비교하면 확실하게 양천의 폭의 크기가 차이가 납니다. 당시(1916년 기준)를 보면 남측체성 앞에 큰 저수지(파랑색)가 보입니다. 폭은 대략 30미터가 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남문지 근처에는 논(노랑색)이 보이는데 조선시대에는 저게 저수지였을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보면 조금만 저수지이고 전부 논입니다. 저수지 앞에는 숲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이렇게 됨으로 남측에서 삼가믑성을 보면 숲으로 인해 읍성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측은 양천을 지나고 또 다시 저수지(이건 저수지로 읽지 말고 진주의 대사지처럼 인공적인 해자로 봐야할 것입니다)가 있음으로 이중적인 방어가 가능합니다. 

1916년 이후 저수지는 매립이 되었고, 현재 주민들이 집을 짓고 살고있습니다. 저런 흔적들은 현재의 지도에도 보이며 드론으로 보니 보다 명확하게 알수가 있습니다. 삼가면사무소 앞에 있는 중앙탕 아래가 모두 예전에는 해자(저수지보다는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이 나을 것 같네요)라는 것입니다. 

삼가분들은 삼가읍성이 있었다는 것은 아는데 성문이 정확하게 어디인지 잘 모르시더군요. 남문은 현재 삼가의원과 삼가우리약국 사이입니다. 

지적도를 보면 남문과 서문은 옹성이 있는데 동문과 북문은 보이지가 않습니다. 아무래도 협문식이 아닐까 추정을 합니다.

저번에도 이야기하였던 것처럼 삼가에서 도시재생이 시작된다고 합니다. 이런 역사적인 사실을 두고 도시재생이 시작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걱정이 되네요. 문화재연구원에 지표조사 등이 이루어지고 나서 도시재생이 시작되는 것일까요?

▼ 1916년 지적도를 토대로 작성한 것으로 노랑색은 논, 녹색은 밭,살구색은 국유지, 하늘색은 하천, 파랑색은 저수지, 녹색은 숲이고 빨강색은 삼가읍성입니다. 이미지출처 : 국가기록원 지적아카이브
▼ 남문지의 모습이 보이고 1916년 지적도에 나온 골목의 흔적이 보인다
▼ 동문지는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 북문지는 조용한 곳이라 발굴조사를 하면 나올 것 같습니다.
▼ 서문지는 현재 존재하는데 발굴조사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 동헌지에 도시재생뉴딜센터가 들어선다고 합니다. 삼가현의 치소인 동헌이 있었던 곳인데 아무런 조사도 하지 않고 진행할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 현 삼가면사무소는 예전 삼가현 객사가 있었던 곳입니다. 현 중앙탕이 있는 곳은 예전에는 저수지였던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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